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반려동물은 종착지가 있는 여행의 동반자죠

반려동물 천만 시대, 함께 살던 동물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지는 펫로스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 역시 많은 시대다. 동물과 함께 나이 들며 사랑과 지혜를 쌓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사랑하고 덜 슬퍼할 수 있는 반려 생활의 조언을 구했다.

BYCOSMOPOLITAN2020.02.01
 

아인과 고양이 행동 진료 수의사 나응식

(터틀넥)코스, (재킷)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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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반려동물을 소개해주세요.
아인이는 9살, 중성화된 수컷 아메리칸 쇼트헤어입니다. 외모는 동안이고요. 좋아하는 것은 조용히 위로해주기, 싫어하는 것은 귀찮게 하기. 말해놓고 보니 저와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아인’이란 이름을 맘에 들어 하나요?
지금은 제가 제 이름 덕을 보고 있지만, 전엔 콤플렉스가 좀 있었어요. 그래선지 반려동물에게 조금은 ‘사람스러운’ 이름을 주고 싶더라고요. “아인” 하고 부르면 다행히 바로 쳐다보고 관심을 가져줘요. 제 이름은 중간에 바꾸고 싶었지만 고양이 이름을 바꿀 생각은 한 적이 없네요.


첫 만남은 어땠나요?
2011년에 우리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 중 하나였어요. 유독 눈망울이 촉촉해 같이 지낸 지 9년 정도 됐네요. 제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병원이기 때문에 아인이는 곁에 오래 둘 수 있는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병원에서 시작한 아인이와의 인연은 병원에서 마무리될 것 같네요.


오늘 촬영할 때 아인이가 스트레스 받을까 봐 동작 하나하나 조심스러워했잖아요? 고양이는 낯선 환경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반려인들이 촬영을 기피한다고 들었어요.
반려인으로서 반려동물과 추억을 쌓고 싶은 맘은 다들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줘야 하죠. 오늘 오기 전에 아인이한테 신경안정제를 먹였어요. 사람으로 치면 긴장되는 일이 있을 때 우황청심환을 먹는 것과 같아요. 고양이가 병원에 오는 걸 불편해하는 경우에도 신경안정제를 처방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 살며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뭔가요?
아인이를 비롯해 지금 병원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들이 제 삶을 많이 변화시켰죠.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많은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이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크지도 않았을 거고, 아마 ‘고양이 행동 진료 수의사’가 되지도 않았겠죠.


유튜브와 방송에, 집필 활동까지 ‘냥신’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루밍 도구 ‘쓰담이’를 만들기도 했고요. 최근엔 프리메라와 반려동물 샴푸 ‘마일드 카밍 리퀴드 샴푸 포 독’과 ‘마일드 카밍 버블 샴푸 포 캣’을 개발했어요.연구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던데,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생각해보니 반려동물 샴푸 중엔 국민 샴푸라 불리는 제품이 없더라고요. 친환경과 순한 성분으로 유명한 프리메라에서 반려동물을 위한 제품을 만든다면 사람보다 피부가 훨씬 예민한 반려동물에게도 안전한 제품이 나올 거란 믿음이 있었죠. 반려동물의 목욕 과정에서 정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저자극, 저스트레스인데요, 두 제품 모두 반려동물의 피부를 위해 pH를 중성에 맞추고 개와 고양이의 특성을 각각 반영했어요.


개와 고양이의 샴푸는 어떻게 달라야 하죠?
개는 후각이 발달했잖아요. ‘마일드 카밍 리퀴드 샴푸 포 독’은 은은한 시트러스 허벌 향으로 아로마테라피 효과를 더했어요. 부드러운 리퀴드 제형이라 다양한 크기의 반려견이 편하게 쓸 수 있고요.  반면 고양이는 낯선 체취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거든요. ‘마일드 카밍 버블 샴푸 포 캣’은 그런 고양이의 특성을 반영해 향을 없앴어요. 목욕 도중에 한 손으로 샴푸를 짜도 풍성한 거품이 나서 바로 쓸 수 있게 버블 펌핑 용기에 담았고요.


아인이가 누구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안다고 느낄 때가 있다면요?
아인이는 슬픔이란 감정, 아니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것 같아요.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제가 진료를 할 때 테이블 밑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데요, 진료실에서는 늘 기쁘고 희망찬 이야기만 오가는 게 아니잖아요? 예후가 좋지 않아 보호자와 제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죠. 그럴 때 제가 할 수 없는 위로를 보호자에게 해줘요. 눈물을 흘리는 보호자 곁에 조용히 살을 맞대고 있어준다든가 가슴팍으로 파고들거나 꾹꾹이를 하더라고요.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한 적도 있나요?
대학에 입학하면서 입양한 노마라는 요크셔테리어, 17년 전쯤 입양했던 페르시안친칠라 고양이 타미를 강아지별, 고양이별로 보냈습니다. 펫로스 증후군에 빠지게 되면 진료 수의사로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을 최대한 억누르고 숨겼던 기억이 있어요. 아이들을 보내면서 생명의 죽음은 불가피하다 느꼈죠. 언젠가 이 아이들도 고양이별로 떠날 것이고, 그때를 최대한 덤덤하게 준비하려고 합니다.


수의사로서 반려동물의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때 보호자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요?
후회할 수밖에 없지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아껴주시라고 말씀드려요. 그리고 절대 미안해하지 마시라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할 시간에 현재에 집중하시라고 해요.


수의사와 반려인 사이에서 역할 갈등도 있을 것 같은데요.
두 역할의 균형을 맞추기 힘들 때가 있죠. 그래서 때론 더 이상 ‘묘연(고양이와의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 곁에 있는 아인, 아미, 아톰, 포뇨를 떠나보내고 나면 한동안 입양을 안 하지 싶어요.


나이 든 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반려동물은 종착지가 있는 여행의 동반자라고 생각해요. 물론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땐 그 끝을 생각하지 못하죠. 때때로 수의사는 보호자가 고양이를 무지개다리 앞까지 바래다줄 때 가이드를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요. 전 “사람이 죽으면 미리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라는 말을 정말 좋아해요.


아인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묘비에 뭐라고 적고 싶나요?
전 주변에 건강을 기원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와의 기억보단 “다음 생은 건강하고 평온하게 지내길 바라”라고 적고 싶어요.


반려 생활의 모토가 있다면요?
No Cat, No Life! 고양이가 없었다면 제 삶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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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김가혜
  • photo 김태은
  • hair&makeup 이소연
  • stylist 윤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