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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부캐' 하나쯤은 있잖아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라고 울부짖던 이들이 이제는 뻔뻔하게, ‘너무 많은 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BYCOSMOPOLITAN2020.07.25
 
요즘 연예인들의 일탈이 눈에 띈다. 유산슬, 김다비, 카피추, 비룡 등은 본캐를 버린 부캐들의 이름이다. 게임에서 쓰는, 주요 캐릭터 말고 필요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캐릭터를 의미하는 ‘부캐(부캐릭터)’를 연예계에서 가장 활발히 쓰고 있다. 본캐가 누구인지 알지만 대중은 기꺼이 그들의 뻔뻔한 연기에 속아준다. 처음에는 역할극처럼 가볍게 다뤘지만, 지금은 부캐에 대한 설명이 더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개그맨 김신영의 부캐인 김다비는 김신영의 둘째 이모로, 1945년 1월 대구에서 비가 많이 오는 날에 태어났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서 김다비를 검색하면 김신영의 이름 괄호 안에 ‘둘째이모 김다비’라고 뜬다. 이렇듯 인물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일수록 대중의 호응을 받는다. 비록 김신영이 만든 캐릭터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보이는 이미지로만 살아야 하는 연예인들이 ‘부캐’를 만들어 일시적이나마 다른 인물이 돼 활동 영역을 넓히는 건 그들 나름대로 욕망 실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유재석은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활동하며 데뷔 28년 만에 MBC 방송연예대상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이 모든 걸 다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유쾌하게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재미다. 사람들이 일종의 역할 놀이에 재미를 느낀다는 것. 한 연예부 기자는 “부캐들이 만든 큰 세계관 안에서 유재석은 유산슬이 되죠.  유산슬만큼은  ‘나만 아는 스타’가 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연예인 스스로 본캐와 부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유재석은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재석으로 만나도 유산슬로 사인을 해달라고 하셔서 ‘유산슬 사인이 있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란스럽다”라고 솔직한 속내를 밝힌 바 있다.
 
또한 이 부캐들은 사람들의 ‘대리 만족’을 충족시킨다. 누구나  몇십 년 동안 살아온 나 자신과는 또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부캐들은 그 욕망을 대신 충족해준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인 최명기 원장은 이 심리를 뒷받침한다. “누구나 진짜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본인의 성격으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아무도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과 다른 인생을 즐기는 상상을 하게 되는 거죠.” 부캐 열풍은 많은 사람이 컴퓨터 전원을 껐다 켜듯 인생을 리셋하려는 현상인 ‘리셋 증후군’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욕망을 온라인에서 채운다. 방법은 여러 가지다. 계정 프로필 사진을 바꿔 전혀 다른 자아로 활동하거나 본계정 외에 부계정을 만들어 SNS를 관리하고, 유튜버로 현실과 다른 ‘인싸’의 삶을 살기도 한다. 여자가 남자가 되고, 어른이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현실 세계와 전혀 다른 삶에 대한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욕망 실현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누군가가 당신의 부캐를 보고 호감을 가졌다 쳐요. 그러다 당신의 본캐를 확인하고 부캐가 실체가 아닌 걸 알면 실망하게 됩니다. 따라서 본캐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다른 부캐를 보여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최명기 원장의 설명이다. 연예인, 비연예인을 떠나 본캐와 부캐의 반응 온도 차는 당사자가 본캐에 얼마나 충실한 사람이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 결과적으로 부캐의 존재감은 본캐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이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을 ‘멀티 페르소나’라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가면을 쓴다. 디지털에서 활발히 활동할수록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가면은 더 많아질 수 있다. 그럴수록 본캐와 부캐를 분리하는 심리적 기술은 더욱 필요하다. 우리가 유재석과 유산슬, 김신영과 김다비를 헷갈려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유쾌한 가면을 쓸 수 있을까? 누군가가 씌워준 가면 말고, 오롯이 내가 원하는 가면으로 말이다. 어쩌면 부캐가 가장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바쁘디바쁜’ 우리 현대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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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전소영
  • photo by 각 방송사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