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고발해도 소용 없다? 대한민국에서의 성범죄

용기 내어 고발하면 뭐하나. 법의 심판은 가해자를 스치듯 지나쳐갈 뿐. 피해자의 설움은 아직 풀리지 않았는데, 가해자들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게 되는 이상한 일이 왜 자꾸 발생할까?

BYCOSMOPOLITAN2020.07.24
 
웹사이트 ‘웰컴투비디오’에서 약 20만 개, 총 8테라바이트에 이르는 아동 성 착취물을 유통한 손정우의 미국 송환 심사가 얼마 전 열렸다. 한국 법원의 최종 입장은 ‘송환을 불허한다’였다. 이로써 그는 18개월을 복역하고 만기 출소하게 됐다. ‘18개월’은 고시원에서 달걀 18개를 훔친 생계형 범죄자에게 내려진 것과 동일한 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송환을 심사한 강영수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에 대해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국민 청원에 동의자가 50만 명을 넘었고, 시민 행동 단체인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은 법원 앞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정의는 죽었다’라는 비난을 대신했다.
 

한국 법에는 왜 매운맛이 없나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집행유예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성범죄 사건이 쌓이고 쌓여 지난 N번방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손정우 사건의 경우 미국에 송환됐다면 최소 15년에서 20년형까지 선고받았을 거란 예측이 더해져 더욱 큰 비교 대상이 됐다. 신진희 피해자 국선 전담 변호사는 “정확한 형량 비교를 위해서는 미국이나 영국보다 한국과 같은 법 체계를 가진 일본이나 독일과 비교해야 해요. 또 일명 ‘장발장’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동종 전과가 너무 많아 이례적으로 실형이 선고된 것이죠”라며 단순 비교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손정우의 미국 송환 불허 결정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온당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것이다. “성범죄는 가장 죄질이 무거운 ‘살인’보다 일반적으로 낮은 수준의 범죄로 판단되죠. 한국의 유기징역 상한선이 30년인데 성폭행의 경우 대부분 3년형을 받아요.” 결국 정해진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한층 증폭된 국민의 법 감정을 대변할 만큼 형량을 선고하기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정의의 이름은 왜 성범죄자를 용서하는가

2017년 5월 클럽을 찾은 여성을 대상으로 발생한 조직적 성폭행 사건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피해자의 재정신청으로 3년 만인 2020년 5월 재판이 다시 이뤄졌지만 법원은 “피해자의 항거 불능 상태임은 분명하나 그것이 피고인이 만취 상태를 이용하여 강간을 하였다는 고의를 증명하기 어렵다”라며 또다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역시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은 “성폭력은 젠더화된 범죄예요. 쉽게 말해 사회적인 성차별이 원인이 되는 범죄라는 거죠. 이 경우 판결 과정에서도 차별적 문화가 완전히 배제됐다고 보기는 힘들어요”라고 지적한다. “폭행과 협박의 정도가 심해야만 고의성을 인정하거나, 술을 마신 것 자체를 동의의 신호라고 판단하는 식의 ‘성행위 동의 기준’을 바꿔야 해요.” 김혜정 부소장은 또 한국 법이 세워진 바탕 자체가 남성 중심적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단적인 예로 1953년에 형법이 제정됐을 당시 32장 제목이 ‘정조에 관한 죄’였어요. 여성의 정조를 국가가 지키겠다는 의미였죠.” 이렇듯 명백한 성차별적 조항이 삭제된 건 1995년이었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고 나서다. “관련 법 개정 운동, 대법원 판례 바꾸기 운동 등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입니다.”
지난 2월 19일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범죄 양형 기준에 대한 의견서를 발표한 바 있다. 양형 기준에 있어 성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해 수정돼야 할 부분을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정리한 것이다. 성폭력 사건 판결에서 단골로 등장하곤 했던 “주취에 따른 심신미약 감경”, “초범이라는 이유로 감경된 경우” 외에 “피고인의 평판과 업적에 의한 감경”, “진지한 반성에 의한 감경”을 비롯해 6가지가 문제로 제기됐다. 거꾸로 얘기하면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에서 이 6가지 이유로 상식에 위배되는 ‘솜방망이’ 처벌이 나온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의견서에 따르면 주취 상태에서 일어난 범죄가 전체 강력 범죄와 폭력 범죄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주취’에 따른 범죄에 관대한 문화를 근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비율이 다른 범죄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초범’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피고인의 평판과 업적’에 따른 감경은 법적인 양형 기준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실제 감경한 관련 사례가 많다. 이는 가해자가 자신의 평판이나 업적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며 처벌 이후에도 2차 피해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상식적이지 않다.
 

 
성폭력은 젠더화된 범죄예요. 쉽게 말해 사회적인 성차별이 원인이 되는 범죄라는 거죠. 이 경우 판결 과정에서도 차별적 문화가 완전히 배제됐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내가 증인이라니…!

재판의 체계도 피해자에게 불리하다. “형사재판의 초점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고인인 가해자예요. 피해 사실이 아닌 가해 사실을 판단하는 것이기에 피해자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될 수 없는 구조죠”라고 신진희 변호사는 설명한다. ‘증인’ 신분이 된 피해자는 가해자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증언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성범죄 사건에서 ‘합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형사재판만 해도 피해자가 일상생활이 불가할 만큼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돼요. 정신적 스트레스도 엄청나죠. 그러다 보니 가해자와 합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사재판에서 40% 정도는 집행유예를 받는데, 대부분은 ‘합의했기 때문에’가 사유에 포함돼 있어요”라고 설명한다. “한 번은 가해자가 현재 재정 상황 상 합의금 일부를 먼저 지급하고 재판 이후에 차액을 지불하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재판이 종료되면 피해자가 합의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가 없죠. 재판장에게 ‘형사재판 판결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춰달라’고 여러 번 탄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가해자에게 추가 피해 보상을 요구하려면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지만, 소장 제출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개인 정보가 모두 공개되기 때문에 이 또한 피해자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민사소송 자체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다행히도 분노를 한군데로 모아 꾸준히 문제 제기한 덕에 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판결이 한 단계씩 성장해왔다고 신진희 변호사는 말한다. 그는 “최근 아동 대상 성범죄가 10년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어요. 과거에 대부분 4~5년형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그래도 나아진 편이에요. 지난 5월 19일 의제강간 연령이 상향된 것이 판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고요. 알려진 사건은 아니지만 단독으로 유사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얼마 전 10년형을 선고받았어요. 조주빈과 그 일당은 조직적 범죄 사실이 인정되면 아마 더 큰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라고 덧붙였다. 판사들 역시 언론의 보도나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내 일처럼 나서서 분노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죠.” 한편으로, 가해자에 대해 응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적 화력이 피해자가 적절히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노력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최소한 2차 피해의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김혜정 부소장은 “우리 사회는 가해자 중심의 서사에 익숙해져 있어요. 어려서부터 성추행을 가벼운 장난 정도로 축소하며 폭력을 정당화해왔죠. 그러다 보면 이 굳건한 체계에 균열을 내고 문제 제기하는 개인이 불편한 사람 취급받는 일이 생깁니다”라고 말한다. 가해자에 이입하는 사고가 피해자에게는 상처로 다가올 수 있다. 심한 경우 자신이 범죄를 당한 피해자라는 생각보다, ‘사회를 무너뜨린’ 것으로 비난받아야 할 가해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최근 안희정 전 지사의 모친상에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계 유력 인사들이 조화를 보내거나 조문한 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를 공개적인 5일장인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르는 행위가 비판받는 이유다. 가해자가 권력을 이용해 저지른 위력형 성범죄이거나 그렇다고 추정되는 사건에서조차도 가해자의 권력이 다시 과시되는 광경은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에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내가 속한 공간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고발한 개인을 ‘조직을 깨버린 사람’이라고 여기는 심리가 있어요. 가해자들이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문제가 복잡해져요. 작게는 한 집안의 가장, 크게는 사회 단체의 장이 될 수 있죠”라고 김혜정 부소장은 분석한다. 그는 언제나 약자의 목소리는 기존의 분위기를 깨는 것이 될 수밖에 없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불편함을 이겨낼 것을 강조한다. “조직이 분열하지 않고 지속하려면 피해자를 무시하고 사회에서 격리하는 게 아니라 성폭력이 일어나는 구조적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합니다. 공공기관이나 회사뿐 아니라 학교, 가족, 지인 관계, 연인 등 작은 집단에도 적용되는 원리죠.” 결과적으로 범죄의 무거움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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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김예린
  • photo by Stocksy/Getty Images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