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나이 든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

반려동물 천만 시대, 함께 살던 동물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지는 펫로스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 역시 많은 시대다. 동물과 함께 나이 들며 사랑과 지혜를 쌓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사랑하고 덜 슬퍼할 수 있는 반려 생활의 조언을 구했다.

BYCOSMOPOLITAN2020.01.29
 

풋코와〈올드독〉작가 정우열

폭스테리어 풋코는 17살

폭스테리어 풋코는 17살

당신의 반려동물을 소개해주세요.
이름은 풋코, 나이는 3월이면 만으로 17살이 되는, 폭스테리어종의 개입니다. 치아바타 빵 모양의 큰 머리, 번쩍 솟은 커다란 귀, 털 몽둥이 같은 4개의 긴 다리, 동그란 몸통, (입양하기 전) 이미 짧게 잘린 토끼 꼬리 등 좀 이상하게 생겼어요. 좋아하는 건 빵, 채소, 고기, 산책 도중 카페 들러서 간식 얻어 먹기, 바닷가 뛰어다니기. 싫어하는 건 저의 원고 마감일, 털 빗기, 귀 청소, 발톱 깎기입니다.


‘풋코’라는 이름을 맘에 들어 하나요?
제가 준 이름을 맘에 들어 하는지 아닌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아마도 자신은 원래 풋코인 걸로 여기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원래 자기 몸이 털북숭이인 것처럼요. 하지만 풋코란 이름을 지은 건 제 평생 가장 큰 업적이라 믿고 있어요. 망고, 멸치, 미나리 등이 후보였는데 그중 하나를 택했다면…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함께 살며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뭐였나요?
개와 함께 사는 삶은 제 인생 전체를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어요. 개에 대해 알게 되면서 다른 동물과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고기를 먹지 않게 됐으며, 환경문제의 심각함을 깨닫게 됐으니까요. 다른 존재와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지혜도 개로부터 배웠고요. 평생 서울에 살던 저는 개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하다가 제주도에 내려오게 됐고, 올해로 8년째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살고 있어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절망했던 순간을 꼽는다면요?
개로부터 행복을 얻는 방법은 매우 쉽기 때문에 행복했던 순간 역시 매우 빈번해요. 개를 바닷가나 넓은 들판에 데려가서 실컷 뛰게 해주고 맛있는 간식을 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죠. 내가 하고자 하면 언제라도 이 존재에게 커다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확실한 사실, 그것이 절 행복하게 해요. 절망했던 순간은 풋코가 아직 혈기왕성했을 때, 산책 도중 줄을 놓쳤어요. 총알처럼 달려가서 금세 보이지 않게 됐는데 전 상대적으로 느려터진 뜀박질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채 달리며 마음을 다잡았죠. ‘이 골목을 벗어나면 차도 한복판에 풋코의 처참한 주검이 놓여 있을 거야. 방금 전까지 사랑스럽던 털뭉치 사이로 검붉은 덩어리들이 삐져나와 있겠지. 각오해야 해’ 하면서요. 그런 순간이 지금까지 세 번쯤 있었습니다만, 그때마다 풋코는 무사히 무단 횡단을 해서 저 멀리 산책로를 달리고 있었죠.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풋코 엄마 소리를 잃은 지 거의 6년이 됐네요. 콧속과 뇌에 종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병을 발견하고 채 두 달을 못 넘겼어요. 소리가 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모습, 주삿바늘을 주렁주렁 단 채 제 품에서 떠나가던 모습을 떠올리면 여전히 극심한 슬픔을 느껴요. 풋코가 제 곁을 떠나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만, 소리를 떠나보낼 때보다는 어른스럽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리에겐 너무나 미안한 것이 많지만, 풋코에게는 그럴 것 같지 않아요. 제가 줄 수 있는 걸 다 줬거든요.
 
나이 든 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나이 든 반려동물은 털이 북실북실한 일기장 같은 거 아닌가 싶어요. 돌이켜보면 풋코가 어렸을 땐 저도 꽤 젊었고,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같이 통과해왔어요. 사람은 부모 자식, 부부 사이라 해도 대부분 하루 중 절반가량의 시간을 떨어져 보내잖아요? 그런데 제 개는 17년 동안 거의 24시간 저와 딱 붙어 있었어요. 그걸 사람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그 두 배의 세월에 가깝겠네요. 나이 든 반려동물은 결국 제 삶 그 자체인 거죠.
 
이별을 예감하거나 준비할 때가 있나요?
개가 늙어가고 있다는 게 명징하게 드러날 때 마음을 다잡게 되죠. 백내장이 진행돼 옷걸이를 저로 착각할 때, 보도블록의 조그만 턱을 헛디뎌 주둥이를 찧는 바람에 피투성이가 될 때….


마지막 순간, 어떻게 보내주고 싶나요?
이별할 때 풋코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면 마지막 순간에 바닷가를 달리다가 행복한 마음으로 캑 하고 떠나가길 바라죠. 풋코를 보내고 나면 남은 생은 여행작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개들과 못 해본 것 중 제일 아쉬운 건 넓은 세상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건데, 저 혼자라도 다니면서 개들을 떠올리고 개들에게 말을 걸 거예요.
 
혹시 묘비에 들어갈 문구를 생각해봤나요?
웹툰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평생 떵떵거리거나 징징거리며 살다 간 개’였어요.
 
반려 생활의 모토가 있다면요?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기왕 태어났으니, 나와 다른 존재를 사랑하며 살아가보자. 그것만이 삶을 조금 의미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