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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사랑 고백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feat.신종사기)

어느 날 갑자기 잘생긴 외국인이 SNS로 당신에게 호감을 고백한 적이 있나? 데이팅 앱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교포 남자 친구가 명품 선물을 ‘국제 특송’으로 부쳤다는 사진을 보낸다면 믿을 수 있는가? 누군가는 ‘낭만적’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로맨틱 서프라이즈는 사실 ‘사랑’을 등에 업은 신종 사기 수법이다. 코스모가 ‘로맨스 스캠’의 세계를 파헤쳤다.

BYCOSMOPOLITAN2020.01.21
 
지난해 미국에서는 2만여 명의 사람이 자신의 ‘연인’에게 총 1억4천3백만 달러(한화 약 1천7백1억7천만원)를 송금했다. 이 수치는 ‘연인 간 금전 거래 액수’ 따위를 조사하는 통계 결과가 아니다. 놀랍게도 ‘로맨스 스캠’ 총 피해 액수다. 미국연방거래위원회는 2018년에만 2만1천여 명의 피해자가 개인당 평균 2천6백 달러의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로맨스 스캠’이 뭐냐고? 사전에선 이 신조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SNS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불특정 다수의 이성에게 접근해 상대와 지속적인 친분을 쌓은 뒤 자신의 사업, 집안일, 결혼 따위의 명분을 내세워 상대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기, 또는 그런 수법.” 우리나라에선 한 아이돌 출신 BJ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10억원을 받은 사실이 폭로되면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이 뻔한 속임수에 누가 넘어가냐고? BJ도, 인플루언서도 아니라 괜찮다고? 당하고 싶어도 통장 잔고가 없다고? 내 얘기가 아니라는 속단은 이르다. 여기, 그런 생각으로 안심하다 뒤통수 맞은 이들이 코스모에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그 남자의 거짓말 

회사원 김혜원(가명, 34세) 씨의 사연은 이렇다. “남자 친구를 데이팅 앱에서 만났어요. 샌프란시스코의 IT 기업에서 일하는 개발자인데, 자신의 회사, 직업, 출신 학교, SNS 등을 프로필에 명확하게 밝혀 의심을 안 했죠.” 사귀기로 한 지 근 반년 동안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어머니께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2백만원 정도 부족하니 빌려달라는 거예요. 사실 그 정도는 빌려주기도, 갚기에도 부담 없는 금액이잖아요. 그리고 정확히 한 달 후에 돈을 갚았어요.” 사달은 이후부터다. 첫 ‘금전 거래’에서 보여준 남자 친구의 믿음직한 태도를 신뢰하기 시작한 그녀는 그가 차를 바꿀 때, 이사할 때, 여행할 때마다 현금, 신용카드 등을 의심 없이 빌려줬다. 그렇게 쌓인 ‘빚’이 2천만원이 됐을 때, 김혜원 씨는 그제야 상대의 정체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알아낸 충격적인 사실. “이혼한 백수더라고요. 시간 뺏기는 게 싫어 안 한다던 SNS에 딸들이랑 찍은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었어요. 왜 한 번도 그 사람 이름을 검색해보지 않았을까요? 제가 캡처한 사진을 보내며 추궁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없는 번호’가 된 그의 휴대폰 번호와 이전 집 주소 말고, 그녀가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는 전무한 상태. 김혜원 씨는 아직도 그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확률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실 이 사례는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 스토리보다 좀 더 진화한 수법이다. 가장 빈번한 레퍼토리는 이렇다. 준수한 외모의 외국인이 SNS,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 외국인 친구 사귀기 앱 등을 통해 ‘타깃’에게 메시지를 보내 호감을 나타낸다. 가벼운 주제로 시작한 대화가 ‘썸’의 무드를 타면, 가해자는 상대의 관심을 끌 만한 일상이나 사진 등(물론 전부 다 가짜다)을 공유하며 자신이 해외에 파견된 엔지니어, 군인, 공무원 등 요직으로 일하는 신분임을 밝힌다. 지속적인 ‘가짜’ 정보 공유로 둘의 관계에 어느 정도 신뢰가 형성되면 “당신을 만나러 가다가 공항에 구금됐다”, “해외 근무지라 계좌가 묶여 있다”, “당신에게 줄 선물을 국제 택배로 보내겠다”와 같은 핑계를 들먹이며 금전 혹은 개인 정보나 금융 정보 등을 급박하게 요청한다. 예전엔 이 사기꾼들의 신분이 ‘나이지리아’나 ‘조지아’에서 일하는 미군에 국한됐다면 지금은 영국에 파견된 호주 엔지니어, 프랑스에서 일하는 캐나다 출신 개발자 등 다양한 직업층으로 확장됐다. 지난 11월, 미국연방수사국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1백10만 달러를 뜯어낸 로맨스 스캠 용의자 10명을 기소하고 7명을 체포했다는 뉴스를 발표하며 “로맨스 사기극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피싱

도대체 누가 이 뻔한 수법에 걸려드냐고? 당한 이들도 처음엔 당신과 똑같은 의심을 품었다. 디자이너 박지연(가명, 29세) 씨도 ‘그럴 뻔’했다고 고백했다.  
“해외여행 중 같은 장소에 ‘위치 태그’를 한 외국인 남자와 우연히 인스타그램 친구가 됐어요. 여행 얘기로 자연스럽게 친해졌죠. 평소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편인데, 그의 SNS엔 자연스러운 일상 사진이 가득해 의심을 거뒀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신의 생일이라며 아이튠즈 기프트 카드를 선물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좀 뜨악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큰 액수가 아니라 친구한테 선물하는 셈 치고 보내려고 했는데, 친구가 제 얘길 듣더니 로맨스 스캠이라며 경고하는 거예요. ‘설마…’ 하고 그의 이름, 직업, 사진 등을 구글에서 검색했는데 같은 사진으로 꾸민 SNS 계정이 여러 개 뜨더라고요.”
이 신종 사기가 나날이 진화하는 이유는 자신이 당한 일이 신고나 고소를 해야 할 ‘범죄’가 아니라 ‘불행한 연애사’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 메이트윈 법률사무소의 김민호 변호사는 로맨스 스캠의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로맨스 스캠이 문제로 떠오르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받았던 질문이 있습니다. ‘연인이 돈이 급하다고 해서 1백만원 정도 빌려줬는데 헤어졌다. 돌려받을 수 있나?’ 이런 경우 현실적으로 돈을 돌려받을 방법은 없습니다. 연인 사이에서 ‘차용증’을 작성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건다고 해도 그 돈이 ‘대여금’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면 소송에서 패소하게 됩니다. 형사 고소도 마찬가지예요. 수사기관에 사기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무혐의 처분을 내려요. 로맨스 스캠은 가해자가 상대방의 감정을 이용해 법적인 책임감을 회피할 수 있는, 매우 지능화된 범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 간의 금전 거래, 개인 정보 유출 등에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그렇다면 로맨스 스캠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있을까? 김민호 변호사는 형법상 사기(범죄)로 직결될 수 있는 예시를 들었다. “먼저 상대가 금전 편취를 목적으로 자신을 속인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결혼 혹은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돈을 빌려달라고 하거나, 실제로는 다른 목적(유흥 비용, 여행 비용 등)으로 사용할 용도면서 거짓말(어머니 수술비, 사업 자금 등)을 내세워 피해자로부터 돈을 교부받은 경우엔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또 개인 정보, 신용 정보를 유출했을 경우엔 피해자의 정보가 다른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즉시 경찰에 신고하길 권합니다.”
피해 규모가 크든 작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최대한 신속히 ‘구제’받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민호 변호사는 피해 사실을 인지한 즉시 상대방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사기죄로 고소해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배상받을 수 있기 때문. “형사 고소장 또는 민사 소장을 작성할 때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요즘엔 지원 정책이 잘 마련돼 있어 혼자서 작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참고로 서울 거주자들은 ‘서울시 마을변호사 제도’를 통해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의 개인 정보나 금융 정보 유출로 경찰에 신고할 땐 ‘112’ 대신 자신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경찰서(만약 주소지가 강남구 역삼동이면 서울 강남경찰서)를 검색한 후 해당 경찰서의 ‘지능범죄수사팀’으로 바로 연락해 신고하는 것도 요령이다.
당신에게 접근한 ‘의심 가는 이’가 외국인 혹은 외국인을 사칭하는 사람으로 추정된다면 상대방의 SNS 아이디 또는 이메일 주소를 구글에서 검색해볼 것. 유사 피해, 비슷한 사기 전력이 의외로 쉽게 검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는 상대방의 전화번호나 상대방이 제공한 계좌번호가 있는 경우, 경찰청 사이버안전지킴이에서 인터넷 사기가 의심되는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조회해볼 수 있다. 돈을 송금하기 전에 은행 직원과 상담해보는 것도 한 방법. 김민호 변호사는 가장 좋은 대처는 ‘예방’이라고 강조한다.
“요즘 로맨스 스캠 범죄 수법은 굉장히 교묘하고 지능적이어서 대놓고 ‘돈’을 빌려달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호의, 사랑과 같은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해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보내도록 유도하죠. 그래서 금전이든 정보든, 특히 상대를 직접 만난 적이 없거나 만났더라도 신원이 명확하지 않다면 가급적 제공 자체를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