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죽 셔츠, 가죽 쇼츠 모두 나누시카 by 매치스패션닷컴. 스니커즈 컨버스.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신경외과 전문의 ‘채송화’(전미도), 간담췌외과 전문의 ‘이익준’(조정석), 흉부외과 전문의 ‘김준완’(정경호), 소아외과 전문의 ‘안정원’(유연석), 그리고 산부인과 전문의 ‘양석형’(김대명). 서울대 의대 99학번 초엘리트 의사 5명은 이혼하고, 연애하고, 직장 일에 괴롭다가 보람 찾고, 부모님 때문에 속 썩고, 관계로 힘들고 힘 받는다. 실은 크게 슬기로울 것 없는 의사 생활을 보고 있노라면 그닥 훌륭할 것 없는 나의 삶이 겹쳐지기도 한다. 5명 사이에서 칼국수 후루룩 삼킬 수 있을 것 같고, 티격태격 싸울 때 같이 삿대질하며 놀리고 웃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 속에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 있다. “속을 알 수 없는 은둔형 외톨이, 자발적 아웃사이더, 숨 쉬고 사는 게 신기한 귀차니즘의 대명사.” 딱 친구들과만 어울리는 양석형이 왜 마마보이일 수밖에 없는지, 드라마에서 그의 이야기가 막 시작될 즈음 그를 만났다.
김대명은 양석형처럼 수줍다가 양석형보다 친절했다. 큰 소리로 휘어잡는 쪽보다는 고요히 제 할 일을 해내는 쪽. 김대명에게는 뭐든 해보겠다는 의지와 조심성이 공존했다. 지나치게 겸손을 ‘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대명은 타고나길 신중하고 겸손했다. 인터뷰 중에도 ‘나’라는 주어를 내세우기보다 “주변에서”, “감사하게도”, “제가 할 수 있는 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라는 말로 공을 돌리는 일이 잦았다. 그 와중에 뚱한 무표정으로 피식 웃게 만드는 사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다. 불가능할뿐더러 불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김대명은 인터뷰 내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것이 가장 큰 행운이고 행복이라고 거듭 말했다. 좋고자 애쓰는 사람이야말로 이미 좋은 사람일지 모른다.
캐스팅 과정이 궁금해요. 신원호 감독&이우정 작가, 많은 배우가 꿈꾸는 불패의 조합이잖아요.
감독님이 한 번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저도 너무 뵙고 싶었거든요. 배우는 항상 선택받는 직업이니까, 인연도 없는데 제가 먼저 하고 싶다고 연락할 수도 없잖아요. 감독님과 작품을 함께 했었던 배우들에게 좋았던 얘기를 워낙 많이 듣기도 했고, 언젠가는 기회가 생기겠지, 같이 할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바라고만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겼죠. 감독님과 작가님을 만나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이 역할과 매칭을 시켜주셨어요.
작품 들어가면서 어떤 기분이었나요?
제 성격이 워낙 그렇지만, 기대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했어요. 내가 잘해서 팀이나 같이 하는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아야 하니까. 무슨 작품을 하든 걱정이 많은 편이에요. ‘잘될 거야’ 이런 생각 잘 안 해요. ‘이거 망하면 나도 끝인데’ 하는 쪽이죠. 그런데 그게 오히려 현실적인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저한테는.
의사라는 전문직, 그 특유의 세계를 표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준비했나요?
병원에 과마다 자문 선생님들이 계세요. 가서 마스크 끼고 선생님 뒤에 앉아 방해 안 되게 외래 진료 하시는 것도 지켜보고, 선생님 말씀도 많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다큐 같은 걸 많이 봤죠. 제일 많이 참고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드라마팀에서 다큐를 많이 보내주셨어요.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볼 수 있는 한 많이 찾아 봤죠.

재킷, 쇼츠 모두 네이비 by 비욘드클로젯. 슈즈 앤더슨벨. 니트 톱, 삭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전 항상 얘가 마마보이다, 악당이다, 혹은 바보다, 이렇게 정해놓고 접근을 안 하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되면 (연기에) 제한을 많이 받으니까. 감독님한테도 많이 여쭤봤던 게 “제가 이렇게 해도 될까요?”였어요. 감독님이 “엄마를 만날 때,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대하는 태도가 다르니까, 그에 대한 반응을 어떻게 달리할까를 생각해보면 어떻겠느냐”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그런 걸 중점에 두고 연기했죠. 누구나 다 자기 안에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 때, 피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기본적으로 이우정 작가님이 대본을 세세하게 잘 써주시고, 감독님이 디테일하게 잡아주는 몫이 크겠죠. 거기에 제가 보탰다면 캐릭터에 대해 좀 더 고민을 같이 한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같이 하는 배우들이 거의 2~3살 터울의 또래이고, 실제 친구같이 케미가 좋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친구들 중에 개인적 인연이 있던 사람은 정석이 하나였어요. 공연할 때부터 대학로 오가면서 많이 봤으니까요. 나머지 친구들은 이 드라마 하면서 만났어요.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구나, 다시금 깨달았죠.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들과 작업하는 게 가장 큰 선물이고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그만큼 행복한 일은 없어요. 역시 내 생각이 맞구나, 여기에 무게를 두고 앞으로도 작품을 해야겠다는, 목적을 다른 데 두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내게는 이게 맞다는 생각이 더 단단해졌어요. 그럴 때 내 연기가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만들어준 감독님과 스태프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보시는 분들이 “진짜 친구들 같다, 같이 껴서 놀고 싶다”라고 말씀해주실 때 제일 기쁘죠, 사실.
‘먹태 김대명 선생’이라고 불리던데, 어떻게 나온 말인가요?
시작이 어떻게 됐는지부터 말씀드려야 하는데. 처음에 감독님이 맥주 한잔 먹자고 부르셨어요. 밖에서 마시긴 그렇고 사무실에서 보자 하시는데 빈손으로 가긴 좀 그렇잖아요. 제가 아는 맛있는 맥줏집이 있는데 거기 먹태가 괜찮거든요. 그래서 사 가지고 갔는데 너무 맛있게 드시더라고요. 이후로 회식할 때마다 10여 마리 사다가 2차 때 풀어놓곤 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는 거죠. 어느 순간부터 먹태를 꼭 사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어요. 하하.
이우정 작가 대본을 받아본 느낌은 어떤가요?
모든 작품이 다 좋았지만, 이우정 작가님 글은 일단 사람의 마음을 만져주는 게 있어요. 제가 항상 그런 부분에 대한 갈구가 있었거든요. 그런 작품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요. 그래서 〈미생〉을 만났을 때도 좋았고, 잘하고 싶었고, 그 역할을 통해 제 또래 친구들에게 “너희들 정말 슈퍼맨같이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죠. 이 작품 만났을 때도 그런 기분이었어요. 대사도 그렇고, 감독님 손을 거쳐 완벽하게 구현되는 걸 보고 있으면 함께해서 너무 행복해요. 배우들도 이걸 그대로 잘 표현해내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믿음이 있어요.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이런 기회가 당연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시인이 되고 싶었다면서요. 글 쓰는 걸 좋아했다고요.
어렸을 때 글 써서 학교 백일장에도 내고, 라디오에 사연도 보내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청소년 백일장 상도 받고 그랬어요. 그때 상품이 여성 캐주얼 상품권 2장 뭐 그런 거였죠. 하하. 저희 어머니와 동생이 이걸로 옷을 사 입고 그렇게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처음으로 글을 써서 물건으로 바꾼 그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인이 되면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연기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직업군이 다르지만 결은 같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목소리와 몸과 동작을 통해 표현하는 거고. 글 쓰는 건 글을 따라 표현하는 것뿐이지. 지금도 그 맥락을 따져보면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기도 하죠. 반성하고 성찰하게 되는 것. 지나쳐버리는 순간의 감정을 복기해 나름의 해석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그런 의미에서 글도, 연기도 좋은 사람에 다가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맞아요. 그런데 좋은 사람이라는 거 정말 쉽지가 않잖아요. 사람이다 보니 감정의 동요도 있고,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는데, 이걸 어떻게든 줄여가면서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저 때문에 상처받는 일도 있을 거고. 어떻게든 줄이고자 노력은 하죠. 하다 못해 좋은 사람인 척이라도 하며 살려고 해요.

가죽 재킷, 티셔츠 모두 도조. 데님 팬츠 레이 바이 매치스패션닷컴. 스니커즈 컨버스.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많죠. 항상 조심해요.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걸 경계하죠. 어쩔 수 없이 사람은 변해가는데, 배우는 단역에서 조금 더 큰 역할, 조연, 주연, 이렇게 가는 게 바뀌는 과정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역할의 크기가 바뀔지언정 스스로 위치가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런 조심은 늘 하죠. 항상 경계해요. 착한 척한다는 게 아니라, 그걸 놓치면 제가 절 망치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존경하는 선배님에게 배운 점이기도 하고.
나이 들어가는 건 어때요?
일장일단이 있죠. 좋은 건, 연기가 배워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나이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학습해간다고 생각하니, 그 점은 너무 좋아요. 대신 체력의 한계가 조금씩 오고 있다는 건 아쉽죠. 신경 써야 하는 부분, 준비해야 되는 부분도 많이 생기고. 술 마신 다음 날 너무 힘들어 예전같이 부어라 마셔라 끝까지 가는 게 안 되기도 하고. 원래부터 그렇게 먹는 스타일도 아니었지만 가끔 몇 번 용기 내서 했거든요? 지금은 안 되죠. 술을 마시면 물을 꼭 한 잔 마시고, 술 마시다 비타민을 꼭 먹고.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이런 자기방어? 하하.
그래도 술을 즐겨 먹긴 하나 봐요.
친구들하고 같이 악기 연습하고 한 잔씩 먹죠. 너무 잘 맞아요. 서로. 작년 여름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거의 1년이 됐으니까. 우리끼리 농담 삼아 어디 선수권 대회라도 나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해요. 하하.
밴드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연기를 처음 할 때 느낌. 완전히 새로운 세상? 전 솔직히 합주가 될지 몰랐어요. 애들도 다 그래요. “우리가 진짜 합주가 된다고?” 전 이런 게 내 삶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음악을 너무 좋아하니까 오히려 ‘감히 내가 음악을 한다고? 오아시스나 본조비나 그런 사람들이 하는 거지, 감히 나 따위가?’ 이런 기분이었죠. 하하. 낙원상가에서 건반 사서 집에 놨을 때 되게 낯설었어요. 안 친한 친구가 집에 와 있는 것처럼 근처에 가는 것도 어색하고.
김대명은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그 친구들은 우리가 지금 드라마에서 보는 그 다섯 명이 맞다. 누군가 “배우 누구랑 친해요?”라고 물으면, 답하기를 항상 주저했던 그는 이제 자신 있게 “조정석, 정경호, 유연석, 전미도”라고 말한다. “요즘 여러 가지 큰일을 겪으면서 하루에 수십 번 괴로웠다 힘들었다 가슴 아팠다가 할 텐데, 우리 드라마를 만날 일주일에 한 번은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는 그런 마법 같은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그 시간만큼은 다섯 친구와 또 한 자리를 남겨둘 테니. 여기 와서 앉아 저희랑 같이 놀다 가시라고. 이 작품이 그런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함께 가는 드라마. 작품 속에서 나이 들고, 성장하고,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곁에서 세월을 함께 보내는 드라마, 우리 동네 사람 같은 배우가 있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드라마, 김대명이라는 배우를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