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스캠’이 뭐냐고? 사전에선 이 신조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SNS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불특정 다수의 이성에게 접근해 상대와 지속적인 친분을 쌓은 뒤 자신의 사업, 집안일, 결혼 따위의 명분을 내세워 상대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기, 또는 그런 수법.” 우리나라에선 한 아이돌 출신 BJ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10억원을 받은 사실이 폭로되면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이 뻔한 속임수에 누가 넘어가냐고? BJ도, 인플루언서도 아니라 괜찮다고? 당하고 싶어도 통장 잔고가 없다고? 내 얘기가 아니라는 속단은 이르다. 여기, 그런 생각으로 안심하다 뒤통수 맞은 이들이 코스모에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그 남자의 거짓말
」‘사랑’이라는 이름의 피싱
」“해외여행 중 같은 장소에 ‘위치 태그’를 한 외국인 남자와 우연히 인스타그램 친구가 됐어요. 여행 얘기로 자연스럽게 친해졌죠. 평소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편인데, 그의 SNS엔 자연스러운 일상 사진이 가득해 의심을 거뒀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신의 생일이라며 아이튠즈 기프트 카드를 선물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좀 뜨악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큰 액수가 아니라 친구한테 선물하는 셈 치고 보내려고 했는데, 친구가 제 얘길 듣더니 로맨스 스캠이라며 경고하는 거예요. ‘설마…’ 하고 그의 이름, 직업, 사진 등을 구글에서 검색했는데 같은 사진으로 꾸민 SNS 계정이 여러 개 뜨더라고요.”
이 신종 사기가 나날이 진화하는 이유는 자신이 당한 일이 신고나 고소를 해야 할 ‘범죄’가 아니라 ‘불행한 연애사’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 메이트윈 법률사무소의 김민호 변호사는 로맨스 스캠의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로맨스 스캠이 문제로 떠오르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받았던 질문이 있습니다. ‘연인이 돈이 급하다고 해서 1백만원 정도 빌려줬는데 헤어졌다. 돌려받을 수 있나?’ 이런 경우 현실적으로 돈을 돌려받을 방법은 없습니다. 연인 사이에서 ‘차용증’을 작성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건다고 해도 그 돈이 ‘대여금’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면 소송에서 패소하게 됩니다. 형사 고소도 마찬가지예요. 수사기관에 사기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면 무혐의 처분을 내려요. 로맨스 스캠은 가해자가 상대방의 감정을 이용해 법적인 책임감을 회피할 수 있는, 매우 지능화된 범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 간의 금전 거래, 개인 정보 유출 등에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피해 규모가 크든 작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최대한 신속히 ‘구제’받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민호 변호사는 피해 사실을 인지한 즉시 상대방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사기죄로 고소해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배상받을 수 있기 때문. “형사 고소장 또는 민사 소장을 작성할 때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요즘엔 지원 정책이 잘 마련돼 있어 혼자서 작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참고로 서울 거주자들은 ‘서울시 마을변호사 제도’를 통해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의 개인 정보나 금융 정보 유출로 경찰에 신고할 땐 ‘112’ 대신 자신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경찰서(만약 주소지가 강남구 역삼동이면 서울 강남경찰서)를 검색한 후 해당 경찰서의 ‘지능범죄수사팀’으로 바로 연락해 신고하는 것도 요령이다.
당신에게 접근한 ‘의심 가는 이’가 외국인 혹은 외국인을 사칭하는 사람으로 추정된다면 상대방의 SNS 아이디 또는 이메일 주소를 구글에서 검색해볼 것. 유사 피해, 비슷한 사기 전력이 의외로 쉽게 검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는 상대방의 전화번호나 상대방이 제공한 계좌번호가 있는 경우, 경찰청 사이버안전지킴이에서 인터넷 사기가 의심되는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조회해볼 수 있다. 돈을 송금하기 전에 은행 직원과 상담해보는 것도 한 방법. 김민호 변호사는 가장 좋은 대처는 ‘예방’이라고 강조한다.
“요즘 로맨스 스캠 범죄 수법은 굉장히 교묘하고 지능적이어서 대놓고 ‘돈’을 빌려달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호의, 사랑과 같은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해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보내도록 유도하죠. 그래서 금전이든 정보든, 특히 상대를 직접 만난 적이 없거나 만났더라도 신원이 명확하지 않다면 가급적 제공 자체를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