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중반, 결혼해 아이가 있는 친구가 싱글인 친구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된 지금, 나는 요즘 세태가 조금 당황스럽다. 한동안 즐겨 찾던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더 이상 연애 고민 상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연인과 있었던 에피소드, 자잘한 고민 사연에 사람들이 저마다 답을 달아주곤 했던 커뮤니티였다.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 연애 관련한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이곳에서 더 이상 ‘혐애’, ‘혐혼’을 불러일으키는 사연을 전시하지 말라는 윽박과 함께. 혐애와 혐혼은 여성 중심 사이트에서 만들어진 말로, 연애와 결혼을 혐오한다는 것을 뜻한다. 결혼과 연애가 ‘혐’이라는 접두사를 붙여야 하는 단어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한남’이라는 걸 알면서도 연애를 시작하고, 그들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힘들다 징징대지 말라는 의미기도 하다. 즉 가부장제라는 제도에 스스로 선택해 들어가는 건 여성해방을 지연시키는 행동이라는 논리다.
미투 운동으로 시작된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반가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나의 의식을 확장하는 데도 매우 도움이 됐다. 매달 여성 연예인의 화보를 찍으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나 역시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어떻게 멋있게 담아야 할지, 행여 페미니즘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닐지 경계하며 자기 검열을 하려 노력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 모든 흐름을 떠나, 나는 연애를 하고 싶다. 갑자기 웬 연애 얘기냐고? 페미니즘과 연애를 결부시키는 것이 영 불편하기 때문이다. 결혼도 글쎄…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기꺼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근데 그게 뭐가 그리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까? 왜 이런 생각을 하면 싱글 여성들에게 배신자로 비치는 것일까? 이런 말을 하면 왜 화려한 싱글 여성임을 포기한 안티페미니스트로 치부되는 걸까?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왜 ‘없어’ 보이는, 시대를 역행하는 욕망이 되는 것일까?

과연 연애와 페미니즘, 결혼과 페미니즘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결혼이라는 제도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걸 빼고 연애만 생각해보자.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그와의 괜찮은 미래를 꿈꾸고 싶다. 몇 번의 이별로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혼자 보는 영화도, 혼자 떠나는 여행도 그리 즐겁지 않다. 친구도 좋지만 이왕이면 몸과 마음을 나눈 연인과 함께하고 싶다. 결국 내가 완벽하게 자립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조금 굴욕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그게 나인걸.
개인이 독립했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문구에서 빌리고자 한다. “다수의 절대적 확신은 여론의 확신과 같다. 이 여론을 빌려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여론에 반해 자유를 구속하는 것만큼이나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자유롭다는 건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싱글로 살아야만 온전한 것은 아니다.
결론은 이렇다. 연애든 결혼이든 그게 개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 선택을 존중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할 연인을 원하고, 결혼할 누군가를 찾는다고 해서 절대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결혼과 연애는 절대 시대착오적인 산물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껏 말하자. 연애(결혼)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