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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리얼 후기, 이런 반전이 있다고?

국내 스타트업 투자 금액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투자 추이를 고려하면 올해는 무려 4조원을 돌파할 예정. 영역이 확장된 만큼 관심도 점점 깊어졌다. 장밋빛 가득한 스토리부터 열악한 근무 환경에 고개를 젓게 되는 ‘썰’까지. 무성한 소문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코스모가 퇴사자들에게 물었다. 스타트업, 대체 어떤 곳이야?

BYCOSMOPOLITAN2020.03.20
 

진짜 ‘내 일’을 찾을 수도 있어

스타트업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나 걱정과는 다르게, 자기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1회사 1자율 출퇴근제 보급이 시급합니다”
황희윤(가명, 34세) 씨는 ‘자율 출퇴근제’를 지향하는 스타트업 회사에 면접을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어요. 기껏해야 지각을 봐주는 정도겠지 했죠.” 그 불신은 기쁘게도 착각이었다. 황희윤 씨는 그 회사에서 ‘워라밸’의 의미를 몸소 깨닫고 실천했다. 회사 내에서 지켜야 하는 시간은 회의 시간과 하루 7시간의 근무량뿐이었다.
“더 이상 2호선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됐어요. 여유롭게 아침 운동을 하는 건 물론이고 친구들에게 ‘미안, 오늘 야근 때문에 약속 못 지킬 것 같아’라는 사과 문자를 보내지 않아도 됐죠.” 각자 일이 가장 잘되는 시간에 일하니 효율성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순리였다. 회사 내의 쓸데없는 친목이나 불필요한 잡담이 없었다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일과 개인 시간이 철저히 분리된 삶이었어요. 회사에 있는 시간만큼은 모두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집중해서 일만 했거든요.”
비록 황희윤 씨는 더 높은 연봉을 거부하지 못하고 3년 만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지만, 종종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길 만원 버스에 올라탈 때마다 그때 그 꿈 같았던 회사 생활을 그리워하곤 한다.
 
“나를 스케일업하게 해준 곳!”
이소정(가명, 30세) 씨는 SNS 콘텐츠 제작자로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사수가 퇴사를 했다. 이소정 씨에게 그 후 3개월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 회사였기에 모든 걸 혼자 알아서 해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잔뜩 위축된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힘이 돼준 건 대표와 팀원들이었어요. 회의를 할 때면 SNS 관련 건은 신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의견을 가장 중요시했죠. 개발자와 디자이너 모두 제 주도하에 움직여줬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붙었다. 이소정 씨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잠시나마 엿보게 됐다고 했다. “매일 조회 수 수치와 트래픽을 확인하니 저만의 업무 체계와 방식이 잡혀나가기 시작했어요. 성과가 눈에 보이니 일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고요.” 일이 익숙해질 때쯤에는 그간 시도해보고 싶었던 바이럴 마케팅도 과감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2년 차 사회 초년생에게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팀원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독학한 코딩과 디자인은 이직할 때 저를 어필할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였어요. 처음 입사할 때 스펙이라곤 낙서처럼 끄적이던 블로그뿐이었는데 말이죠. 지금 제가 이렇게 전문 마케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신입을 믿고 일을 맡겼던 그 회사 덕분이에요.”
 
“매너가 회의를 만든다”
“첫 출근 날, 참관차 회의에 들어갔는데 충격 그 자체였죠.” 홍지연(가명, 28세) 씨는 그간 평범한 중소기업을 전전해왔다. 그녀가 지금껏 겪었던 회의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없었다. 오직 부장의 목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은 회의 시간 내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듣듯 “네”만 반복했었다. 하지만 이직한 이 스타트업 회사는 달랐다.
“팀원들이 서로가 내는 의견마다 반론을 제기하더군요. 대표 의견 역시 예외는 아니었어요. 아무리 직급이 아닌 ‘님’으로 호칭을 사용한다지만 이렇게까지 살벌한 줄은 몰랐죠.” 홍지연 씨는 점차 팀원들과 친해지고, 업무가 익숙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들은 그저 회의를 했을 뿐이었다는 것을. “팀원들이 주고받는 언어에는 상대방을 아랫사람처럼 여기거나 인신공격이 담긴 단어가 조금도 포함돼 있지 않았어요. 그 점이 정말 놀라웠죠.” 그전 회사의 상사들이 회식 때마다 자신들은 수평적이라며 세상 불편한 ‘야자 타임’을 강요했던 기억과는 정반대의 경험이었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는 서로를 친구 대하듯 막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매너와 예의가 기본 전제라는 것을 홍지연 씨는 그 회사에서 알게 됐다. “퇴사를 할 때쯤 제 별명은 ‘프로 반대러’였어요. 그만큼 제 업무에 대한 주관과 열정도 단단해졌죠.”
 

성장과 생존 사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꿈동산처럼 일할 줄 알았다가 실망해 서둘러 퇴사한 사람과 스타트업을 성장의 밑거름 삼아 성장한 사람들의 이야기.


“자유로운 업무 환경이오? 차라리 GPS를 달아줬음 했어요”
장영지(가명, 32세) 씨는 꿈에 그리던 스타트업 기업에 합격했다. 그녀가 입사한 회사는 구글을 연상케 하는 ‘힙’한 인테리어로 이미 SNS상에서 ‘한 번쯤 일해보고 싶은 회사’로 유명세를 치른 곳이기도 했다.
출근 첫날, 팀장이 그녀에게 준 건 데스크톱이 아닌 노트북이었다. “저희는 고정석이 따로 없어요. 편하신 곳에서 일하면 돼요. 근처 카페에 가셔도 되고요.” 주위를 둘러보니 반려견을 껴안은 채 회의를 하는 이들도, 해먹에 드러누워 업무를 보는 이들도 있었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자세로 일할 수 있다니!’ 그 행복감은 딱 일주일 갔다. “그땐 몰랐어요. 업무 환경이 자유롭다는 건 그만큼 소통이 안 될 수 있다는 것을요.” 그 후 그녀의 회사 생활은 업무 50%, 돌아다니기 50%가 됐다.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마다 노트북을 들고 숨바꼭질하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팀원들을 찾아다녀야 했으니 말이다. “팀원들이 매번 ‘이 카페 예쁘던데?’라며 신상 카페를 검색해대는 통에 회의 시간보다 회의 장소 정하는 게 더 오래 걸렸어요.”
자유로운 업무 환경은 곧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걸 깨닫고 사표를 쓰기까지는 1년이 걸렸다. 1년간 그녀가 얻은 건 업무 능력이 아닌 탄탄한 다리 근육이었다는 씁쓸한 사실과 함께 말이다.


“중요한 업무를 맡고, 야근도 도맡게 됐죠”
스타트업에 대해 흔히들 갖는 기대 중 하나는 바로 연차에 비해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박수현(가명, 26세) 씨 역시 이 부분에 크게 동의한다. “사회 초년생 친구들이 아직도 복사나 엑셀 업무만 보고 있다며 투덜댈 때, 저는 이미 대기업 계약 건 기획서를 쓰고 있었으니까요.”
박수현 씨는 마케팅직 신입으로 입사하자마자 대기업 계약 건을 넘겨받았다. 문제는 그녀를 도와줄 사수도, 이렇다 할 사내 매뉴얼도 없었다는 것이다. 취준생 시절 참여했던 공모전 몇 개와 대기업 인턴 생활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대기업 계약 건을 신입 혼자 맡기에는 그 누가 봐도 무리인 프로젝트였다. “하마터면 일을 넘겨준 대표에게 ‘제정신이세요?’라고 되물을 뻔했어요.” 하지만 그녀에겐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시간조차 없었다. 6개월 동안 한 번도 정시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 자정 전에 퇴근하면 다행이었다. “해가 뜰 때까지 업무를 보다 회사 근처 사우나에서 샤워만 하고 다시 출근한 적도 많아요. 마케팅 팀원이 저 하나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심지어 그녀는 ‘돈 주고도 못 배울 일’이라는 말과 함께 야근 수당도 못 받았다고 했다. 수많은 밤샘 덕에 결국 대기업 계약은 성사됐지만 그녀는 그길로 미련 없이 퇴사했다.
“저한테 큰 공부가 되기는 했어요. 이직할 때 도움이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대로 다녔다간 과로로 죽겠다 싶더라고요.” 박수현 씨는 이제 첫 직장을 떠올리면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먼저 생각난다고 한다.
 
“업무 능력은 수평적! 젊은 꼰대는 수많음!”
최이슬(가명, 29세) 씨가 대기업 퇴사 후 들어간 스타트업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내세워 직급 대신 영문 이름으로 서로를 호칭하는 곳이었다. “대부분의 팀원이 제 나이 또래였기에 직급에서 오는 위화감이 전혀 없었어요. 딱딱했던 대기업 조직 문화와는 달라 일단 안심했죠.”
문제는 회사 초기 구성원이자 그녀의 사수였던 ‘스티브’였다. 그는 ‘꼰대력’과 ‘무능함’을 고루 갖춘 끔찍한 혼종이었다. “입사 후 첫 회식에서 그는 자기 성공 스토리를 늘어놓기 바빴어요.” 회의할 때 ‘우리 회사는 수평적이다’라는 걸 강조하면서도 막상 보고서를 볼 때는 폰트와 글자 크기까지 일일이 의견을 묻는 비효율성의 끝장판을 보여줬다. 피드백의 기준은 스티브의 기분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고, 수정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코멘트는 없었다. 업무에 체계가 전혀 잡혀 있지 않았다. 최이슬 씨는 차라리 위계질서를 중요시하지만 효율적으로 일하는 대기업 사수가 그리울 정도였다고 한다. “‘수평적이라는 게 조직 문화가 아니라 업무 능력이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죠.”
퇴사를 결심했던 순간은 스티브와 의견 충돌이 있었던 회의 날 저녁, 그가 SNS에 그녀를 저격하는 글을 올렸을 때였다. “비슷한 또래라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대학교 동아리 활동도 이렇게 유치하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최이슬 씨는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