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열심히 벌고 빨리 은퇴하자! 파이어족을 아세요?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지만 좀처럼 돈이 모이지 않아 고민인가? 저축은커녕 하락 주식에 손만 안 대도 선방이라고? 미래 대비는 언감생심, 버는 족족 사라지는 월급과 끝이 안 보이는 잔고 제로 라이프에 회의가 든다면 ‘파이어’에 대해 알아야 할 때다.

BYCOSMOPOLITAN2020.04.20
 
40대에 은퇴하는 사람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IT업계에 종사하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연봉을 받는 박은진(33세) 씨는 이런 삶을 산다. 무려 7명의 하우스메이트와 한 집을 공유하고, 고작 5평 남짓한 방에서 생활하며 쇼핑과 여행 등의 소비 활동을 최대한 줄인다. “물론 제 수입이 이렇게까지 허리띠를 졸라맬 필요가 없는 수준이긴 해요. 가끔은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죠. 하지만 지금 ‘욜로’니 ‘소확행’이니 하며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보단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싶어요. 저한텐 지금 당장 즐거운 것보다 나이 들어서까지 격무에 시달리며 일하고 월급에 목매는 삶을 살지 않는 게 더 중요하거든요.”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벌고 지출을 최대한 줄여 경제적 자유를 이룬 뒤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파이어족’이라 부른다. 파이어(FIRE)는 ‘Financial Independent, Retire Early(재정적인 독립, 이른 은퇴)’를 줄인 신조어로, 이들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지 않는 것’이다.
파이어족의 구체적인 계획은 이렇다. 소득의 60% 이상을 저축하고 투자 상품 운영으로 은퇴 자금을 마련한 뒤 빠르면 30대, 적어도 40대에 이른 은퇴를 하는 것. 한창 일할 나이에 은퇴가 웬 말이냐고? 이들의 ‘은퇴’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골집 하나 얻어 게으르게 사는 느긋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 상품의 수익금이나 월세처럼 노동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소득을 생활비로 활용하되, 돈 때문에 꾸역꾸역 참아가며 회사를 다니는 대신 진짜 하고 싶었던 일, 창의적인 일, 비영리단체 활동 등을 하며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현실’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파이어 라이프’다.


파이어, 당신도 할 수 있다
〈파이어족이 온다〉의 저자이자 파이어족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플레잉 위드 파이어〉를 제작한 스콧 리킨스는 연간 생활비의 25배를 저축해야 은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한 달에 1백50만원씩 연간 1천8백만원을 생활비로 소비한다면, 그 금액의 25배인 4억5천만원을 모으면 은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은퇴 후 그 돈으로 과연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리킨스 역시 2017년 파이어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 자신이 이런 삶을 선택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저녁 외식으로 3백 달러를 쓰고, 주말에 친구들과 골프 치러 가거나 신형 자동차를 리스하며 돈을 펑펑 쓰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달 날아오는 각종 세금 고지서와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자신보다 파이어로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 삶의 방식을 바꾸게 됐다고 고백한다.
〈40세에 은퇴하다〉를 쓴 김선우 작가 역시 리킨스와 같은 생각으로 파이어를 선택했다. 그는 한국에서 신문기자로 13년 동안 일하다 40세에 돌연 회사를 그만두며 조기 은퇴를 한 케이스. 물론 파이어족이 되기로 결심하고 40세 은퇴를 목표로 돈을 모은 건 아니다. 취업 후 하루빨리 빚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로 20~30대에 열심히 일해 빚을 갚고 저축도 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서울 강북에 32평 아파트를 소유할 만큼 재산을 축적했지만 그런 삶이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중견 기업 정도의 월급을 주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지만 밤 11시까지 야근은 기본이었고 주말에도 출근을 했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남은 건 어색해진 가족 관계와 잦은 야근에 지친 몸,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회의뿐이었습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만큼 살았고,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아온 저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어요.”


해보니 어때? 파이어가 바꾼 삶
파이어를 경험한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가졌든, 어떤 사람이든, 얼마를 벌든 간에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말한다. 리킨스 역시 이에 동의한다. “중산층의 겉치레를 포기하고 나니 누릴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습니다. 맞벌이로 14만2천 달러(약 1억5천6백20만원)를 벌고 생활비로 12만 달러(1억 3천2백만원)를 쓰던 삶에서 벗어나 파이어 라이프를 고집하자 소득의 70%를 저축할 수 있었어요. 만약 우리 부부가 파이어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저는 72세가 될 때까지 일을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소득과 저축률을 유지한다면 44세엔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이미 은퇴 후의 삶을 사는 김선우 작가는 강북의 아파트를 팔아 미국에서 구입한 타운하우스 월세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현재의 행복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밥벌이는 매우 중요하지만 직장에서의 성공은 몸과 마음을 99% 바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해요. 지금은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됐어요. 여기저기에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수상 안전 요원 일도 하죠. 단, 저 스스로 재미를 느낄 정도로만 일해요. 진정한 ‘기그 이코노미(일자리에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등을 주로 채용하는 현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파이어 라이프에 대해 알아둬야 할 것들
국내에도 파이어족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목표로 하는 은퇴 자금은 10억~20억원 사이로, 퇴사 10년 전부터 은퇴 계획을 세우고 월급의 60% 이상을 저금하며 최대한 아끼는 삶을 산다. 파이어 라이프를 먼저 시작한 사람들은 삶에서 포기해야 할 것이 늘어날 거라고 충고한다. 주택과 자동차 등 목돈이 드는 소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월세·전세가 저렴한 곳으로 주거 지역을 옮기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파이어 라이프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과 멀어질 각오도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은퇴 후에도 절약하는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파이어족의 삶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적게 쓰기’다.
은퇴 후 무엇을 할지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선우 작가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자신만의 놀이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소비자로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돈 없이 노는 건 불가능하거나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진짜 놀면서 재미를 느낄 줄 알아야 해요. 골프나 해외여행도 좋지만 돈이 많이 들잖아요. 저도 은퇴하고 일을 안 하니 하루 종일 시간은 많은데,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전부 다 돈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시골집 뒤뜰을 걸어 다니면서 야생에서 따와 차를 끓여 먹을 수 있는 식물에 대해 공부했어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요. 돈이 한 푼도 안 들뿐더러 식물 이름도 알게 되고, 드디어 돈 안 쓰고 놀게 된 거예요.”
생활비 걱정 없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가? 내가 지향하는 삶을 단지 꿈으로 두지 않고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개인 투자 정보 전문가이자 〈어포드 애니싱〉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폴라 팬트의 말을 기억하라.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은 매우 혁신적인 다양한 일을 합니다. 나는 매달 날아오는 청구서 걱정 없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을 때 진짜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Keyword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류진
  • photo by Dan Saelinger/Trunk Archive(메인)
  • Getty Images(나머지)
  • reference book <파이어족이 온다>(지식노마드)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