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여성 조명 감독이 겪는 영화 업계

우리의 2020년이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가 그린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은 건, 인류의 반인 여성들의 배려와 존중 때문이 아닐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서로가 빛을 비춰주자고,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말하는 ‘연대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BYCOSMOPOLITAN2020.03.09
 

“먼저 가요, 내가 비춰줄게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 & 강지현 조명 감독
 
(김초희)재킷·팬츠 제인송, 펌프스 레이첼콕스. (강지현)셔츠 자라, 플리츠스커트 유어네임히얼, 부츠 레이첼콕스

(김초희)재킷·팬츠 제인송, 펌프스 레이첼콕스. (강지현)셔츠 자라, 플리츠스커트 유어네임히얼, 부츠 레이첼콕스

두 분은 이번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이하 〈찬실이〉)로 처음 만났죠. 어떻게 함께 작업하게 됐나요?
강지현 원래는 저희 팀 퍼스트가 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크랭크인 일주일 전에 못 하겠다고 한 거예요. (입봉작이라) 자신이 없었나 봐요. 그 말을 듣고 제가 하게 됐죠.
김초희 저는 기술적으로 뭔가를 잘 아는 감독이 아니라 배워가는 중인데요, 실제로 조명이 영화에서 얼마만큼 중요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이분이 가르쳐주셨죠! 하하. 이번 영화를 정말 열심히 만들어서 저도 이분도 같이 잘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인데 그게 알려질 기회가 ‘상대적으로’ 없었던 것 같거든요.


여성 조명 감독은 정말 드물다고 들었는데, 성별 때문에 편견에 부딪히거나 부당함을 겪은 적도 있나요?
강지현 한동안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라인업(후보)에서 잘린 경우도 많았어요. 다른 감독들이 저보다 작품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저보다 실력이 낫다는 걸 증명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여자라서 왜 안 되는 거냐고 물었을 때 “여자는 다루기가 힘들대”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여자가 소수이고 남자가 다수일 때, 여자들이 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투덜거림은 늘 있었죠. 그들은 여자 남자를 양분해서 해석하는 거지만, 성별을 떠나 개별의 사람으로 봐야 하잖아요? 제가 팀에서 지위가 올라갈수록 후배들이 말을 안 듣는 게 느껴졌어요. 그걸 잡으려고 정말 세게 밀어붙였죠.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생각해보니 저 자신한테 너무 실망스럽더라고요. 내가 갖고 있는 장점과 카리스마가 있는데, 왜 그렇게 강압적으로 굴고 욕을 했을까…. 한편으로 당시는 젠더에 대한 인식이 지금 같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단 생각도 들고요. 다른 후배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년엔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정말 대단했어요. 두 분은 요즘의 분위기를 어떻게 느끼나요?
김초희 앞으로는 영화가 남자만의 직업적 특수성이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느낌, 그건 반갑죠. 그런데 하필 이 시기에 이렇게 많은 여성 감독이 출몰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여성 감독들의 ‘축적된 서사’가 많고, 그게 폭발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이야기해도 보편성을 가지게 됐고요.
강지현 전에는 젠더를 ‘장단’으로 바라봤다면 지금은 ‘특성’으로 바라보려고 하잖아요. 여성 감독들이 찍는 영화를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요?
강지현 저는 카페에서 ‘찬실이’가 박 대표한테 하는 말이 내 이야기처럼 마음을 후벼 팠어요. “대표님은 제가 어떻게 일했는지 못 보셨잖아요!” 촬영장에서 모니터 보다 울었잖아요.
김초희 그거 찍고 회식을 하는데, 이분이 저한테 와서 “감독님, 저 그거 찍으면서 울었어요” 하더라고요. 전 아직 관객을 만난 게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제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지 몰랐는데, 그렇게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절대 조명 감독님이 옆에 있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찬실이’가 ‘영이’를 만나려고 도시락을 싸가 복도에서 가만히 서 있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때 저쪽에서 빛이 쑤욱 들어와요. 한쪽은 어둡고 한쪽은 빛이 묻어나죠. ‘찬실이’에게 희망이 쏟아지는데 본인은 인지를 못하고 관객들만 알 수 있는 순간? 그래서 그 장면이 좋았어요. 조명 감독님이 해낸 장면이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지만, 〈찬실이〉는 좋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서 영화가 의미 있다고 말하죠.
김초희 ‘감독의 역할이 뭘까?’라는 질문을 저 스스로 많이 던졌어요. 가장 단면적으로는 ‘결정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결정을 할 때 흔들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유연성을 발휘하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스태프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땐 기울이고 아닐 땐 아니라고 말하고, 결국은 소통이죠. 저는 이번 영화를 촬영할 때 제가 생각하는 삶의 태도에 근접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좋은 사람들하고 행복감을 느끼면서 하는 좋은 작업이 되길 원했고, 많은 사람이 마음을 열고 맞춰준 거죠.


〈우먼 인 할리우드〉처럼 〈충무로의 여자들〉이란 영화가 나온다면 두 분은 한국 영화계에서 여자로 일한다는 것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나요?
김초희 제가 지금의 삶에 얼마만큼 충실한지 자문할 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척도가 있는데요, 끊임없이 변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인지 물어요. 저는 감독을 하면서도, 여성으로서 살면서도 끊임없이 변하려고 노력하고 소통하면서 살고 싶어요. 소통이 안 되면 다시 시작해야죠.
강지현 전엔 이 일을 고집처럼 했던 것 같아요. 바득바득 이길 거야, 해낼 거야 하면서요. 그러니 후배들한테 “이 일 재미없다, 어차피 열심히 해도 조명 감독은 안 될 거다” 했겠죠. 그런데 지금은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만두기 싫은 이유 중 하나죠. 요즘엔 일을 하면서 행복하고, 성취감을 느껴요.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그래요. “네가 행복하다면 해!”


이 시대의 ‘찬실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강지현 전에 감독님이랑 좌우명 이야기하면서 서로 완전 반대라 엄청 웃었는데요, 그걸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감독님 좌우명은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김초희 운명론자거든요!
강지현 저는 “될 대로 되라면 뭐라도 된다”. 하하.





about 〈찬실이는 복도 많지〉
시집은 못 가도 영화는 계속 찍고 살 줄 알았던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 어느 날 갑자기 영화를 그만두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 현생은 망했다 싶었는데, 영화를 그만두니 전에 없던 복이 들어올 것만 같다. 영화 프로듀서로 오래 일한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포스터 카피는 “봄처럼 복은 꼭 와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