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호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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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이후 세대에게 익숙한 ‘밈(Meme)’을 선거 홍보에 접목하면 어떨까? 지금은 ‘이미지’ 그 자체를 소비하는 시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렬한 이미지만 한데 모은 포스터를 만들고 싶었다. 자연스레 자신의 작업물에 밈을 적극 활용하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를 떠올렸다. 선거 포스터 리디자인 작업이긴 하지만, 이 포스터에는 밀레니얼 이후 세대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선거 홍보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도 담겨 있다. 후보가 다양한 형태의 밈을 영상으로 내보내 홍보하고, 그 이미지를 모아 최종 포스터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발상이었다. 타일러의 다양한 밈을 모아 포스터를 완성하되, 기존 포스터와 달리 어떤 슬로건도 없이 이름과 번호만 포스터에 기입한 게 특징이다. ‘기억에 남으면 그만’이라는 밈의 원칙에 따라 과장되고 튀는 색깔과 매우 이미지적인 폰트를 사용했다.
샘바이펜과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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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퍼드 페어리와 버락 오바마 포스터 작품이 큰 이슈가 된 적 있다. 문득 한국 선거 포스터도 ‘정치’가 지닌 딱딱하고 사무적인 이미지를 넘어 ‘문화’라는 요소와 어우러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로서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표현해 세상을 바꾼 앤디 워홀을 후보로 선정했다.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해 유토피아적 이미지를 만들기보단 대량생산 방식을 작품에 적용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시선을 제시한 아티스트이자 그 자체로 혁신이니까. 기존의 선거 포스터는 사진과 글씨가 융합된 이질적인 디자인 요소가 강하다면 내 작품은 글씨도 그림처럼 디자인해 통일감을 줬다. 레이아웃부터 글씨, 손에 들고 있는 바나나 등 포스터 속 요소는 최대한 앤디 워홀의 캐리커처와 그의 작품을 오마주했다.
신모래와〈프란시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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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상황이 괴롭지만 그 끝에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를 후보로 세웠다. 처음에는 그레타 거윅을 선정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연기한 ‘프란시스’가 정치를 한다면 더 매력 있을 것 같아 후보를 바꾼 것이다. 기성 선거 포스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증명사진을 전시해놓은 것 같은 부담스러운 인물 정면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뽑을 후보의 얼굴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보가 말하려는 슬로건이나 정치적 성향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인물을 클로즈업하지 않고, 슬로건에 맞는 리듬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 작업의 목표는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포스터의 실용성과 목적성은 살리면서 틀만 살짝 바꾸는 거였다. 기호는 무조건 크게, 당 도장이나 인쇄 날짜 같은 요소를 넣어 실제 있을 법한 선거 포스터처럼 보일 수 있도록 했다. 선거 홍보물은 보는 대상이 부담 없이 다음 장을 넘기게끔 해야 하니까.
아방과 코코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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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은 패션을 넘어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는 계기를 마련했다. 여성들이 글래머러스하고 화려한 드레스만 입다가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해 혁신적인 시도를 했고 좋은 방향의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니, 이런 사람을 정치에 대입하면 성공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새 포스터에서는 후보자의 스타일과 그들이 다짐하는 세상의 분위기를 한 장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컬러도 제한하고 최대한 군더더기 없이 묘사한 이유다. 기존의 선거 포스터가 번호와 이름을 크게 쓰고 고딕체를 주로 사용했다면, 내가 그린 포스터는 슬로건을 크게 내세우고 캐주얼한 느낌의 핸드라이팅을 썼다. 얼굴을 크게 강조하면서 자연스러움과 당당함을 보여줄 수 있는 자세를 선택한 것도 특징이다. 물론 선거 포스터의 역할은 후보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너도나도 비슷한 표정을 한 인물투성이인 포스터는 도무지 차별점을 찾기 어렵지 않은가. 어쩐지 증명사진 같기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