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를 좋아한다면 이런 지도는 어때?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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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를 좋아한다면 이런 지도는 어때?

아티스트 김혜수는 스쳐가는 순간과 감정을 그만의 지도에 기록한다. 비정형의 형상을 따라가면 다른 세계로 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0.04.25
 
다양한 시각 매체를 활용해 설치미술 작업을 해왔죠. 요즘은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나요?
현재 〈Flat Map to Rabbit Hole〉과 〈Prerecorded Today〉 두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요. 단순 선묘 드로잉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시각 매체적 변환을 시도하고 있죠.


〈Flat Map to Rabbit Hole〉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5년 개인전 〈그리고 틈〉을 앞두고 시작했고, 지금까지 드로잉, 포스터, 플렉시글라스 조각 등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선보인 프로젝트예요. 순간을 포착해 기록하는 행위는 유한한 시간을 걷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라 생각해요. 여전히 진행 중인 이 프로젝트는 바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남기려는 욕망에서 시작됐어요.


‘Flat Map’은 평면에 그려지는 회화에 대한 은유인가요? 프로젝트명에 숨은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토끼 굴로 빠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게 되죠. 제게 그런 세계는 기억하고 싶은 과거고, 지도(Flat Map)는 암호화한 시간과 날짜가 기록된 순간을 묘사한 각 드로잉을 일컫는 단어예요. 영원히 간직하고 싶지만 영원할 수 없는 틈을 탐험하기 위한 순간들의 지도인 거죠.
 
드로잉이 고대 화석, 식물의 단면, 신체 기관의 일부 등 익숙한 형태로 보여 흥미로웠어요. 감정의 시각화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 느낌이랄까요.
제 작업의 형상이 그로테스크한 부분이 있어, 식물의 단면이나 해양 생물체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는 공간,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 물건의 촉감 등 저를 둘러싼 오감에 반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드로잉해요. 그래서 저 자신을 하나의 이미지 발상지로 보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며 지워지거나 흐려질 수도 있는데, 연필을 사용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요?
사실 연필은 제게 가장 친근한 도구예요. 급하게 메모할 때도 펜보다는 연필에 더 손이 가고요. 필통에 심 자국이 진하게 묻어나도 연필은 꼭 넣어 다녀요. 옛날 사람처럼요. 하하. 익숙해서 그런 걸까요? 제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그리고자 할 때, 무엇보다도 연필이라는 도구가 빠르더라고요.


〈Flat Map to Rabbit Hole〉은 작가의 베이스캠프처럼 느껴지는 작업이기도 해요. 전시 〈이미 기억된 오늘〉에서는 설치미술 형태로 표현되기도 했고, 독립 출판물과 포스터도 공개를 앞두고 있죠. 한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재발화하려는 이유가 있나요?
기억과 시간이라는 형상화할 수 없는 대상은 그 모호함만큼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무한하다고 생각해요. 그에 따라 해석도 무궁무진해질 수 있고요.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최대한 적용해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제가 목격한 순간을 관람객이 읽을 수 있는 사운드 룸처럼, 더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작품이 형태를 달리할 때 일어나는 스파크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지점을 즐기나요?
문화를 소비하거나 소비하고 싶은 사람들의 접근성을 확장해보고 싶었어요. 저 또한 어떤 아티스트의 작업을 소유하고 싶을 때, 굳이 오리지널 피스가 아니라 재미있는 형식의 굿즈를 찾기도 하고요. 또 성격상 한 가지 형태, 단 하나의 아이디어로만 작업하는 걸 즐기지 못해요. 저는 스파크가 일어나는 지점을 즐기기보다 스파크들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네요.
 
순간을 기록하고 회고하면서 날것의 감정을 마주 보는 과정이 때때로 괴롭진 않은가요? 작가로서 매번 부딪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기록하는 과정은 괴롭기보단 흥미로워요. 물론 너무 피곤할 때 어떤 감정이 스쳐가면 귀찮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예전 같으면 그 순간을 흘려보냈겠지만, 이제는 순간과 감정의 부산물이라도 기록하고 싶어 글로 적곤 해요. 제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순간은 놓치게 되니까요.


기억과 감정을 시각화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요, 2020년을 살아가는 한 사람 그리고 예술가로서 이런 일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오히려 감각의 세계가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요. 과거의 기록과 순간의 흔적이라는 증거물에 물리적인 장벽 없이 접근하기 위해 가상현실에 제 시각적 지표를 만들고 있어요. 가상의 감각 도서관을 짓고 있달까요. 다만 이런 방식을 관람자에게 강요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제가 시도하는 시각화 방식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확장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기쁘죠.


예술가로서의 태도에 가장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가 있나요?
현재 뉴욕의 루이스 부르주아 스튜디오에서 이미징 스페셜리스트로 일하고 있어, 그녀의 아카이브 전반을 접하고 있어요. 유명한 거미 조각과 드로잉 외에도 판화와 방대한 양의 사진, 필름을 남겼죠. 매년 쓴 일기와 다이어리 양도 엄청나고요. 컬래버레이터인 고현정 그래픽 디자이너와 매일 구체적인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나누고, 오랜 친구이자 제 프로젝트에 무한 관심을 보이는 갤러리 프리다의 김지현 대표와는 작업의 상품성과 굿즈에 관해 좋은 의견을 나누고 있어요.


‘Flat Map’이 관람객, 독자들에게 어떤 입구가 되길 바라나요?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두려는 집착으로 보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영원한 것에 대한 염원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 작업을 통해 관객들이 지금도 흐르는 시간 속에 얼마나 많은 소중한 순간이 녹아 있는지 발견하길 바라요. 또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감정을 시각화하려는 저의 기록 과정과 그 세세한 틈까지 바라봐주신다면 더욱 좋고요.





김혜수는 드로잉을 기반으로 다양한 조각, 설치미술을 시도한다. 홍익대학교 조소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2017년 미국으로 건너가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haeso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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