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그녀가 의료계의 내부고발자인 이유

정치판은 진흙탕이라는 편견도, 정치에 뛰어들면 미친 사람이라는 취급도 그만둘 때가 됐다. 여기, 국회와 일터 안팎에서 발로 뛰는 2030 여성들이 있으니까. 누군가는 시나브로 일상을 돌보고 누군가는 판을 확 뒤집어엎으려 한다. 어느 쪽이든, 불편함은 조금만 감수해주시길. 세상을 바꾼다는 건 그런 일이다.

BYCOSMOPOLITAN2020.04.10
 
 
톱, 팬츠 모두 가격미정 바네사 브루노. 귀고리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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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10년째 일하는 현직 중환자실 간호사이자 의료계 내부 고발자다. 2017년 간호사들의 첫 월급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공론화됐을 때, 2018년 한 간호사가 업무 스트레스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죽음을 선택했을 때 앞장서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외쳤던 주역 중에 그가 있다. 자신이 밟고 서 있는 땅을 흔드는 일이 어지럽지는 않느냐고 묻자, “아직까지는 승률이 좋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작년 하반기에 잠시 휴직했다고 들었는데, 연초에 중환자실로 복귀하기 무섭게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됐어요.
얼마 전 코로나 병동으로 자원한 상태예요. 중환자실에서 하는 일은 예전과 똑같은데 걱정되는 건 따로 있어요. 이번에 신입을 한 번에 8명이나 뽑기로 했거든요. 중환자실 인력이 코로나 병동으로 빠져나갈 것을 대비해서죠. 원래 많아야 3명씩 뽑는데, 갑자기 그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오면 교육하는 데 부담이 생길까 봐 걱정이에요.


인력이 늘어난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네요.
신입 간호사가 들어오면 선배 간호사들은 반기기보다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예요. 병원에서 교육 기간을 너무 짧게 주는 탓이죠. 이제 갓 대학 졸업한 신입을 2달 반 안에 중환자실 간호사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애 하나 업고 일하는 느낌이라고들 해요. 선배 간호사는 일 못 가르쳤다고 욕먹을까 봐, 신입 간호사는 제대로 못 배워서 나중에 실수할까 봐 전전긍긍하죠. 계속 문제 제기해서 그나마 올해부터는 교육 기간이 8주에서 10주로 늘어났는데, 캐나다 같은 경우는 1년이거든요.


선배 간호사들이 신입 간호사들을 감정적으로 학대하는 ‘태움’ 문화 역시 열악한 교육 및 노동 환경으로 인한 구조적 문제라고요.
방아쇠를 당기는 건 개인이지만, 총을 억지로 쥐여주고 상대방을 쏘지 않으면 내가 죽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문제죠. 병원에서는 일이 조금만 잘못돼도 사람의 생사가 왔다 갔다 하잖아요. 개인의 인성에만 책임을 지우기에는 너무 무거운 일이에요.


간호사 노동 환경 개선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데는 고 박선욱 간호사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고 있어요.
사실 노조에 정식 가입한 건 2013년이에요. 간호사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은 늘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그러다가 고 박선욱 간호사 자살 사건을 접하면서 ‘이게 정상은 아니구나’ 하고 확 와닿은 거죠. 저도 신입일 때 일이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이렇게 힘들어하는 게 간호사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고, 결국 저희에게 서비스를 받는 환자 인권과도 직결된 문제라는 데 생각이 미쳤죠. 공동대책위를 만들면서 고인이 어떤 마음으로 아산병원에 지원했는지, 가족들이랑 생전에 나눴던 대화 내용,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해부하듯 들여다보고 나니 여파가 크게 남았어요.


그 이후로 심적인 부담도 컸다고요.
주변 신입 간호사들이 제게 죽고 싶다고 털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점점 두려워지는 거예요. 잘못되면 내 책임일까 봐. 그러면서 노조 사람들이랑 갈등도 생겼어요. 저는 마음이 조급해 간호사 노동 환경 개선 말고 다른 문제에 집중이 안 됐던 거죠. 당장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다른 게 중요한 문제인가 싶었어요. 휴직 기간에 심리 치료를 받고 나선 관점이 많이 바뀌었어요. 목적지에 서둘러 가야 한다고 해서 도착할 때까지 숨도 쉬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래도 그간 열심히 활동한 덕에 바뀐 게 꽤 많아요.
다행히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산재로 인정받았죠. 2016년에는 각자의 수익에 따라 임금을 차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병원 성과급제 도입 이슈가 있었는데, 노조가 함께 싸워서 막아냈고요. 2017년에는 간호사들 첫 월급을 받아냈어요. 대형 병원이 신입 간호사들에게 첫 달에는 ‘교육 기간’이라는 핑계로 최저 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월급을 줬거든요. 저 역시 매일 출근해 하루 10시간씩 직무 교육 받으면서 첫 월급으로 31만2천원을 받았어요. 신입으로 들어와서 처음엔 1인분의 업무를 온전히 못 하는 게 당연한 건데 다들 ‘내가 병동에 도움이 안 되니까’ 하고 순응했던 거예요. 다행히 저희 병원에 국정감사가 들어가면서 다른 병원도 줄줄이 문제 제기가 됐어요. 지금은 간호사 첫 월급이 정규직 월급의 80%까지 올랐고요.


노조 외에도 ‘행동하는 간호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 일을 하는 단체예요?
매월 정기 모임과 기획 세미나를 하면서 현안에 대해 공유하고, 사안에 따라 병원과 정부를 상대로 성명을 내기도 하죠. 공론화가 중요하니까요.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 스케일이 큰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잃을 것도 없으니 눈치 안 보고 활동할 수 있어요.


인터뷰에서 가끔 말을 격하게 할 때가 있더라고요.
저나 저희 단체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 보니,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말하면 하나 마나 한 말이 돼버려요. 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말을 하는 측면도 있어요. 또 얼마 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이 구역 미친 년은 나야”라고 말한 적 있는데, 저를 건드리지 말란 의미기도 해요. ‘너 나 때렸어? 다 이를 거야’ 하는 태도가 필요하죠.


내부 고발자로 산다는 건 어쩌면 직업 정치인이 되는 것보다 더 부담스러운 일일 것 같아요.
의료 성과급제에 관해 개인 SNS 계정에 제 생각을 써서 올렸다가 갑자기 기사화됐을 때, 기사를 내려달라 할 수도 있었지만 아예 이참에 신나게 떠들기로 한 거죠. ‘날 죽이기라도 할 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현장에 복직할 때가 되니 부담스럽긴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제가 조금만 실수해도 더 크게 쑥덕거릴 것 같고, 병원에서도 저에게만큼은 자비 없이 굴 것 같고요. 간호사들 첫 월급 돌려주느라 병원 돈을 수십억 해먹었는데 제가 얼마나 얄밉겠어요? 하하. 그렇다고 활동하느냐, 숨느냐의 갈림길에 섰을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봤는데 역시 아니거든요. 멋있게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데 제가 목소리를 내서 무언가 변화를 이끌어냈을 때의 기쁨은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 느끼는 기쁨이랑은 결이 달라요.


넓게 보면 자신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이 모두 정치 활동인데, 정치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도 많죠.
견디는 데 에너지를 쓰느니 개선하는 데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물론 잔 다르크처럼 혼자 무작정 뛰어드는 걸 권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 화형당할 수도 있어요. 하하. 바꾸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노동조합이나 다른 단체를 수소문해 함께 행동하는 게 좋죠. 자신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보고 일상에서 작은 실천부터 해나가길 추천해요.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바뀌더라고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저도 아직까지는 선방하고 있고요.


인터뷰가 나가는 4월에는 21대 총선이 있어요. 이번에 관심 있게 보는 공약이나 이슈가 뭔가요?
전문직에 있다 보니 현장에서 근무하다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출사표를 던지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꼭 당선이 안 되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득표할지 궁금해요. 우리가 어디까지 왔나 확인해보고 싶은 거죠.


최원영이라는 사람은 간호사기도 하지만 정치에 참여하는 30대 여성이기도 하죠. 2030 여성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나요?
요즘 현장에 있다가 새로 후보로 나온 젊은 여성 정치인들을 응원하고 있어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대법관이 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여성 대법관이 9명 중 몇 명이어야 충분한가?”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9명”이라고 답했다고 하잖아요. 당사자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죠. 휴직하는 동안 대만 여행 갔을 때 만난 활동가가 그러더라고요. 휠체어를 탄 국회의원이 생기니 국회 건물 곳곳에 장애인용 경사로가 생겼다고요. 20~30대 여성들이 국회에 들어가면 50대 남성 기성 정치인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현실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이 많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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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하예진/김예린
  • photo by 김태은
  • hair & makeup 이소연
  • stylist 김시애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