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미혼으로 딸을 키운다는 것

사연 없는 가족이 어딨겠냐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족이 뭐길래’ 싶다. 그렇게 가족 사진이 완성되는 동안 든 생각. 가족에 있어 ‘뭣이 중헌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BYCOSMOPOLITAN2020.05.16
 
 
한 소녀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을 때,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당시엔 당연한 결정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당시 자신의 나이가 생각보다 많이 어렸구나 싶다. 5년만 지나면 딸이 그 당시 엄마의 나이가 되니 말이다. 14년이라는 시간만큼 엄마와 딸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딸에게 고마워요. 내가 만약 아이가 없는 그냥 미혼의 일반인이었다면 무슨 개성이 있겠어요?” 과연 그 어머니와 그 딸. 둘은 이렇게 키우고 이렇게 컸다.

 
(박시연)가죽 원피스 가격미정 코스. 티셔츠 9만8천원 포트레이트 리포트. 스니커즈 가격미정 아식스X키코 코스타디노브. (박수진)셔츠 19만8천원 로우 클래식. 가죽 팬츠 45만원 코스. 스니커즈 가격미정 아식스X키코 코스타디노브. 주얼리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시연)가죽 원피스 가격미정 코스. 티셔츠 9만8천원 포트레이트 리포트. 스니커즈 가격미정 아식스X키코 코스타디노브. (박수진)셔츠 19만8천원 로우 클래식. 가죽 팬츠 45만원 코스. 스니커즈 가격미정 아식스X키코 코스타디노브. 주얼리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수진(34세) 아로마테라피스트. 아로마 화장품, 디퓨저와 캔들 자격증 전문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늦깎이 17학번으로, 전공인 상담심리학을 사춘기 딸을 이해하는 데 활용하는 의외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박시연(14세)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입학식도 하지 못한 채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 이제 곧 하복을 입는 계절이 올 텐데, 설레는 마음으로 사둔 동복이 작아질까 봐 서운해하는 중.





어린 나이에 미혼 상태로 출산을 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겠어요.
수진 드라마틱한 결심은 아니었어요. 그냥 당연한 일이었거든요.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는데, 어떻게든 잘 키울 수 있고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주위에서 가끔 용기 있다는 얘기를 해주는데, 제가 대단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결혼을 하고 출산하는 사람은 많잖아요. 저는 남들보다 그 과정을 좀 더 일찍 겪었을 뿐이죠.


한 설문 연구에 따르면 ‘20대 딸이 혼전 임신을 했을 때 딸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라는 부모님이 전체 응답자의 24% 정도 밖에 안 됐어요. 당시 부모님은 출산 결심을 이해해주셨나요?
수진 처음에는 어머니도 어떻게 아이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겠냐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래도 화를 내거나 단호하게 반대하진 않았어요. 엄마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언니가 제 의견을 많이 존중해주고 지지해줬고요. 육아에 드는 경제적인 비용 역시 가족의 도움이 컸죠. 나중에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키워보자며 온 가족이 공동 육아에 돌입했어요.


삶의 속도가 남과 조금 다르죠. 학업과 커리어는 어떤 식으로 쌓아왔어요?
수진 계속 육아를 하다 보니 고등학교도 조금 늦게 졸업하고, 경력도 단절됐어요. 제가 27살, 아이가 7살이 되니 겁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아이에게 괜찮은 엄마가 돼주고 싶은데 지금 상태로는 멋있는 엄마가 되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고, 아로마테라피를 공부하게 됐어요. 주변에서 하나도 안 늦었다며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줬고 제가 진로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줬죠. 생각보다  기업과 국가에서 미혼 엄마들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많아요.


여느 워킹맘처럼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겠어요.
수진 넓게 보면 사회나 지역에서 공동 육아 개념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해야 해요. 비단 미혼모뿐 아니라 많은 워킹맘이 경력 단절에 대해 고민하는데, 그런 육아 문제에 동참하고 분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 가정이 독립적으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혼모들은 그게 더 필요하고 절실한 거죠. 제 경우,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 퇴근 시간이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보다 늦었어요. 가족 모두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니 아이를 픽업해줄 사람이 없는데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단체에서 인연이 닿은 자원봉사자가 종종 도와주셨어요. SBS 작가분인데 시연이가 ‘이모’라 부르며 아직도 친하게 지내요. 하지만 이건 제가 운이 좋은 경우죠. 가족이랑 단절돼 사는 분들은 더 힘들 수 있어요. 비혼모에 대한 시선이 분명 변화하고 있고 함께하려는 움직임도 늘어가지만, 아직 더 많이 발전해야겠죠.


비혼모 가정을 보는 시선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시연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애들이 놀려서 기분이 나쁠 때도 있었어요. 근데 요즘엔 크면서 부모님이 이혼하는 집도 있고, 비슷한 처지의 애들이 많아져서 친구들도 굳이 가정사에 대해 안 물어보더라고요.
수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 한 부모 가정이라는 상황을 다 오픈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가족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걸 배울 수 있는 수업을 커리큘럼에 포함해주더라고요. 오히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조금 보수적인 분위기였는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한 부모 가정에 대한 시선이 좀 더 부드러워지는 것 같아요. 이혼 가정이나 조손 가정도 늘어나서 아이들도 가족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걸 배우고요.


아이가 친구들의 가족과 조금 다른 가족 형태에 대해 질문을 할 때는 없었어요?
수진 애란원이나 구세군 같은 미혼모 기관에서 부모 교육을 해요. 저도 출산한 기관에서 10년째 쭉 교육을 받고 있고요. 언젠가는 아이가 자신의 뿌리에 대해 당연히 궁금해할 수 있으니까요. 전 늘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어요. 시연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빠 어딨어?”라고 물었는데, “아빠는 아빠 집에서 살고 우리는 우리 집에서 사는 거지”라며 무겁지 않게 대답해줬죠.
시연 왜 난 아빠가 없냐고 묻기도 하고 아빠가 우리를 버렸냐고 물은 적도 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버린 게 아니고 내가 선택한 거지. 나는 너랑 같이 사는 걸 선택한 거고 아빠는 그냥 알아서 잘 살고 있겠지”라고 말했어요. 지금도 엄마의 얘기를 들으면서 느낀 건데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건 대단한 용기 같아요. 엄마도 많이 고민하다가 진실을 말해준 걸 테니까요.


이제는 시연이가 엄마 이야기를 들어주고 거들기도 하네요. 아이가 많이 성장했구나 싶을 때가 언제인가요?
수진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는 데 부끄러워하고 오글거려하는 나이가 됐거든요. 그래도 가끔은 “다른 친구들 엄마에 비해서 나랑 대화도 많이 하고 나를 많이 이해해주는 것 같아”라고 얘기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정말 감동하죠. 시연이가 또래보다 많이 속이 깊고 성숙하지 않나 싶어요.
시연 그래, 내가 보기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야. 하하.


비혼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큰 고민은 뭐였어요?
수진 나도 아직 크지 못했는데,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분이 공감할 텐데, 더디 가던 힘든 시간도 결국은 지나가더라고요. 육아가 힘든 날도 있지만 그만큼 큰 행복과 기쁨이 돌아와요. 저희 모녀가 독립한 지 이제 1년밖에 안 됐는데, 둘이 살다 보니 문득 ‘내가 만약 아파서 없다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새로운 가족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기도 했는데, 아직까지는 이 친구한테 꼭 아빠가 있어야 하고 다른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고 우리한테는 우리만의 가정이 있으니까요.


엄마 그리고 인간 박수진으로서의 꿈은 뭐예요?
수진 저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늦게 진로를 찾았지만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어요.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고 공부도 계속하고 있죠. 아이만 키울 때는 걱정이 많았어요. 내가 가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당당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냥 하나하나씩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 나가며 일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나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됐죠. 덕분에 ‘미혼이든 비혼이든 뭐가 중요해?’라는 당당한 태도도 생겼고요. 내 일이 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면 엄마도 편안해지고, 그게 아이한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저는 여전히 과거의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둘이 당당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중에는 프랑스에서 아로마테라피를 더 공부하고 싶어요. 시연이는 미술을 하니까 둘이 같이 유학을 가면 좋겠고요.


때로는 아이가 엄마를 성장시킬 때도 있죠?
수진 제가 그  나이대에 시연이를 못 만났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몰라요. 엄마이기에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계속 열심히 이것저것 배우고 노력한 것 같아요. 아이가 “우리 엄마 되게 괜찮아”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요. 아이는 저를 한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돼요. 언제나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돼주니 아이에게 너무 고맙죠.


현재의 가족 형태에서 얻을 수 있는 큰 행복은 뭐예요?
시연 일단 눈치를 안 봐도 돼요. 여행을 가고 싶거나 할 때 둘이 시간만 맞추면 되니까요. 명절에도 따로 어디 안 가도 되니, 둘이서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수진 우리 가족은 평범해요. 맞벌이 가정과 다를 것도 없고, 여느 엄마처럼 딸이 사춘기가 와서 고민하는 게 다예요. 아이가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거나, 엄마에게 반항을 하는 것에 대해 똑같이 고민하죠. 보통의 워킹맘처럼 애가 아플 때 일을 못 쉬어서 고민하기도 하고요. 단지 그 강도가 좀 더 세게 느껴질 뿐이죠.
 

Keyword

Credit

  • Editor ha ye jene/kim ye rin
  • Photographer kim sin ae
  • Stylist 김지수
  • hair 박규빈
  • makeup 김부성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