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네가 그립다!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그리운 영화관에게 바치는 한 통의 편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이전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외식을 한다 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나 어디든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다는 사실까지! 그 리스트를 만들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그리운 것이 있다면 바로 영화관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몇일 전 나는 영화 〈1917〉을 다시 봤다. 처음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땐 잘 만든 영화라고 감탄을 하며 상영관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와 내 친구는 주인공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두 손을 꼭 붙잡고 감상했다. 순식간에 두 시간이 흘렀고, 나는 영화에 너무 푹 빠진 나머지 그에 대한 글을 여러 번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땐 그 때와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결말을 알고 보는 것도 한 몫을 했겠지만, 그보다도 이 영화는 빵빵한 사운드 시스템과 큼직한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탑 건〉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톰 크루즈가 전투기를 타고 날아가는 장면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건 영화관에서 봤었어야 했는데…’라고 말이다. 최근 다시 본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영화관에서 보는 게 아니면 영화를 100퍼센트 즐겼다고 말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정에 있는 TV가 기술적으로 뒤떨어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영화를 보자면 집중하기가 영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당신은 잠깐 먹을 걸 가져오느라 주방으로 갈 수도 있고, 혹은 배우가 누구인지 몰라 인터넷 검색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다 5분이 훅 지나가고, 당신은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강아지가 갑자기 일을 저질러서 그걸 치우느라 15분간 영화를 일시정지해둘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이는 우리의 영화 감상을 방해한다. 한 번씩 휴식을 취할 때마다 우리는 무언가를 놓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두운 상영관 안에 앉아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휴대폰도 두 시간동안 볼 수 없고 눈 앞에 있는 화면에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팝콘에 대해서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영화관 팝콘은 세상 어떤 팝콘과도 비교할 수 없으니까). 가끔 기분이 우울한 상태로 영화관에 들어가면, 누군가가 포옹이라도 해준 듯 위로를 받고 나올 수도 있다. 이거야 말로 아주 순수한 형태의 현실 도피 아닌가?
사실 휴대폰을 보지 않는 건 일부분에 불과하다.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100퍼센트 화면에 집중하며 실시간으로 예술 작품을 즐기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즉, 이는 영화의 반전이 드러나는 순간 ‘헐’하는 옆자리 관객의 소리를 듣는 것, 혹은 가슴을 쥐어짜는 이별 장면에서 코를 훌쩍이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영화가 끝날 땐 다같이 좌석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운을 느끼거나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고, 상영관 밖으로 쏟아져 나올 땐 상기된 표정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단체 경험을 통해 우리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것이 내가 영화관을 그리워하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물론 2시간 동안 바깥 세상에 대해 잊어버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현 사태가 진정되기 전까지는 우리 모두 TV 화면 앞에 앉아 전자레인지로 돌려 만든 팝콘, 그리고 휴대폰의 ‘방해 금지 모드’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조만간 예전처럼 다시 영화관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운 영화관에게 바치는 한 통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