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응 대신 비적응, 새소년의 황소윤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순응과 적응, 부적응은 무기력과 비저항이라는 접점에서 만난다. 밴드 새소년과 황소윤은 두 번째 정규 EP에 부적응 대신 ‘비적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준을 갖기 위해, 스스로 적응하지 않길 ‘선택’한 것이라 했다.


재킷 가격미정 프라다. 선글라스 52만5천원, 스트랩 77만원 모두 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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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촬영 내내 감정을 참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새소년 공연을 봤을 때도 록 스타 특유의 몸짓을 보고, ‘황소윤은 기타를 얼굴로 치는구나’ 생각했거든요.
사실 저는 생각보다 나를 표현하는 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에요. 사람이 살면서 자신을 깨고 나오는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공연하는 순간만큼은 나를 활짝 열 수 있고, 뭘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무대라는 공간이 너무 소중하고, 스트레스 해소가 돼요. 그런데 정신을 차린 상태에서 제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왜 저러지?’ 싶을 때가 있어요. 하하. 반면 사람들은 그런 제 모습을 좋아해주니 감사하죠.


피크를 입에 물고 기타 리프 독주할 때의 바로 그 표정 말이죠? 공연장에서 유독 여자 팬들의 환호가 커요.
제가 중성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뭔가 정말 자기 맘대로 하는 여성이라는 사실에 응원해주는 것 같아요. 국내에서 밴드 음악을 하는 프런트 우먼이 많이 없는데 제가 나름 멋있게 잘해내니까요. 그동안 사람들이 ‘홍대 여신’, ‘홍대 미녀’ 등으로 여성 뮤지션을 대상화할 때가 많았잖아요. 저는 뮤지션으로서도 여성으로서도, 누구에게도 대상화되고 싶지 않아요. 그냥 황소윤 자체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줄 뿐이죠.

황소윤은 ‘보이시’하고 ‘중성적’인 게 매력이라 생각한 사람 중 하나예요. 그런데 정작 스스로는 본인 목소리가 중성적이라 생각한 적 없다고요.
음악을 하기 전부터 보이시하다는 말은 정말 많이 들었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보이시’라는 단어 자체도 사회적 분류 같아요. “여자인데 남자같이 행동한다”라는 표현은 썩 이해가 되지 않거든요. 어렸을 때는 치마를 입으면 마음껏 뛰놀지 못하니까 바지만 입었고, 인형 놀이보다는 칼싸움이 더 재밌었고, 안에 있으면 재미없으니까 밖에 나가서 축구를 했어요. 부모님이 제게 핑크나 치마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방목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한 거거든요. ‘허스키한 목소리를 타고났는데, 평생 보이시하다는 프레임 안에 들어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젠더리스라는 성 개념을 깨뜨리는 것이 저한테는 가장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드레스 1백58만원 장 폴 고티에 빈티지 2000.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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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여성 프런트를 특별하게 여긴다는 것 자체가 홍대 음악 신이 남성 위주로 흘러왔다는 반증일지도 모르죠. 한 밴드의 여성 프런트 펄슨이라는 게 본인에게 어떤 의미예요?
그냥 내가 해오던 대로, 내가 살아온 대로, 내가 살아갈 대로 행동하면 되는 거예요. 다만 많은 여성, 혹은 사람들이 저를 통해 용기를 얻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고, 뭔가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건강한 생각과 행보를 해야겠다는 책임이오. 내 행보가 여성 뮤지션의 행보가 되는 것이라면 더더욱이오. 의식적으로 ‘여성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하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다만 내 행동이 여성 문화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면, 행동하고 싶어요. 솔로 앨범의 수록곡 ‘fntsy’에 여성 연대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죠.


녹색당의 ‘우리에게는 여성 정치인이 더 많이 필요하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죠. 어떤 인연인가요?
주위에 녹색당을 지지하는 친구가 많아요. 다 떠나서 “여성 정치인이 더 필요합니다”라는 카피를 내놓는 당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 역시 이 키워드를 받고 성차별 이슈에 대해 깨달은 게 많아요. 예전에는 ‘왜 홍대 신에 여자가 없지, 왜 다들 음악을 안 하지’라며 의아해했어요. 여성 뮤지션이 없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맥락과 역사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었던 거죠. 녹색당 캠페인에 참여할 즈음, 여성이 좀 더 문화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대중적으로 알려진 뮤지션으로서, 정치색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내는 데 조심스러운 부분은 없어요?
소견을 말할 때 주저하는 편은 아니에요. 지지하고 싶어 그 캠페인에 힘을 실었고, 제가 한 일이 엄청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냥 응원했을 뿐인걸요. 어렸을 때 ‘TV에 나오는 저 사람들이 움직이면 세상이 좀 더 빨리 바뀔 텐데’라는 생각을 한 적 있어요. 대중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잖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왜 공인이 정치색을 가지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편향적이거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면, 은근슬쩍이라도 제 얘기를 하는 게 편해요.


여전히 새소년 하면 첫 싱글 〈긴 꿈〉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대표곡이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전혀요. ‘긴 꿈’은 좋은 곡이에요. 많은 사람이 좋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생각하는 ‘긴 꿈’의 가치나 다른 곡들에 대한 가치가 바뀌지는 않거든요. 저는 그냥 그때마다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이에요. 잘될 것 같거나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애쓰진 않아요. ‘긴 꿈’과는 다른 곡을 만들기보다는 어떻게 새소년의 서사를 만들어나가느냐에 초점을 맞추죠. 제 방식 자체가 결과물을 내어놓고 관객들을 설득하는 거예요. ‘나는 이런 곡들을 냈고, 우리는 이게 좋으니 들어주세요’라는 바이브로 음악을 하고 있어요.

니트 톱, 팬츠 모두 가격미정 선우. 선글라스 21만8천원 키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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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예능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기도 했죠.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또 있어요?
그동안 저한테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음악적인 뭔가를 시키는 예능은 안 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해보니까 재밌더라고요. 방송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뭐든 그냥 편하게 하면 되는구나 싶어요. 영화를 좋아해서, 연출이든 연기든 언젠가는 꼭 해야겠다는 욕심은 있죠. 기회가 되면 〈정글의 법칙〉에도 출연하고 싶고요. 자연을 좋아하고 야생에서 지내는 것도 즐기거든요. 종종 친구들과 무전여행도 가곤 하는데, 생소한 곳으로 떠나면 더 재밌지 않을까요?


여행 말고는 주로 어디에서 뭘 하며 놀아요? 홍대에 사는 스물넷 황소윤의 일상도 궁금해요.
상수에 살다가 최근 망원으로 이사했어요. 사실 저는 홍대를 굉장히 싫어해요. 서울에서 유일하게 살고 싶지 않은 지역이 마포구인데 어쩌다 보니 살게 돼 좀 유감스러운데….


아까부터 “사실 저는”이라며 모순된 말을 많이 한 거 알죠? 하하.
아, 진짜예요! 오늘 인터뷰는 결백합니다. 하하. 종로나 이태원에 많이 가지 홍대는 회사 사무실 들르는 게 아니면 안 가요. 친구들도 집으로 불러서 놀고요. 일단 집순이라 집 밖에 잘 안 나가요. 집에 있는 생활을 너무 좋아하고 집에 있는 시간도 많아 빈티지 홈웨어를 많이 사요. 새것이 아니지만 멋있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이잖아요. 빈티지 홈웨어 중에 소재나 패턴이 예쁜 게 굉장히 많고, 옛날에는 기성 브랜드에서 홈웨어를 만들어 팔았던 경우가 많아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거든요. 브랜드를 따져서 입는 편은 아니에요. 예쁜 옷이 예쁜 옷이니까요.


앞으로는 어떻게 지낼 생각이에요?
새소년을 아우를 수 있는 독자적 브랜드를 만들어갈 생각이에요. 그 형태는 공연이나 굿즈처럼 음악적인 기획일 수도 있고, 그것보다 한층 포괄적인 음악이나 미술, 패션이 융합된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죠. 음악에 국한되지 않은 새로운 레이블 형태랄까요. 새롭고 재미있는 것에 항상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흥미로운 협업을 많이 만들어나갈 것 같아요.
순응과 적응, 부적응은 무기력과 비저항이라는 접점에서 만난다. 밴드 새소년과 황소윤은 두 번째 정규 EP에 부적응 대신 ‘비적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준을 갖기 위해, 스스로 적응하지 않길 ‘선택’한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