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리를 단순히 핑클의 청순 요정 출신, 섹시 여가수, 혹은 엔터테이너로 정의하기엔 부족하다. 섹시한데 웃기고, 초연한 듯 진중하다.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를 뽐내다가도 금세 민낯의 ‘소길댁’으로 변신하고, 이상순과 나란히 손을 잡고 기대앉은 사진이 사회적 기업 ‘아지오’의 메인 페이지를 장식하는가 하면 오프 숄더 블라우스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보여 주려고 입은 거야!”라며 호탕하게 웃기도 한다. 쉬는 날이면 요가 수련을 하고 털털한 모습으로 유기견 센터에서 봉사하는 것도, ‘G린다’라는 이름으로 ‘꼬만춤’을 추며 잇몸 미소 만개하는 것도 그대로 이효리다. 단맛과 짠맛, 신맛과 매운맛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내뿜는 자신감! 코스모 커버 걸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모아 봤다. 2010년부터 무려 8번이나 코스모 커버를 장식한 효리들, 그리고 10년간 그가 코스모에 풀어낸 이야기의 조각들.
“제가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섹시함에 대한 저만의 정의가 있기 때문이에요. 섹시함이라는 게 이성을 유혹하는 뇌쇄적인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어떤 자리나 위치에서 자기만의 존재감이 확실한 것도 포함되거든요. (중략)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저만의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섹시하다고 말할 수 있고, 사람들도 저를 섹시하다고 얘기해준 것 같아요.”
“누구나 각자 지킬 수 있는, 지구 환경과 동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 있잖아요. 물론 ‘최선’이라는 게 각자의 위치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기부를 하고, 시간이 있다면 봉사를 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떳떳한 만큼, 내가 할 만큼은 다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초반엔 종종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혹시 술 마시고 클럽에서 춤추는 내 모습을 보면 욕하지 않을까? 야한 옷 입는다고 악플 달지 않을까?’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얘기할지 항상 두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게 큰 문제는 아닌데 말이죠. 내 중심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저의 다양한 모습을 인정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얘기가 진심이라면. 그리고 저 역시 어떤 상황에서든 일정 선을 지키며 행동할 거란 믿음도 생겼고요.”
“결혼식 날 집 밖에 있던 모 연예 정보 프로 피디님으로부터 쪽지를 받았어요. 위에서 꼭 취재해 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왔고, 좋은 날 미안하고, 최대한 방해 안 되게 촬영하고 가겠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카드를 읽는 순간 마음이 짠했어요. 사실 치열한 세상에서 모두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악의는 없는 거니까요. 서로가 그럴 수밖에 없음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어요.”
“꼭 행복해야만 성공한 인생이라는 강박을 버리는 것?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항상 행복할 수만은 없는 거니까요. 반드시, 꼭,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부터 불행이 오는 것 같거든요. 그냥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을, 남에게 못된 소리 하지 않고, 나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남들 뭐 입고 뭐 먹고 뭐 하고 사는지만 들여다보며 나와 비교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해하며 잘 사는 거죠.”
이효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화장품도 덜어내고, 메이크업도 덜 하며, 더 예뻐지겠다는 욕심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생기가 넘치고, 데뷔 때보다 훨씬 맑은 안색과 눈빛을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중의 관심을 피해 내려간 제주에서의 삶이나, 건강을 위해 먹은 병아리콩,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케어’조차도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유행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효리에게 이것은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브라운관을 통해 본 이효리의 얼굴에선 굳건한 평정심 같은 게 느껴졌어요.
“다른 사람의 말이나 평가보다 자기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가 자신의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저한테 그런 게 보였다면… ‘아, 나 이만하면잘 살고 있는 거구나’라는 마음이 든 걸까요? 흐흐. 그치만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아요. 내가 나 자신에게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고 싶어요.”
“40년을 살았고 그중 20년을 연예계에서 활동해보니 좋을 때와 나쁠 때가 늘 공존한다는 것을 알거든요. 그게 인생인 것 같아요. 잘되면 ‘운이 좋은 때인가 보다’ 생각하고, 잘 안 되면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다’ 생각하죠.”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어떤 상황이 좋고, 나빠서 거기에 끌려가는 사람은 있겠죠. 다만 저는 크게 욕심내지 않고 작은 일에 만족하며 혼자보다는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