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디건 팬츠 모두 가격미정 코스. 목걸이 1만원, 반지 13만7원 모두 드와때.
하고 싶은데 안 시켜줘요. 하하. 언젠간 시켜주겠지 하면서 버티고 있어요.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버티고 있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도, 왜 저를 그렇게 안 써줄까요?
사실 윤세아라는 배우를 도회적이면서도 차가운 이미지로 인식하게 된 게 김은숙 작가의〈프라하의 연인〉〈신사의 품격〉〈시티홀〉등에서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게 다 김은숙 작가님 때문이네요? 하하. 이미지 바꿔달라고 해야겠네요. 그런데 연기자로서 이런 색깔을 가진 것도 능력이죠. 그게 한계라고 한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고요. 그렇다고 아쉽지는 않아요. 그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죠. 이것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작업하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좋아요. 오히려 이렇게 사람들이 새로운 면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 않느냐고 묻고 찌르니까 흔들리는 거예요. 때가 되고, 노력하면 언젠가 기회는 올 거라 생각해요.
내면이 단단해야 할 수 있는 생각이죠.
예전엔 속상했어요. 안 그런 척하지만 이 안에 다 쌓여 있다고요. 하하. 그런데 안 그런 척하다 보면, 진짜 괜찮아지기도 해요.
MBTI 테스트 같은 거 해본 적 있어요?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런 거 안 해도 되지 않아요? 물론 예전에는 상담도 받아보고, 점쟁이도 찾아가봤어요. 특히 심리 상담은 정말 도움이 많이 됐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과거를 훑게 되더라고요. 몰랐던 나 자신을 알게 되면서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지더라고요. 직업 특성상 대놓고 평가를 받지만,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에서도 서로를 평가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자격지심도 생기고 스스로 작아지는데,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나를 예뻐하고, 또 재미있는 걸 찾다 보면 극복하게 되는 것 같아요.
〈비밀의 숲〉두 번째 시즌이 방영되고 있어요. ‘이연재’는 남편 ‘이창준’(유재명)의 죽음 이후로 심적인 변화가 큰 인물이기도 해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 지금은 대기업의 대표이사직에 올라 야망을 드러내고 있죠.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즌 1에서는 이창준을 인생의 전부라 생각하며, 지켜보고 늘 참는 인물이었죠. 내(윤세아는 이연재를 1인칭으로 지칭했다) 인생의 굴곡은 이창준을 선택하고 결혼하면서 생겼죠. 내 안의 어떤 불만이나 불안감을 약으로 다스리고 버텼는데, 이제는 그때보단 감정을 발산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러나 여전히 내게는 이창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죠. 내가 한조그룹의 회장으로 나서면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이창준의 뜻을 잇고 싶을까, 거스르고 싶을까? 어떤 방식이든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을 것 같아요. 이창준이 죽고 난 후, 연재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 같은 사람이 됐어요. 혼란스럽고, 긴장되고, 지칠 거예요.
그래도 시즌 1 때 비해 감정적으로 발산하는 장면이 있어 연기하면서 후련했을 것 같아요.
감정 표출을 속 시원하고 멋있게 하는 게 아니라 답답하고 무겁고 힘들게 하죠. 연재가 대기업 대표지만, 새롭게 뭔가를 하지도 않잖아요. 그런 걸 봤을 때 연재는 여전히 올드한 생각을 가진 사람일 거예요. 어느 정도 줄타기는 하지만, 해소되지 않은 것이 있을 거고, 그게 너무 차오를 때 한 번씩 ‘찍’ 소리 내는 수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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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현 앞에서 “날 한 사람의 기업인으로 봐달라”라며 화장 지우는 장면은 엄청 연습했어요. 우스워 보일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현장에서 감정에 집중하다 보니, 그래도 잘 나온 것 같아요. 재미있던 댓글이 “창크나이트(‘이창준’과 ‘다크나이트’의 합성어, 비운의 영웅을 뜻함)와 조커가 부부였냐”고 하는 거였어요. 내가 립스틱을 지워 조커가 됐다면서 말이죠. 하하. 사실 그 장면을 촬영할 땐 한데서 옷을 다 벗은 기분이었어요. 촬영할 때 온몸이 떨릴 만큼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느낌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온몸에 털이 곤두서요. 그게 카타르시스라는 건가 싶어요. 진짜 살아 있음을 느꼈죠.
이렇게 말을 빨리, 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드라마에선 여유 있고, 우아한 연기만 본 것 같아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하하. 지문에 나와 있어 그렇게 연기하는 것뿐이죠.
성격이 급한 편이죠?
빠릿빠릿하다고 해주세요. 숙제는 제일 먼저 해서 내고, 매도 빨리 맞는 스타일이에요. 질질 끄는 걸 싫어하죠. 연애할 때도 그래요. 그래서 썸도 잘 못 타요. 상대가 좋으면 모공에서 하트가 쏟아진다니깐요? 하하. 신비로운 분위기? 노력해서 할 수는 있는데 금방 들켜요.
실제 성격과 비슷한 인물을 연기할 때 카타르시스를 더 느끼는 편인가요?
글쎄, 제가 연기한 많은 인물이 실제 성격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SKY 캐슬〉의 ‘노승혜’처럼 저 역시 마음이 따뜻한 편이에요. 반면에 〈비밀의 숲〉의 이연재처럼 한번 철벽 치면 무섭죠. 화날 땐 정말 차분해져요. 예전엔 화나면 눈물부터 났는데, 요즘엔 심호흡을 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려고 해요. 그리고 ‘나는 내가 아니다’라고 되뇌죠. 부끄럽거나 화를 낼 때는 그렇게 자기 최면을 거는 것 같아요.
데뷔한 지 16년이 됐어요.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요?
재미죠. 일이 나를 끊임없이 흥분시키고, 채찍질하고, 내가 좀 더 열심히, 더 바르게 잘 살 수 있게 해줘요. 힘든 점도 있죠. 하지만 저만 힘든 것도 아니고, 그걸 다독여주는 반려동물, 친구, 가족, 동료들이 있잖아요. 그들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단련시키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나를 지탱해주는 것 같아요. 데뷔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작품을 했더라고요. 사람들은 왜 윤세아라는 배우를 찾을까요? 말을 잘 들어서요? 하하. 사실 저는 상대가 예의만 갖추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는 편이에요. 오죽하면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할까 싶거든요. 그런데 나를 만만하게 생각해서 하는 부탁은 들어주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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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타분한 생각인지 몰라도, 내 옆에 함께할 상대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길 바라요. 대단한 인물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하죠.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어요. 연애는 좋지만 같이 살 자신은 없거든요. 함께 산다는 건 희생이 필요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시간을 할애하는 게 아깝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면 좋겠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설렘’이라는 감정을 잊곤 하죠. 최근에 설레었던 경험 있어요?
〈비밀의 숲〉제작 발표회를 하는데, 조승우 씨가 갑자기 저한테 “어, 누나 오늘 예쁘네?” 이러는 거예요.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었는데, 갑자기 떨리더라고요. 찰나였는데, 너무 길게 느껴졌어요. 그 순간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순댓국 먹고 싶다”라고 말했어요. 너무 당황했던 거죠. 그 와중에 너무 떨려 솔직한 속내를 말하지 못했던 거예요. 뜬금없는 내 반응이 제가 생각해도 너무 웃겼어요. 그냥 그런 순간순간 나에게도 소녀 같은 면이 있다는 걸 느껴요. 하하.
사람들이 세월을 거스르기 위해 애쓰는 ‘안티에이징’보단 ‘웰에이징’을 지향하는 것 같아요. 윤세아 씨는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요?
하루하루 후회 안 하고,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뭐든 재미있게 허투루 넘기지 말고, 기억에 남게 하는 거죠. 감정이나 숨도 좀 편안하게, 너무 가쁘지 않게 말이에요.
늘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죠. 요즘엔 뭘 하고 싶어요?
이미 하고 있는데, 뭔지는 말해줄 수 없어요. 제가 입이 좀 가벼워 너무 말하고 싶은데 미안해요. 비밀이라. 차기작과 관련이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