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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에 '섹스' 단어가 들어간 잡지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

코스모가 어엿한 20살을 맞이할 수 있는, 그 시작을 만들어준 사람들. 그들을 대표해 창간 당시 편집장 윤경혜가 말한다. 코스모가 태어났던 그때 말이야~.

BYCOSMOPOLITAN2020.09.10
 
2000년 8월 15일 〈코스모폴리탄〉 한국판이 창간됐을 때, 이 잡지가 많은 젊은이에게 인생의 바이블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평소에 즐겨 보던 잡지 〈코스모폴리탄〉의 한국판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 편집장 후보로 인터뷰를 한 게 그해 4월 초. 내 인생 최초의 편집장이 돼 6명의 에디터와 밤낮없이 창간호를 마감하고 인쇄소에서 가슴 졸이며 첫 인쇄본을 기다리던 순간이 기억난다.
 
사실 코스모는 창간 직후부터 2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시대가 원하는 핫 이슈, 러브&섹스와 커리어를 솔직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다루니 단숨에 열성 팬이 많아졌다. 메이크업 받으러 간 유명 여배우가 미용실에서 코스모 잡지 페이지를 찢어서 가져가기도 했고, 모 가수는 코스모가 알려준 키스 방법을 남친에게 시도했다며 TV 인터뷰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창간 이래 늘 판매율 1·2등을 했던 코스모 단골 주제는 남자, 연애, 성공. ‘How to Touch a Naked Man’, ‘산부인과 가기가 두렵습니까?’, ‘코스모 우먼 1000명 인터뷰, 나의 첫 섹스’,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기:아부의 법칙’ 등 이제까지 못 보던 신선한 주제는 코스모에서만 읽을 수 있는 매력적인 기사였다. 특히 우리 주위의 멋진 싱글 가이를 소개하는 핫 가이 칼럼은 이후에 핫 가이 콘테스트로 확대될 만큼 독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요즘도 가끔 멋진 남성분들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저 예전에 코스모 핫 가이에 나왔어요” 하며 자랑스럽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창간 직후부터 서점 진열대에서 코스모 커버는 단연 시선을 사로잡았다. 표지의 기본 룰이 있었는데, 반드시 가슴골, 허벅지, 허리 중에 하나는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당당하게 S라인을 뽐내야 했다. 이전의 잡지 표지는 독자와 시선도 안 맞추고 전체적인 스타일을 중시했던 터라 이 포즈에 익숙지 않은 셀렙들은 너무 야하다, 다른 옷 달라며 촬영장에서 담당 에디터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잡지 표지를 보면 대부분 코스모처럼 전신 컷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 커버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 셈이다. 코스모의 이미지와 잘 맞는 셀렙을 꼽는다면 단연 이효리다. 사실 어느 매체나 그 매체에 어울리는 셀렙이 있기 마련이다. 이효리는 내 기억으론 코스모 표지 모델로 여섯 번 등장했다. 언제나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살아가는 그녀. 그녀가 입고 촬영한 수영복은 그때마다 품절됐던 기억도 난다.
 
창간호를 내고 석 달 후, 회사에서 매거진 부문 대졸 신입 공채가 있었다. 코스모는 이미 창간팀 세팅이 끝난 뒤라 빈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많은 응시생이 코스모를 희망 매체로 신청했다는 얘기를 타 매체 본부장들에게 듣고 내심 무척 반갑고 감사하게 생각했다. 최소한 대학생들에게 이 매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으니. 코스모가 인기를 끌면서 모 패션지 에디터들이 자신들의 편집장에게 “저희도 코스모 같은 기사를 만들고 싶다”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편집장으로 잡지를 만들면서 나 자신도 코스모로 인해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됐고, 타인에  대해 공감을 더 잘하면서 친구가 엄청 많아졌다.
 

 
코스모 창간을 앞두고 편집장 교육차 뉴욕을 찾았을 때 대부분의 뉴요커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나라인지 기초 지식이 너무 없어 내심 기분도 상하고 의기소침했었다. 오죽하면 다른 나라 편집장이 한국판 창간을 알리며 엉뚱한 곳에 있는 나라로 설명하는 바람에 뉴욕 오피스에 항의를 할 정도였다. 한류와 더불어 한국과 우리 잡지에 대한 60개국 코스모 에디션의 관심도 같이 커졌다. 2004년인가, 전지현이 출연한 영화가 중화권을 휩쓸었을 때 홍콩 편집장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편집장이 지아니 전(전지현) 인터뷰 요청을 했다. 코스모 한국판에 소개된 셀렙은 중국, 홍콩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도 자주 기사화됐다.
 
그러나 몇 가지 고충도 있었다. 창간 초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정 칼럼인) 컨페션 코너 담당 에디터는 매달 사례를 모으느라 진땀을 흘렸다. 코스모 특성상 전문가와 더불어 일반 독자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칼럼을 기획해야 했는데, 자신의 이야기(연애와 섹스 경험담, 직장 생활 고충 등)를 그것도 매우 개인적인 심경을 토로하기에는 2000년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꽤나 폐쇄적이었다. 그래서 한때 피처 에디터를 뽑을 때 친구가 많은지 물어보기도 했다. 주변에 사례가 될 친구가 많은 에디터가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스모가 솔직하게 이슈를 다루다 보니 점잖은 광고주들은 광고 게재를 매우 망설였다. 당시만 해도 대놓고 섹스라는 단어를 언급하면 질이 좋지 않은 잡지처럼 취급받았다(코스모 섹스 기사가 160페이지에서 불과 7페이지, 건전하고 건강한 성생활에 대한 정보성 기사였음에도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매년 경고를 받기도 했다). 광고주의 마음을 움직인 리얼 인플루언서는 바로 그 브랜드에서 일하는 젊은 홍보 담당자들이었다. 상사의 출장 가방에 코스모를 넣으며 비행기에서 읽으라 권하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몰래 서랍 안에 펼쳐놓고 보다가 들키기도 하며 서서히 브랜드들이 미국판에서도 보지 못한 멋진 비주얼의 광고를 코스모에 싣기 시작했다. 코스모가 바로 밀레니얼들을 대변한 잡지였기 때문이다. 달라진 세상을 사는 젊은이의 문화를 따라잡으려면 코스모를 읽어야 했다. 나중에 몇몇 브랜드의 사장은 ‘남자인 나도 읽는 여성지’라는 기사에 소감을 말해주기도 했다.
 
내 책 〈차가운 열정으로 우아하게 미쳐라〉에도 적었지만, 편집장으로 잡지를 만들면서 나 자신도 코스모로 인해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됐고, 타인에 대해 공감을 더 잘하면서 친구가 엄청 많아졌다. 코로나19로 모두가 불확실한 앞날과 현실에 지치고 힘들지만 코스모를 읽으며 많은 젊은이가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  
 
 
2000년 7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코스모폴리탄〉을 책임졌던 윤경혜 전 편집장.

2000년 7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코스모폴리탄〉을 책임졌던 윤경혜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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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Writer 윤경혜(컨설팅회사 ‘눈이부시게’ 대표)
  • Photo by 최성욱
  • Digital Design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