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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접한 뒤 연애가 불편해졌다고?

페미니즘을 접한 뒤 연애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도 우리는 남자를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을.

BYCOSMOPOLITAN2020.03.10
 
내 남친만은, 내 썸남만은 ‘한남’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읽기 시작했을 사람에겐 실로 미안한 이야기지만 당신이 과거에 만났거나 지금 만나고 있거나 앞으로 만날 모든 남자는 ‘한남’이 맞다. 한국을 떠나 외국 남자를 만난다고 치자.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자라나고, 남성으로 사회에 나온 남성인 이상 절대 ‘남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당신은 절대 ‘페미니즘적으로 완벽한 남자’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자기가 그렇다고 주장하는 남자가 있다면 뒤도 보지 말고 도망쳐라. 진심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고민을 안고도 연애를 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 당신 역시 페미니스트가 됐지만 여전히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라면 아마 다음 네 여자의 사연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는 않을 거다. 그들 각자의 사연에 진심 어린 사족을 보탰다.

 

 
“아직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모태 솔로입니다. 언젠가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로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요. 남자가 다가오면 괜히 신경이 곤두서고, 간혹 마음에 드는 남자와 관계가 진전될 기미가 보이더라도 혹시나 데이트 폭력범은 아닐까, 나와 섹스하는 걸 몰래 촬영하지 않을까 두려운 나머지 자꾸만 뒤로 물러서게 돼요. 이대로 저는 비연애주의자가 되는 걸까요?” -서수현(가명, 21세)
미디어에서 방영하는 대부분의 드라마가 ‘기승전연애’로 끝나는, 연애 지상주의의 끝판왕 대한민국에서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건 종종 ‘이상한’ 행동으로 취급되곤 한다. 오죽하면 “연애는 필수”라는 노랫말까지 있겠나. 게다가 이 사회는 본래 ‘나도 고발한다’의 뜻인 ‘미투(#MeToo)’를 ‘나도 당했다’로 해석한다. 여성이 자신이 겪은 피해를 이야기할 때조차 여성의 주체성은 박탈당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의를 가진다. 다만 벌써부터 모든 가능성을 닫고 비장하게 ‘비연애’를 선언할 필요까지는 없다. 연애 그까짓 거,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거지, 필수는 무슨 필수람? 어차피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상,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연애를 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남자는 이 땅에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숙지하고만 있으면 된다. 연애를 하고 있든 못 하고 있든,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니 좀 더 여유를 가지시길.
 

 
“항상 연상의 남자와만 연애를 했어요. 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한 뒤로 ‘오빠가 말야~’ 하는 투의 말이 모두 불편해졌죠. 시도 때도 없이 훅 들어오는 ‘맨스플레인’에도 꼬박꼬박 대응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연애를 했던 상대에게 ‘넌 왜 이렇게 이겨 먹으려 드냐’란 말을 듣고 나니 그동안의 연애에 회의감마저 들더라고요. 동갑이나 연하를 만나면 이런 불쾌한 경우가 좀 줄어들까요?” -연희주(가명, 28세)
여자들은 꽤 오랜 시간 ‘남자는 와인’이라는 말에 속아왔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것이 절대 성숙(혹은 숙성)의 증거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자들은 그동안 수많은 ‘연상남’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특히나 관계를 맺을 때 ‘오빠’라는 칭호를 고집하는 남자일수록 가부장적이고, 여자 친구를 포함한 여성을 ‘아랫사람’으로 생각할 가능성 역시 크다. 따라서 경험적으로 연상보다는 동갑을, 동갑보다는 연하의 남자를 만나는 것이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것이다. 더불어 과학적으로도 뇌는 최소 스무 살까지 지속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어린, 머리가 말랑말랑한 남자일수록 페미니즘을 포함한 새로운 지식을 쏙쏙 흡수할 확률도 높다. 비슷한 수준의 33살 남자와 22살 남자가 있다면 당연히 후자가 발전 가능성이 더 큰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나이가 깡패(!)라고, 연하의 남자는 섹스할 때 체력이 다르다는 점 역시 플러스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키 링’으로 삼을 만큼 깜찍한 남자가 존재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
 

 
“원래부터 연애를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한 후로 더 적극적으로 섹스 파트너나 FWB 같은 관계만을 원하게 됐어요. 상대에게 그 이상의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나 싶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게 피곤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걸까요? 남자들이 이런 저를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만 이용하지는 않을까요?” -이다원(가명, 27세)
누군가에게 섹스는 특정한 상대와 친밀함을 나누는 행위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다수의 파트너와 즐기는 스포츠일 수 있다. 그동안 여성에게 그나마 허락된 섹스는 전자뿐이었고, 그것마저 남성의 욕구에 의해서만 작동했으나 페미니즘을 접한 후로 여성은 오롯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섹스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끔 사고 회로가 아랫도리에 머물러 있는 남자들이 그것을 프리섹스, ‘자유’라고 쓰고 ‘공짜’라고 잘못 읽는 우를 범하곤 하지만 내 욕망의 주체가 나 자신이라는 점을 반드시 늘 상기하자. 더 적극적으로 원하는 체위나 애무를 요구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솔직하게 얘기하자. 다만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만큼 피임과 안전에 특히 더 유의하라는 말은 꼭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상대와 1:1로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주위의 믿을 만한 누군가에게 반드시 행선지를 알릴 것, 불법 촬영에 주의할 것, 그리고 성병 진단서를 받고 서로 공유할 것. 어차피 예민할 거, 그냥 제대로 예민해버리는 게 낫다.
 

 
“남자 친구와 2년째 동거 중이에요. 저는 프리랜서고, 남자 친구는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가사일은 제 몫이 될 때가 많아요. 남자 친구가 제 영향으로 페미니즘을 접한 뒤 가사일을 ‘돕는다’는 개념에서 어찌저찌 ‘분담한다’까지는 왔는데, 막상 집에 있는 사람은 저니까 결국 대부분 제가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까지는 사랑하니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맞는 걸까요? 사랑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견뎌야 할까요?” -정은지(가명, 32세)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혼란은 시작된다. 처음에는 정말 사랑으로 시작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 년이 된다면? 정말 좋아하는 일도 꾸준히 하기 힘든데 즐겁기는커녕 귀찮기까지 한 일이라면 어떻겠는가? 게다가 상대가 고마운 줄도 모른다면? 억울해진다. 울분이 쌓인다. 그렇게 견디다 어느 날 그냥 펑! 폭발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화가 남자 친구를 향한다면 그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혹은 적반하장으로 더 크게 역정을 낼 수도 있다. “네가 좋아서 해준 거잖아!”라면서 말이다. 가사 노동뿐만이 아니다. 온갖 감정 노동, 꾸밈 노동, 금전관계 등, 연애 관계 안에서 당신이 착취당하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이 바로 가부장제다. 이 사회에서 나고 자란 이상 남성도 여성도 자유로울 수 없다지만,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요구되는 조건이 더 까다로운 것도 사실이다. 결국 그것을 거부하고, 연애 관계라는 단 두 명의 작은 사회 안에서라도 새로운 기준을 정하는 것은 여성인 나뿐이다. 정말 복장 터지는 노릇이지만 원래 우물은 목마른 사람이 판다.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인가? 이걸 함으로써 나의 기분이 상하지는 않나? 여성으로서 내가, 인간으로서 내가 존중받는 기분이 드는가?’ 스스로 잘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말하고 요구해야 한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당장 끝장낼 각오로 말이다. 기억하자. 연애는 사우나가 아니다. 견뎌봤자 나오는 것이라고는 당신의 피눈물뿐이다.
 

 
사랑하되 나를 더 사랑하자
혹자는 말한다. 페미니즘을 몰랐던 때가 나았다고. 그럼 이 정도로 피곤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라고. 그저 행복하고 싶을 뿐인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꽁냥꽁냥’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페미니즘이 다 망쳐놨다고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문제의 원흉인 남자를 미워하는 대신 스스로를 미워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똥차 같은 남자를 만나면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내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니까 그런 남자를 만난 거라고 스스로를 탓했다.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는 남자를 만나면 그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던 거라고 상황을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습관은 페미니즘을 접한 후에도 쉬이 없어지지 않아 결국은 스스로를 원망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은 잘못한 게 없고, 인간처럼 살고 싶어 페미니즘을 받아들인 당신에게도 잘못이라곤 조금도 없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적어도 ‘남자가 좋아하는 ○○’ 따위를 검색하던 시절로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향하는 비난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밖에서 오는 것인지 제대로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은 페미니즘 덕분이다. ‘나’가 ‘나’가 아니던, 가부장제 사회가 원하는 여성이라는 틀 안에 나를 욱여 넣던 과거와는 작별해야 한다.
물론 페미니즘으로 당신의 연애가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는 스스로를 위해 선택하고, 기준을 만들고, 타협하지 않을 것. 그리고 만약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면 그것을 반드시 공유하고 고발할 것.
그렇기에 더더욱 누군가의 허락을 구할 일은 아니지만, 아직도 확신이 없는 사람을 위해 이 말을 남긴다. 남자를 좋아해도 괜찮다. 연애를 해도 괜찮다. 다만 늘 연애나 남자보다 본인의 행복과 욕구를 앞에 두길 바란다.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양보하지 말기를. 당신의 인생은 지하철의 빈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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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Write 민서영(<썅년의 미학> 저자)
  • photo by Topic Images
  • Digital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