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사회적 거리두기, 언택트….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브랜드가 언택트 마케팅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고,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생존 전략으로 떠올랐다. 그만큼 2020년은 언택트 시대에 발맞춘 다양한 마케팅과 서비스가 속출했던 한 해였다. 전례 없는 시국에 어떤 언택트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또 어떤 마케팅은 성공적인 ‘언택트 경험’을 제공하며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사람들이 주목했던 마케팅의 공통점은 이렇다. ‘요즘’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언택트 시대의 언어를 이해하고, 공감은 물론 인증하고 싶은 마케팅을 했다는 것.
Case 1 러쉬 ‘고 네이키드 2020 디지털 행진’ 환경·인권·동물 보호 등과 관련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쳐온 러쉬. 특히 러쉬는 매년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고 네이키드(Go Naked)’ 캠페인을 운영해왔다. 과대 포장 금지와 환경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직원들이 속옷 차림에 앞치마만 달랑 두르고 거리 행진을 하는 것. 지난해 러쉬는 ‘디지털 행진’이라는 신박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러쉬코리아 홈페이지에서 닉네임을 입력하면 디지털 행진에 참여할 아바타를 만들어주는데, 이 아바타가 본인 대신 닉네임 명찰을 달고 온라인상에서 대리 행진을 하는 것. 이는 공식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을 통해 중계됐는데 2020년 4월 17일부터 21일까지 만들어진 아바타는 총 5309개로 하루에 1천 명이 넘는 이들이 캠페인에 참여했다. ‘비대면 홍보법’이 유효하려면 타깃층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러쉬의 디지털 행진은 미닝아웃과 신박한 마케팅 방식에 반응하는 ‘요즘 소비자’들을 잘 이해한 사례다.
Case 2 닷페이스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매년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렸던 퀴어 퍼레이드. 지난해에도 이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긴 행렬이 이어졌다. 서울시청 광장이 아닌 인스타그램에서!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퀴어 퍼레이드가 취소되자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는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행사를 진행했다. 사람들이 함께 길게 행진하는 모습을 온라인에서 재현한 것. 닷페이스는 이를 위해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 캐릭터를 만들 수 있게 했다. 머리 모양부터 옷, 액세서리, 교통수단, 다양한 컬러 등 폭넓은 선택지를 통해 각자의 개성이 반영된 캐릭터를 만든 뒤 이를 저장해 해시태그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와 함께 업로드하면 끝. 해당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다양한 머리 색깔, 옷차림, 액세서리를 한 캐릭터들이 피드 위를 행진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2020년 6월, 13일 동안 진행된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에는 총 8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가했다.
Case 3 명품 브랜드×게임 컬래버레이션 패션 및 예술 업계는 언제나 트렌드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한다. 작년 그들이 주목했던 건 다름 아닌 ‘게임’. 패션쇼 등 오프라인 행사가 어려워지자 발렌시아가는 〈애프터 월드: 더 에이지 오브 투모로〉 게임을 직접 만들어 2021 F/W 컬렉션을, 루이 비통은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고, 구찌는 모바일 게임 〈테니스 클래시〉와 협업했다. 2020년 명품 브랜드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게임은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동숲〉). 동물의 숲 캐릭터에 원하는 의상을 만들어 입힐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발렌티노는 〈동숲〉에서 20개 룩을 선보였고, 마크 제이콥스는 6개의 신상품 의류를 무료로 배포했다. 안나수이, GCDS 등도 동참해 화제를 낳았다. 주목할 점은 〈동숲〉이 온라인으로 친구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온택트(on-tact)’ 트렌드에 부합한다는 것. 이를 가장 빨리 파악하고 급부상한 스위치 게임을 온택트 마케팅의 새로운 창구로 활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Case 4 언리미티드 에디션 UE12 @Home 대형 서점에선 만날 수 없는 독특한 독립 서적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굿즈로 많은 사람, 특히 MZ세대에게 반응이 큰 행사가 바로 언리미티드 에디션. 지난해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새로운 방식을 고민했다. 기존 방문객들의 취향에 꼭 들어맞는 방법으로 온라인에서 북 페어를 여는 것으로, 2020년 9월 1~3일 사흘 동안 언리미티드 홈페이지를 통해 ‘UE12 @Home’이 개최됐다. 핵심은 ‘잘 설계된 홈페이지’를 기반으로 하는 것. 언리미티드 에디션 오프라인 행사의 재미는 각자의 개성으로 무장한 다양한 책을 구경하는 것이. 이를 놓치지 않도록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소장 욕구 자극하는 책 표지를 쭉 나열하고, 들어갈 때마다 나열된 순서가 바뀌도록 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했다. 더불어 오프라인 행사의 묘미인 ‘인증샷’을 온라인에서도 찍을 수 있게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자유롭게 배치한 뒤 이미지를 다운받도록 했다. 소위 말해 ‘예쁜 책’을 구매하고 ‘자랑’하려는 MZ세대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한 거다. 참가팀과 독립 출판물을 보여주고 판매하는 기능적인 면에 집중하기보단 같은 콘텐츠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주무대를 웹사이트로 옮겼음에도 언리미티드 에디션스러운 경험은 여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Case 5 G9 인스타그램 방탈출 게임 지금껏 많은 온라인 사이트는 자사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개하기 위해 팝업과 같은 전통적인 오프라인 홍보 방식을 써왔다. 지난해 쇼핑 사이트 G9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으로 무려 방탈출 게임을 기획해 참신한 이벤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방탈출 게임 계정에 들어가면 방 이미지가 하나 뜨는데, 각 물건 사진을 누르면 그 물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고, 어떤 사진엔 태그가 걸려 있어 다른 계정으로 이동해 더 자세히 조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힌트를 얻어 탈출에 성공하면 상품을 받게 되는 것. 인스타그램의 레이아웃과 SNS의 특성을 잘 살려 오프라인 못지않게 치밀한 방탈출 게임을 만들어냈는데, 이 이벤트의 목표는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자사 웹사이트 유입량을 늘리는 것. 목적이 어떻든 소비자들은 “광고든 아니든 일단 재밌으니 됐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Case 6 현대차 버추얼 쇼케이스 ‘비욘드 드라이브’ 현대자동차는 2020년 10월 ‘신개념 버추얼 쇼케이스’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신형 투싼을 공개하는 쇼케이스를 열었다. 한동안 마니아 문화에 머물렀던 버추얼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메인 스트림으로 떠오른 것과 궤를 같이하는 행사. 버추얼 비즈니스란 증강현실(AR) 및 확장 현실(XR)을 합친 개념으로 그 확장성이 무궁무진하다. 요즘은 가상 캐릭터가 SNS 계정을 운영하거나 게임을 통해 콘서트를 열고, 실제 아이돌과 그 아이돌의 아바타가 가상 세계에서 교류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 캐릭터로 구성된 가상 그룹 K/DA,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를 통해 공연을 펼친 트래비스 스캇, SM엔터테인먼트의 걸 그룹 에스파 등이 그 예.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선보인 쇼케이스는 신차 발표 기념 행사와 SM엔터테인먼트의 콘서트 플랫폼인 비욘드 라이브가 결합된 새로운 방식의 비대면 공연이다. 증강현실로 구현한 신형 투싼이 무대 위를 비행하고, 그 무대 위에선 엑소 멤버 카이가 초현실적인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단순히 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쇼케이스에 촘촘하게 스토리를 부여하고 세계관을 확장시켜 뛰어난 볼거리와 언택트 경험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