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 7 || 코스모폴리탄코리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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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 7

남들 다 하는 사랑인 건 맞는데, 어째 자꾸만 유난스러워진다. 사람들 시선 때문에,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지금 여자와 여자 간의 사랑은 콘텐츠 속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 코스모가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각자의 색이 아주 선명히 그리고 따뜻하게 빛나는 작품 7편을 추천받았다.

COSMOPOLITAN BY COSMOPOLITAN 2020.03.31
 
여성 간의 사랑을 넘어서서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작품 전반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동그라미가 아니어도 괜찮아

웹툰 〈타원을 그리는 법〉

웹툰 〈타원을 그리는 법〉

웹툰 〈타원을 그리는 법〉
평범한 직장인 ‘주하’와 그의 연인이자 천재 해커라는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진 ‘민성’, 그리고 ‘민성’을 쫓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 어떻게 보면 절절하고 비극적일 수 있는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만화적인 연출을 통해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그려낸다. 만화는 아우팅에 대한 염려, 레즈비언 연인을 둔 여성이 사회적으로 겪는 문제를 ‘주하’의 팔불출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당당한 태도로 해결해버리는데 이 장면들은 쿨하다 못해 통쾌하기까지 하다. 시원시원하고 매력적인 그림체는 덤.
사실 이 만화가 특별한 주된 이유는 ‘주하’와 ‘민성’의 관계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애욕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들에 있다. ‘민성’의 과거를 아는 ‘미연’과 그의 배후에 있는 인물들, 그들의 권력 싸움, 그리고 그 권력의 위압 속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하’와 ‘민성’의 로맨스까지. 스케일이 큰 사건들과 ‘주하’와 ‘민성’만의 작지만 큰 세계를 함께 지켜보는 것은 기존의 레즈비언 로맨스 작품을 볼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을 유발한다. 권력욕에 가득 찬 여자와 그 여자를 위해 권력 싸움에 흔쾌히 뛰어든 여자, 애인을 위해서라면 무서울 게 없는 여자와 그 여자를 위해 과거를 극복해보려는 여자까지. 여성 간의 사랑을 넘어서서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만화 전반의 사건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허지인(〈헤비 매거진〉 편집장)
 

사랑과 정체성에 대한 물음표 

연극 〈로테르담〉

연극 〈로테르담〉

연극 〈로테르담〉
작년 연말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로테르담〉은 동성애가 금지된 보수적인 국가와 부모에게서 벗어나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정착한 7년 차 영국인 레즈비언 커플 ‘피오나’와 ‘앨리스’에 대한 이야기다. 소소한 행복을 나누며 안정된 삶을 꾸려나가던 이들의 일상에 ‘피오나’의 예기치 못한 커밍아웃으로 균열이 나기 시작한다. “나 남자로 살고 싶어. 아니, 남자인 것 같아.”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피오나’는 이내 성전환 수술을 감행하며 생물학적 남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동성애 커플로 살아온 지난날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감당해야 하는 운명 앞에서 배우자 ‘앨리스’의 혼란 역시 깊어진다.
나는 동성애자인가, 이성애자인가, 양성애자인가 아니면 그 어떤 정체성도 불분명한 퀴어일까. 연극 〈로테르담〉은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규정해왔던 이들이 다시 한번 겪는 혼란과 방황을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게,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성 정체성과 성 역할에 자기 결정권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동성애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당차게 던진다. -남지수(연극 평론가)
 

뜨끈하고 진한 마음들

영화 〈윤희에게〉

영화 〈윤희에게〉

영화 〈윤희에게〉
그때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지금도 전하지 못할 것 같을 때, 그럴 때 사람은 온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쓰는가 보다. 주인공 ‘윤희’와 ‘쥰’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여자들의 사랑을 인정받지 못했던 그 시대,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은 자유롭게 사랑할 수 없었다. 연인으로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 못한 그들은 극 중 ‘윤희’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부과한 벌을 받듯 남은 생을 살아간다, 처연하게. 잘못한 것 하나 없이 생이별하게 된 두 주인공 곁에 ‘새봄’과 ‘마사코’ 같은 짓궂은 조력자가 있다는 건 하나의 축복이다. 찬 공기가 가득한 겨울, 따뜻한 눈이 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윤희’의 딸 ‘새봄’과 ‘쥰’의 고모 ‘마사코’는 ‘쥰’이 차마 ‘윤희’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읽어 내려갈 줄 아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편지의 발신지인 일본 오타루로 ‘윤희’를 끌어당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그렇게 김치우동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의 맛이 적절하게 섞여 있어서일까, 등장인물 사이에 오가는 뜨끈하고 진한 진심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과 김치우동을 만드는 일이 꽤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마음이 없는 이에게는 편지도, 정성스럽게 끓인 김치우동도 내보이지 않을 테니까.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새봄’과 ‘마사코’의 역할을 하게 되길 바라며, 이 영화를 부친다. -정가영(영화감독)
 

정글 같은 세상을 모험하며

소설 〈루비프루트 정글〉

소설 〈루비프루트 정글〉

소설 〈루비프루트 정글〉
이 소설을 처음 만났을 때는 모든 게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이성애자들이 길거리에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이 세상에서 내가 하는 사랑은 나 자신마저 부끄러워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랑이었다. 그런 현실과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던 그때, 자신을 미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소설 속 주인공 ‘몰리’를 만났다. ‘몰리’는 자신을 자신이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을 향해 일침을 날리며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과감히 모험을 떠나는 여성이다. 그동안 접했던 레즈비언 관련 작품은 주인공이 정체성 고민에 시달리며 불운한 삶을 살아가다 말미에는 결국 세상을 떠난다는 서사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이 소설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몰리’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몰리’는 내게 가장 힘이 되는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여성운동가이자 소설 속 주인공 ‘몰리’의 분신이기도 한 저자 리타 메이 브라운은 내가 지금껏 봐왔던 작품 속 레즈비언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꿈꾸는 삶을 실천해나가는 여성이자, 모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책을 읽다 보면 ‘몰리’가 살았던 1970년대 미국이 지금의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 책이 늘 내 곁에 머무는 이유는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몰리’들에게 이 소설이 힘이 되기를, ‘몰리’가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했듯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서다. -최성경(큐큐출판사 대표)
 

모든 여성의 안녕을 기원하며

드라마 〈안녕 드라큘라〉

드라마 〈안녕 드라큘라〉

드라마 〈안녕 드라큘라〉
“남자 싫어.” “남자가 왜 싫어. 변변찮은 놈들이 싫은 거겠지.” 이 순간에 잠깐씩 스쳐 지나가는 모녀간의 정적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종류의 것이다. 끊임없이 이성 애인을 만드는 드라마 작가인 엄마와 레즈비언인 딸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결혼이나 연애에 무덤덤한 딸이 토로하는 불만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해달라고 노력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편견 어린 시선에 굴복하고 “남자랑 소개팅한다”며 이별을 고하는 연인에게 “거짓말이라도 하면 안 되냐”면서 집 앞에 찾아간 주인공 ‘안나’의 모습에서 우리는 몇몇 퀴어 영화가 보여주는 극적인 이끌림이나, 격렬한 애정의 소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평범한 행복의 순간과 이별의 순간만이 덤덤하게 그려질 뿐이다.
그동안 TV에서 남성 간의 사랑은 여러 차례 이야기의 소재로 쓰였지만, 여성 간의 사랑 이야기는 거의 지워지다시피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반갑지만, 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이야기의 외연을 확장하며 자연스럽게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시도 그 자체다. 작품 안에서 여성 간의 사랑은 낯선 것이라는 이유로 특별해졌다가, 엄마와 딸, 새롭게 친구가 된 여성과 여성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확장되며 오히려 더 깊은 심리적 파동을 만들어낸다. 안녕, 이런 여성들의 사랑 이야기는 처음이야. 고마운 인사를 건네고 싶을 정도로 따뜻하게.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붉게 물드는 시간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 영화에는 뚜렷한 역할이 주어진 남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애초에 필요한 조건이 아니어서다. 배경은 결혼부터 직업 활동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향한 사회적 억압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18세기 프랑스다. 뒤집어 생각하면, 당시 억지로 가려지고 지워져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는가. 셀린 시아마 감독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왜 남성 캐릭터는 없을까?’ 하는 의구심조차 들지 않는다. 두 여성의 관계에 대한 충만한 묘사만으로도 이미 완벽하게 조화롭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랑하는 이와 뜨겁게 주고받는 시선이 얼마나 사람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강인하게 만드는지 증명한다. 그리고 아름답다. 무언가를 태워버릴 듯 뜨겁고, 태풍이 휘몰아치듯 격정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토록 빼어나게 묘사한 작품은 드물다. 특히 라스트 신은 압도적인 체험으로 관객을 몰입하게 한다. 그 어떤 사회적 제약과 자신의 시간조차도 함부로 앗아갈 수 없는, 몸과 마음에 새겨진 강렬한 기억으로서의 사랑 그 자체를 묘사하는 완벽한 장면이다.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
 

구속받지 않는 심장의 소리를 따라

뮤지컬 〈더 프롬〉

뮤지컬 〈더 프롬〉

뮤지컬 〈더 프롬〉
인디애나주에 사는 고등학생 ‘엠마’와 ‘엘리사’의 사랑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다룬 작품. ‘엠마’는 이미 레즈비언으로 알려져 학교에서 왕따당하고, ‘엘리사’는 학부모회에서 활동하는 엄마의 영향을 받아 ‘엠마’와의 졸업 무도회 참석, 즉 커밍아웃을 거부한다. 자기 인지와 서로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온갖 갈등을 겪으며 이별했던 ‘엠마’와 ‘엘리사’는 서서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실히 깨닫고, 마지막에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모두 섞인 무도회에서 함께 춤을 추고 키스를 나눈다.
뮤지컬 〈더 프롬〉은 주인공인 10대 레즈비언 커플에 대한 이야기 사이사이에 중년 스타들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극에 재미를 더한다. 동시대의 감수성 풍부한 10대 문화와 타인을 수용함으로써 삶의 여유를 찾는 기성세대들의 정서가 명민하게 혼합됐다. 작품의 백미는 2막 후반부에 ‘엠마’가 ‘Unruly Heart’를 부르는 장면. “오직 내 심장의 소리를 따라 외부의 시선과 맞서겠다”는 내용의 노래에 마음을 맡기다 보면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와 ‘주체성 찾기’라는 대중적인 뮤지컬적 주제가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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