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집구석에서 즐기는 휴가법 12

바깥은 완연한 여름, 현실은 궁색한 집구석. 휴가철을 뺏긴 코스모 에디터들은 어떻게 존버하고 있을까?

BYCOSMOPOLITAN2020.07.04
 
 
 
올드 팝 들으며 피자 먹기
혼자 떠난 방콕 여행 마지막 날. 수중에 남은 돈이 별로 없어 수쿰윗 지하철역 앞에서 조각 피자를 먹으며 올드 팝 버스킹을 감상한 적 있다. ‘귀국병’이 묘하게 누그러지더라. 선 채로 피자를 다 먹은 나는 기립 박수 대신 20바트 한 장을 바이올린 케이스에 넣었다. 그 뒤로 가끔 월요병이 도질 때면 올드 팝을 배경음악 삼아 피자를 뜯는다. 일요일 밤의 멜랑콜리, 그리고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방콕의 피자 가게와 ‘Careless Whisper’의 조합. 그 둘은 어딘지 공명하는 데가 있다. - 김예린(피처 에디터)
 

 
② 틱톡 여행 챌린지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도 음식도 다 좋지만, 나는 여행을 ‘길’로 기억한다. 몇 년 전 세계를 유랑하며 가장 좋아했던 길들을 방구석에서 추억해보곤 한다. 요즘 푹 빠져 있는 앱인 틱톡에서는 그린 스크린을 이용해 마치 내가 그 안에서 다시 걷고 있는 듯한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오프로드로 달렸던 황량한 몽골 초원, 힘겹게 올라간 사막 언덕에서 보드를 타고 내려왔던 모래 미끄럼틀, 에메랄드 바다를 양쪽에 끼고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로 달렸던 호화로운 도로까지. 과거에 내가 직접 걸으며 찍었던 영상 속에서 오늘도 나는 걸어본다. - 정예진(디지털 에디터)
 

 
③ 집에서 즐기는 태닝
태닝을 좋아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무구한 속살을 내놓고 지글지글 굽는 그 맛! 잔잔한 바람에 시원한 청량음료, 에어팟 너머로 아스라이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음까지 삼박자가 맞으면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다. 까맣게 탄 가슴팍과 허옇게 남은 수영복 자국의 대비는 여름 내내 여행의 기억을 되새기게 하고. 집에서도 가끔은 수영복을 입고 창문 넘어 들어온 한 평짜리 빛줄기를 따라 뒹굴거린다. 다음엔 꼭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가야지. - 송명경(디지털 에디터)
 

 
④ 제주도 오는정김밥 만들어 먹기
운전을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제법 생겼다. 덕분에 작년 여름에는 제주도에서 차 뒷좌석에 누워 경치를 감상하는 편안한 여행을 즐겼다. 재미있는 사실은 제주도에서 해산물 요리보다 김밥이 더 ‘핫’하다는 것이다. 늘 대기 인원이 많아 100통 넘게 전화해서야 겨우 ‘오는정김밥’을 손에 넣었다. 유명한 맛의 비결은 밥에 잘게 썰어 넣은 볶은 유부다. 어렵지 않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레시피! 요즘은 집과 회사를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어딘지 조금 다른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마다 김밥에 유부를 송송 썰어 넣곤 한다. 소박하지만 한 끗 있는 일상의 MSG다. - 최예지(디지털 에디터)
 

 
⑤ 에어컨 빵빵한 방에서 미술 서적 감상
모태 신앙과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타지에서 익숙한 것이 그리울 때마다 자연스레 성당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유구한 시간을 품은 공간과 그 안을 채운 미술품,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신을 향한 인간의 간절한 마음을 느끼며 독실한 신자 코스프레를 한다(매일 성당 좀 가라고 노래를 부르는 우리 엄마는 모르는 사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인 내 방에서, 마음을 평화롭게 할 향을 피우고 아름다운 중세 미술 서적을 감상할 생각이다. 소프라노 신영옥의 성가곡 음반까지 있으면 그야말로 ‘홀리’데이! - 이병호(패션 에디터)
 

 
⑥ 꼬따오에서 남긴 에스프레소 마티니 만들어 마시기
1년에 한 번은 꼭 다이빙 여행을 가곤 했다. 그중 태국의 외딴섬, 꼬따오에서의 마지막 밤은 유난히 찐한 기억으로 남았다. 해변의 어느 바에 혼자 앉아 현지인이 추천한 에스프레소 마티니 한 잔을 마셨고, 술과 분위기에 취한 나는 이 아름다운 섬을 꼭 다시 찾겠다는 다짐으로 한 모금을 남겼다. 요즘처럼 바다와 스쿠버다이빙이 간절해질 때면,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한 잔 만든다. 진한 알코올이 목구멍을 뜨겁게 덥히며 넘어가는 순간, 심해에서 이따금씩 느껴지던 귀의 압력과 통증,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오면 머리 위로 부서지던 햇빛, 그리고 입안에 느껴지던 바닷물의 짠맛까지, 오감으로 남아 있는 다이빙의 추억이 선명해진다. - 하예진(피처 에디터)
 

 
⑦ 라탄 부채 걸어두기
지난해 발리 우붓에서 러닝을 즐기고 채식을 하며 마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속 줄리아 로버츠가 된 듯한 나날을 보냈다(운동과 사랑에 빠졌다는 점이 다르지만). 둘째 날 아침 트레일 러닝을 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가고 싶었던 숍을 마주쳤다. 가져온 돈은 물을 사기 위한 것이었지만 왠지 라탄 부채를 지금 꼭 사야 할 것 같았다. 신기한 건, 숍을 나와 물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새로 오픈한 어느 카페에서 인심 좋게도 목 축이라며 아이스커피를 건넸다는 사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때쯤, 발리에서의 행운을 상징하는 부채를 내 방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꺼내두어야 겠다. 다시 열정적으로 달릴 그날을 꿈꾸며. - 김지후(패션 디렉터)
 

 
⑧ 기도패와 함께하는 명상 타임
낯선 것들에 둘러싸인 여행을 좋아하지만, 지난해 별생각 없이 참여한 버닝맨(Burning Man) 페스티벌은 낯선 정도가 아니었다(간단히 말해 버닝맨은 ‘탈상업화 라이프스타일 공동체’이며, 참가자들은 버닝맨이 ‘페스티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가상의 도시 블랙 록 시티에서 친구 6명과 함께 커다란 캠핑카에 기름과 물, 식자재를 꾸역꾸역 채워 5일을 살아냈다. 인종, 성별 같은 꼬리표 없는 온전한 자유의 복판에 떨어뜨려진 경험. 마지막 날 깜깜한 사막에서 사람 조형물을 태우는 ‘맨 번’ 의식을 보며, 평소 우리가 얼마나 사소한 것들에 사로잡혀 사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좀 더 스케일 크게 살아가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모래가 묻어 있는 가방과 기도패를 방 안에 두고 볼 때마다 그 마음을 떠올린다. - 이영우(패션 에디터)
 

 
⑨ 해외 카페에서 모은 포장 설탕 정리하기
파리 생토노레 거리에 있는 오래된 카페 베를레에서였다. 주문한 커피와 함께 점원이 건넨 조그만 설탕 스틱 패키지가 너무 예뻐 차마 먹지 못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혼자 떠난 첫 여행, 긴장된 설렘이 너무 좋아 쓰디쓴 커피도 달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카페에서 받는 일회용 설탕을 수집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끔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지에서 느꼈던 찰나의 감정들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 정유진(뷰티 에디터)
 

 
⑩ 마트에서 열대 과일 사 먹기
오랜 비행으로 온몸이 무거운 여행 첫날에도, 꼭 의식처럼 근처 마트에 들른다. 낯선 곳의 시장에서 행렬을 맞춰 정갈히 진열된 색색의 과일을 구경한 뒤, 한 보따리 두둑하게 사 들고 호텔로 온다. 납작 복숭아, 표주박 배, 망고스틴… 그 나라의 날씨와 냄새를 머금은 과일을 한 입 크게 베어 먹으면 진정으로 낯선 곳에 온 기분이 든다고 할까? 언제 다시 해외여행을 가게 될지 모르는 지금은 고급 마트에서 산 열대 과일을 까먹으면서 그 기분을 떠올린다. - 송가혜(뷰티 에디터)
 

 
⑪ 랜선 쇼핑 탕진잼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현지 쇼핑을 더는 누릴 수 없게 된 것. 특히나 휴가 시즌에는 파격 세일을 하는 탓에 제대로 플렉스를 즐기곤 했는데 말이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처음으로 온라인 직구 쇼핑을 시작했다. 제품보다 포장이 더 화려한 쇼핑백을 메고 ‘부자 놀이’하던 그때를 추억하며 오늘도 난 값비싼 고가의 제품을 장바구니에 넣고 삭제하기를 반복한다. - 하윤진(뷰티 디렉터)
 

 
⑫ 가고 싶은 도시가 배경인 영화 보기
영화를 보다 문득 다음 휴가지를 정하곤 한다. 요즘은 홀연히 떠나고 싶을 때 영화를 본다. 〈유브 갓 메일〉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한물간 로코물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멕 라이언 언니의 사랑스러움과 휴 그랜트 오빠의 스위트함, ‘브리짓’ 언니의 유머는 여전하다. 빠르게 변하는 서울과 달리 런던과 뉴욕은, 영화 속 그들처럼 그대로일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그 환상을 자꾸만 깨는 뉴스 속 그 도시들의 현재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서글프다. - 전소영(피처 디렉터)

Keyword

Credit

  • Editor 김예린
  • photo by 최성욱
  • illustrator Natalia Volgina
  • cooperation 오에프알 서울(미술 서적)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