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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술자리, 이렇게 즐겨라!

야심한 시각 삼삼오오 모여 술집을 채우고 있던 만취객들.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만나서 술자리를 갖지 못하는 상황은 우리가 즐기는 술의 종류부터 스크린 타임을 점령한 SNS 앱의 종류까지 분명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BYCOSMOPOLITAN2021.03.27
 
유독 음주가무가 발달한 대한민국에서 술집에 모이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변화다. 만나자마자 얼싸안으며 서로를 반기고, 한 뚝배기에 담긴 어묵탕을 떠 먹으며 잔을 부딪치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들다 종국에는 울고불고하며 누군가는 업혀 집에 들어가는 일상. 지금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된 후 번화가 골목을 지나치다가 공사판이 된 상가 건물과 ‘임대’라고 쓰인 현수막이 팔락이는 광경을 자주 본다. 고만고만한 술집들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문고리를 걸어 잠근 채 자기만의 방에 갇혔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소상공인 중 70%가 매출이 감소했다고 밝혔고 여가서비스업의 경우 평균 매출 감소 비율이 43.7%에 달한다. 물론 주류업계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지만,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허둥지둥 내놓은 답변은 가끔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일본 맥주 회사 산토리에서 ‘음주용 헬멧’ 개발을 추진한다는 기사를 접했던 대기업 7년 차 지인의 탄성.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꼭 술집을 가야겠어?” 사실 사람들은 꼭 술집에 가야 할 필요가 없지만 주류 회사는 가만히 앉아 손가락만 빨 순 없다. 회식이나 대규모 모임에 단골로 등장하던 맥주와 소주 판매의 타격이 가장 컸다. 도매시장이 시원찮으니 ‘홈술족’으로 눈을 돌린 주류업계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다. 하이트진로는 1인 가구를 타깃으로 160ml짜리 팩소주를 내놓았고, 롯데칠성음료에서는 ‘클라우드 생 드래프트’를 손에 착 감기는 사이즈의 330ml 슬릭 캔으로 출시했다. 막걸리도 350ml짜리 캔으로 나온다. 하지만 변화는 단순히 술의 사이즈에 그치지 않는다.
 

홈술의 품격, 와인 감성

재미있는 건 코로나19 이후 술을 멀리하게 된 사람만큼이나 술을 더 자주 마시는 사람도 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홈술의 맛을 알게 된 사람들 때문에 각광받은 주류는 다름 아닌 와인이다. 술자리 풍경은 힙지로의 호프에서 맥주에 노가리를 뜯던 때랑은 많이 달라졌다. 집 안에서라도 분위기를 내려면 주종을 바꾸는 것이 제일 쉽다. 어쩌다가 한 번씩 홈파티를 하게 되면 식탁에는 와인 병이 놓인다. 몇 해째 내추럴 와인의 강세로 다가가기 쉽고 개성 있는 와인이 많이 소개되며 ‘와인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데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저가 와인이 많아진 것도 영향이 있다. 지난해 12월 이마트의 와인 판매량은 전년 대비 81.8%, 신세계백화점에서는 66.2%나 뛰었다.
주류 규제 완화 정책도 크게 작용했다. 작년 7월부터는 주류 가격이 음식보다 낮은 경우 배달 앱을 통해 음식과 함께 주류 주문이 가능해졌다. 주기적으로 추천 와인과 함께 페어링 메뉴를 소개하는 ‘와인 레터’를 발송하며 치즈와 수제 잼 등으로 구성한 와인 세트를 판매하는 ‘위키드와이프’ 등 와인 딜리버리를 내세운 숍도 생겼다.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의 편의점은 온라인으로 주류를 선결제한 뒤 매장에서 수령하는 스마트 오더를 도입했다. 특히 GS25가 작년 12월 론칭한 와인25 서비스를 도입한 점포는 와인 매출이 최소 80%에서 최대 400%가량 증가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와인을 사고 주변의 바에서 안주를 주문한 뒤, 초 하나만 켜면 단숨에 근사한 홈파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유튜브에 넘쳐나는 믹스셋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 틀면 힙한 술집의 ‘분위기 있는 음악’도 부럽지 않다.
 
전 세계의 모든 술자리 모임을 무람없이 넘나들며 이쪽 모임의 대화에 참여했다가, 또 저쪽 모임의 대화에도 낄 수 있는 듯한, 그야말로 ‘위 아 더 월드’를 구현한 서비스다.
 

칵테일도 DIY

술을 마시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이 없어진 대신, 사람들은 앉은자리에서 직접 술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DIY 열풍에 힘입어, 슬금슬금 ‘홈술 키트’들이 고개를 내민 것. 대표적으로 작년 론칭한 온라인 칵테일 배송 서비스 ‘쉐이킷’은 스피릿과 시럽, 지거와 레시피 카드 등 칵테일 만들기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간소화해 패키지로 배송한다. 칵테일의 종류도 ‘봄이오나봄’이라는 이름의 핑크빛 칵테일, 풍선 가니시를 제공하는 오렌지 향 블루 큐라소 칵테일 ‘블루밍’, 토마토 베이스의 붉은 술을 파우치에 담아 혈액 팩처럼 만든 ‘킬링토마토’ 등 ‘인스타그래머블’하다. 술집에서 마신 술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까지가 ‘술자리’의 완성이니까, 집에서 만들어 먹는 칵테일도 기왕이면 예뻐야 한다. 또 다른 칵테일 배송 서비스 ‘칵테일 하이’는 매달 새로운 테마의 칵테일을 정기 배송하기도 한다. 단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칵테일 박스에는 크래프트 소주와 시럽, 소다, 레몬 등이 포함된 ‘소주 하이볼’과 보드카, 그린애플 시럽, 사과 주스, 라임, 가니시로 쓸 배칩까지 포함된 ‘애플 마티니’가 있다. 6~8잔 만들 수 있는 세트가 2만~3만원대로 가격대도 상당히 합리적인 편. 지난해 12월에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바텐더와 티 소믈리에가 함께 만든 ‘티칵테일’ 키트 펀딩이 목표 금액의 1195%를 달성하며 성황리에 종료됐다. 인기 있는 바들도 칵테일 키트를 낸다. 서촌의 칵테일 바 참에서는 연말을 맞아 코디얼 4종과 치즈 4종 등으로 구성된 홈세트를 판매했다. 비피터에 라임 진저 코디얼, 바카디에 블랙베리 민트 코디얼을 조합하는 식이다. 레시피대로 섞기만 하면 그럴싸한 홈메이드 칵테일 한 잔이 완성된다.
 

술보다 술자리가 그리운 사람들

역시 잘 만든 술은 관객이 있어야 한다. 화상 채팅 앱을 통한 온라인 술자리는 디폴트값이 됐다. 한때 줌의 그림판 기능을 활용해 캐치마인드(그림 퀴즈)가 선풍적인 인기였다. 모여서 떠들 수 없다는 환경의 제약은 새로운 소셜 커뮤니티 앱을 유행시키고 있다. 숏폼 동영상의 인기를 반영한 듯 인스타그램은 얼마 전 ‘릴스’ 기능을 새로 추가하며 또 한번 리뉴얼을 진행했지만 어쩐지 ‘뒤처지는 예전 세대의 앱’이라는 망조의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가운데 싸이월드가 3월 중 서비스 재개를 예고했다. ‘파도타기’와 ‘일촌 맺기’의 추억을 아는 이들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할 예정이다. 아이폰 유저들 사이에서는 ‘클럽하우스’ 앱이 최강자로 떠올랐다. 친구로부터 초대받아 계정을 등록하고 나면 실시간으로 운영되는 오픈 채팅방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고,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채팅창이 운영되는 방식은 온전히 방장(모더레이터)에게 달려 있다. ‘축구 보고 있는 사람들 모임’, ‘예술 책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 ‘상장 주식 투자 모임’ 등 뚜렷한 관심사를 내세운 방이 있는가 하면 ‘고스펙자 금지, 건설적인 대화 금지’, ‘클럽하우스 대화에 끼기 힘든 사람들 모임’, ‘맥주 한 병 마시고 자러 가기’처럼 편한 수다를 목적으로 하는 방, 뮤지션과 게스트를 초청해 방송을 진행하고 자유롭게 실시간 청취자 질의응답이 가능한 팟캐스트 형식의 방, 성대모사나 퀴즈쇼를 진행하는 방까지 각양각색이다. 전 세계의 모든 술자리 모임을 무람없이 넘나들며 이쪽 모임의 대화에 참여했다가, 또 저쪽 모임의 대화에도 낄 수 있는 듯한, 그야말로 ‘위 아 더 월드’를 구현한 서비스다. 술은 그저 거들 뿐. 운 좋으면 평소 소심하게 팔로하던 SNS 스타나 뮤지션, 정치인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뭐 하는 덴지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세 시간 만에 빠져나왔다”라는 간증이 끊이지 않는다. 마치 한 번 앉으면 다음 날 오전 9시 출근일지라도 좀처럼 엉덩이를 떼기 힘든 술자리 같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여전히, 모여서 먹고 마시고 떠드는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내는 중이다. 우리는 늘 길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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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김예린
  • art designer 김지은
  • illustrator 최지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