깬다 깨! 썸 타다가 정말 깨는 순간 5 #Men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잘나가던 썸, 뜨겁게 불타 오르던 사랑을 한순간에 식게 하는 건 의외로 작은 포인트 하나일지도 모른다. ‘와장창!’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진 순간들.




잠깐만… 뭘 박.는.다.고?

’그냥 주차할 자리가 없다고 하면 안 되는 거니?“

’그냥 주차할 자리가 없다고 하면 안 되는 거니?“

학교 앞 술집에서 종강 파티를 하던 중이었다. 옆 테이블의 남자가 다가와 쭈뼛거리며 말을 걸었다. “저… 죄송한데 제 동생 한번 만나보실래요? 동생이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잠재적 아주버님(?)의 스카우트 제의였다. 교수님부터 동기들까지 이런 인연이 또 어딨겠냐며 부추겼고, 결국 나는 못 이긴 척 소개팅을 수락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나갔는데, 웬걸. 보급형 송중기같이 생긴 외모에 키까지 훤칠한 J를 마주하자 내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하얀 피부와 소년 같은 미소, 그와 상반되는 저음의 목소리, 성형한 티는 좀 나지만 베일 듯이 오뚝한 콧날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뀐 건 식당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천진한 표정으로 “아~ 차 어디다 박지? 박을 때가 없네? 어디다 박을까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다. 교양 없는 단어 선택에 내 마음은 갑분싸. J는 자신의 실수를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저녁 식사 내내 신나서 떠들어댔지만 나는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차가 아니라 뭔진 모르겠지만 나한테 박을’ 것 같은 더러운 상상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상스러운 말이 입에 ‘착붙’인 남자를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으랴. - 아주버님대가리박아, 28세



센 척한다고 강한 건 줄 알아?

J는 애교가 많은 남친이었다. 마냥 순둥이인 줄로만 알았던 그의 낯선 면모를 처음 본 건 택시 안에서였다. 기사님이 길을 잘못 들자 갑자기 ‘극대노’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예민한 건지 센 척하는 건지,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생기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식당에서 음식이 늦게 나와도 꼭 언성을 높이곤 했다. ‘그럴 수도 있지’와 같은 아량은 없고, 매번 화를 내는 J의 태도에 민망해질 때가 많았다. 내 눈에 그는 할 말은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센 척하는 허세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J가 급발진할 때 손을 꼭 잡아주며 참으라고 다독일 때마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자녀를 데리고 다니는 학부모가 된 기분이었달까. 그는 알까? 진짜 강한 남자는 센 척하는 남자가 아니라 평소 주위 사람에게도 교양과 매너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처럼 말이다. - Manner makes a man, 28세


페미니즘의 ‘페’자도 모르면서?

작가인 S는 ‘여자’에게 인색했다. 망원동에 사는 내 친구 P가 이유 없이 싫다고 했다. 종종 ‘망원동에서 고양이 키우고 살면서 트위터하는 애들’을 싸잡아 ‘메갈’로 매도하며, P와 어울리지 말라는 생떼를 쓰기도 했다. “그런 애들 다 ‘페미’ 아니야? 자꾸 그 동네 가서 놀면 너도 똑같은 애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는 식이었다. 이후 그의 모든 말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여자’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언쟁을 펼치다 각자 갈 길을 갔다. 너 요즘도 남자 페미니스트인 척하면서 시대의 지식인인 양 글인지 똥인지 싸대니? - 지금이어떤시댄데, 31세


남의 눈치만 보지 말고 내 눈치도 좀 보지 그래?

그날의 데이트 메뉴는 한정식. 10첩 반상이 펼쳐졌는데, 주변 테이블마다 놓인 나물 반찬이 우리 상에만 없는 거였다. 평소 나물에 환장하는 나는 나이 지긋한 종업원에게 “저희 초록 나물 한 접시 더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여쭸고, 그는 웃으며 “메뉴마다 반찬이 조금씩 다른데 먹고 싶으면 줘야지~”라며 응대했다. 순간 남자 친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 집도 이 집만의 룰이 있는데, 네가 왜 그걸 깨? 왜 ‘어그로’를 끌어 사람들이 쳐다보게 만드냐 말야”라고 내게 무안을 주는 게 아닌가. 나는 “공손하게 물어봤고 종업원도 흔쾌히 괜찮다고 하는데 왜 화를 내냐”고 반박했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걸 문제의 ‘초록 나물’이 도착하자 그는 굳이 한마디 덧붙였다. “일본이었으면 추가 차지 내야 하는 일이야.” 일전에 “이 시국에 할 말은 아니지만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의 국민성 하나는 인정한다”라고 말했던 그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먹는 걸로 구박하는 게 야속한 동시에, 필요 이상으로 남의 눈치를 보느라 애인에게 핀잔 주는 그에게 배신감이 느껴졌다. 안녕, 사요나라. - 혼또니스미마셍, 30세


얼굴이랑 손이랑 따로 놀기 있어?

소개팅남 K와는 카톡 대화부터 쿵짝이 잘 맞았다. 만나기도 전에 애인이라도 된 것처럼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 건 딱 질색이었지만, 둘 다 마블 마니아라는 접점 하나만으로도 대화 소재가 끊이질 않았다. 첫 데이트는 자연스럽게 당시 흥행하던 〈데드풀〉을 보는 것으로 정해졌다. 약속 장소인 영화관에 다다르자 저 멀리 K의 실루엣이 보였다. 프사에서 봤던 그대로 수영 선수 출신다운 피지컬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아뿔싸. 처음엔 원근법 때문인지 알았다. 멀리 나를 향해 흔들던 그의 손은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이 다가가도 커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이 짧고 토실토실해 단풍잎을 연상시키는 ‘단풍손’의 소유자였다. 큰 덩치와는 달리 손만큼은 완전 애기였던 것이다. 상남자 같은 외모와 매칭이 안 되는 목소리 역시 치명적이었다. “안녕?” 중저음이 흘러나올 것 같은 입에서 모기 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날 본 영화에서는 내 심경을 대변하는 대사가 등장했다. “데이비드 베컴 목소리 들어봤어? 헬륨캔이랑 붕가붕가한 목소리야.” 애석하게도 헬륨캔 마신 목소리는 내 타입이 아니었고, 신기하게도 한순간에 그에 대한 호감이 사라졌다. 그때 라이언 레이놀즈의 베컴 드립만 아니었더라도 나는 그 남자랑 잘됐을까? - 나랑단풍보러가지않을래, 29세
잘나가던 썸, 뜨겁게 불타 오르던 사랑을 한순간에 식게 하는 건 의외로 작은 포인트 하나일지도 모른다. ‘와장창!’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진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