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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의 화양연화

1990년대를 회상하며 이보영은 이문세의 노래 ‘조조할인’을 떠올렸다. 드라마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으로 돌아온 그녀는 “돈 오백원이 어디냐고 /난 고집을 피웠지만/사실은 좀 더 일찍 그대를 보고파”라는 노랫말처럼 잔잔한 감성이 흘렀던 그런 시대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BYCOSMOPOLITAN2020.03.24
 
셔츠 93만원, 팬츠 1백55만원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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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더〉 이후 2년 만의 컴백이에요.
둘째를 출산한 지 딱 1년 됐어요. 아기가 이제 막 돌이 됐죠. 일하는 걸 좋아해 임신 중에도 대본을 많이 봤어요. 최근에는 장르물 대본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보다는 감정을 건드리는 작품들이 가슴에 확 와닿더라고요.


〈화양연화〉라는 드라마 제목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명의 영화가 떠올랐어요.
영화와는 달라요. 드라마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뜻하는 사자성어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의미 그대로를 담고 있죠. 20대에 미친 듯 사랑하던 두 사람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고, 훗날 재회하는 이야기거든요.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청춘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거죠.


멜로 드라마는 오랜만이죠?
그동안 멜로물 자체를 많이 안 했어요. 미친 듯이 사랑에 빠져야 하는데, 그러기엔 저라는 사람이 너무 이성적이어서 그 감정을 깊게 이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이번 드라마에서 미친 듯 사랑하는 연기는 20대 배우들이 회상 신에서 다 해요. 극 중 제가 연기하는 ‘지수’와 ‘재현’(유지태)의 20대 역을 맡은 (전)소니와 (박)진영이 너무 잘하더라고요. 둘 다 건강하고 맑아서 학교에 저런 선배랑 저런 애 있으면 재밌었겠다 싶었어요. 어린 스태프들에게 요새 학교 가면 ‘재현’이 같은 선배 있냐고 물었더니 그런 애들은 진작에 JYP 같은 소속사에서 다 데려가고 없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재킷, 팬츠 모두 가격미정 르메르.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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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과 ‘지수’는 첫사랑과 재회하지만 각자의 삶이 있죠. 관점에 따라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소재기도 해요.
드라마의 매 신마다 20대 청춘과 현재가 교차하거든요. 사람들은 모두 한때 예뻤던 기억을 하나쯤 간직하고 살잖아요. 그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예요. 원치 않는 이별을 한 두 사람이 헤어져도 헤어지지 못하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느낌에 가깝죠. PC통신 하이텔이나 삐삐, MT, 농활 등 1990년대 시대상을 나타내는 요소를 보는 재미도 있을 거예요. 저도 1990년대를 겪어본 세대다 보니 그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나 때는” 하고 말이죠. 하하.


‘라떼는’ 어땠는데요? 1990년대의 사랑은 지금과 달랐어요?
요즘처럼 애매하게 썸 타지 않고 좋으면 무조건 돌격하고 직진했거든요. 좋아한다고 직접적으로 표현을 왜 못 해요? 지금은 문자 한 통이면 만날 수 있지만, 그때는 상대를 한번 만나려면 오래 공을 들여야 했어요. 전화나 삐삐로 연락하다 보니, 지금처럼 문자 몇 번 주고받다가 연락을 끊기에는 좀 더 직접적인 교류가 오간 거예요. 휴대폰이 없어 집 전화로만 통화할 수 있었는데, 집으로 전화까지 할 정도면 이미 꽤 발전된 관계를 의미했죠.


1990년대는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의 시대기도 했잖아요. 극 중 ‘지수’와 ‘재현’도 영화를 매개로 추억을 만든다고요. 이보영의 1990년대는 어땠어요?
멀티플렉스가 없어 종로나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많이 봤어요. 저는 인천에 살아서 애관극장에 자주 갔고요. 디즈니 영화를 좋아하는데 〈알라딘〉 〈타잔〉 〈뮬란〉을 다 극장에서 봤네요. 그때는 지정 좌석제가 아니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았어요. 표 검사도 잘 안 해 고등학생 때 좋아하는 영화는 종영 후 상영관에서 나가지 않고 두 번 연달아 보고 그랬죠. 하하.
 
드레스 1백38만원 조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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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봤던 디즈니 영화들이 실사판으로 제작되는 날이 왔죠.
딸 때문에 디즈니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시대에 따라 제 관점도 많이 바뀌긴 했나 봐요. 다시 보니 공주들이 굉장히 수동적이라 왕자님만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더라고요. 뮬란조차 “결혼 잘해야 돼, 남자 눈에 들어야 돼” 같은 가사를 노래해요. 백설공주는 노래만 부르고 청소도 동물들이 해주고, 자고 있으면 왕자님이 와서 뽀뽀를 해줘요. 깨어나면 둘이 말 타고 떠나고요. 그래서 딸한테 보여주기 조심스럽더라고요.


딸 얘기를 하니, 이보영 씨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게 실감나네요. 18년 차 배우,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어요?
가족끼리 넷이 누워 있을 때가 마음이 제일 충만해요. 아이들이 내 품에서 떠날 날이 몇 년 안 남았다는 기분도 들고요. 첫째는 벌써 친구를 좋아하는 나이인데, 조금 더 있으면 엄마보다 친구를 찾겠죠? 애들이 내 품 안에 있을 때가 너무 좋아요. 아이를 끌어안고 뽀뽀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생각이 들어 더 소중해요. 요즘엔 넷이 돼 좀 더 완벽해진 기분이에요.


드라마에서는 20대가 반짝이는 시절로 그려지잖아요. 그런 청춘도 화양연화가 아닐까요?
20대를 너무 힘들게 보내서 그런지 그때로는 절대 안 돌아가고 싶어요. 지금의 강한 멘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요. 저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도 아니었고, 연기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예술적인 감성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런 제가 어떻게 하다가 연기를 하게 된 거죠. 사회성이 좋은 성격도 아니라서, 남한테 잘 보이려고 친절하게 굴거나 마음에 안 드는데도 웃고 있질 못했어요. 얼굴에 티가 나서요. 촬영 현장에서 내가 잘못하거나 감독님한테 혼이라도 나면, 굉장히 위축되고 기도 많이 죽어 있었어요. 그렇다고 감정을 숨기고 “괜찮아요”라며 웃고 넘어가지도 못했고요. 돌이켜보면 눈치가 무뎌 버틴 것 같아요. 타인의 미묘한 감정 변화에 일희일비했다면 더 힘들었을 텐데, 섬세하고 예민한 타입이 아니라 그냥 버텼던 것 같아요.
 
슬리브리스 셔츠, 스커트 모두 가격미정 지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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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딘 성격 덕에 초연할 수 있었네요. 경험이 쌓이면서 많은 것에 무덤덤해졌죠?
여전히 무덤덤해지지는 않았어요. 단지 많이 단련됐으니까 버텨낸 거죠. 만약 20대 때로 돌아가면 남 신경 안 쓰고 정말 자유롭게, 뭐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면 좋겠어요. 당시의 저는 의식하는 것도 너무 많았고, 현장에서는 기가 죽어서 뻣뻣하게 긴장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때는 악플 같은 것에 초연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지금은 ‘뭐야?’ 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그때는 그게 안 됐거든요. 그저 나 자신만 보고 상황을 즐겼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렇게 버텼기에 지금의 이보영이 있는 거잖아요. 요즘 김태희, 김희선 등 ‘언니들’이 많이 복귀해요. 그들을 보며 유대감을 느낄 때도 있어요?
2년 전에 〈미스티〉의 김남주 언니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어요. 내 딸이 컸을 때 “우리 엄마가 저런 일을 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오래 활동하고 싶다고요. 성별을 떠나서 배우는 나이가 들면 소화할 수 있는 장르가 줄어드는데, 좋은 선례가 있으니까 나도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예전에는 솔직히 그러기 힘든 분위기였잖아요. 잘해나가고 있는 롤모델들이 앞에 있으니 나 역시 연기를 오래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어요.


드라마가 끝나고 난 뒤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 예정이에요?
4월에 〈화양연화〉가 첫 방송을 해요. 열심히 드라마 찍다 보면 또 한 해가 갈 것 같아요. 요즘은 다시 나를 찾으니까 일하는 게 행복해요. ‘20대 때 이렇게 즐겼으면 연기를 되게 잘했을 텐데, 그때는 왜 못 즐겼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할 만큼요. 현장의 공기도 좋고, 연기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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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Feature Editor Ha Ye Jene
  • Photographer Ahn Joo Young
  • Stylist 황정원
  • Hair 김선희
  • Makeup 최시노
  • Assistant 김지현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