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그런가요? 하하. 저는 외강내유도, 외유내강도 아닌 것 같아요. 참 신기해요. 어떤 걸 보여드리느냐에 따라 달리 저를 보시는 것 같거든요. 매거진 커버 모델이 됐다는 건 그달에 뭔가 책임지고 또 표현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의미에서 좋은 거죠.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그게 영원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따뜻한 나라에서 화보 촬영을 했죠. 평소 여행 스타일은 어때요?
한국에 있을 때는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고, 시간을 제가 컨트롤할 수 없잖아요. 여행 가서는 한 동네에 머물며 현지인처럼 시간을 보내요. 보통은 친구와 가거나 여행지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해요.
머리가 많이 짧아졌어요.
사실은 〈보건교사 안은영〉(이하 〈안은영〉) 촬영을 시작하기 앞서 ‘안은영’이란 인물의 이미지를 잡을 때 쇼트커트로 가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바로 다음 작품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단발머리로 촬영했는데, 영화 〈82년생 김지영〉 홍보를 하게 된 거죠. ‘안은영’의 이미지는 여러 사람이 굉장히 정성스럽게 만든 거라 미리 노출되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사람들이 〈안은영〉을 보기 전에 정유미의 단발머리에 친숙해질까 봐 영화 홍보할 때 확 잘라버렸죠.
영화 〈82년생 김지영〉 이후 사람들이 차기작에 대해 관심이 높았어요.
〈82년생 김지영〉보다 〈안은영〉 출연이 먼저 결정됐어요. 드라마 〈라이브〉가 끝나고 제안을 받았거든요. 그 후에 〈82년생 김지영〉이 들어왔는데 촬영 시기가 달라 둘 다 할 수 있었죠. 사실 〈안은영〉은 이경미 감독님이 연출을 맡으셨기 때문에 저도 출연을 결정한 거였어요. 어떤 감독님과 함께하느냐가 중요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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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결의 캐릭터예요. 〈안은영〉의 경우엔 어떤 하나에 꽂혀 선택했다면, 〈82년생 김지영〉은 시기적으로 해볼 법한 이야기라 생각했어요. 〈안은영〉은 어떤 대사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중요한 대사는 아니에요. 나중에 드라마가 공개되고 나서도 못 찾을 수 있을 만큼 아주 단순한 이유로 꽂힌 대사죠. 그런데 저는 그 말이 너무너무 하고 싶었어요.
욕은 아니죠?
욕이에요. 하하. 출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당시에 그냥 욕이 너무 하고 싶은데, 그 대사를 보자마자 너무 후련했어요. 그래서 만약 이 작품이 제작된다면 나는 이 대사를 정말 성심성의껏 하리라 생각했죠. 그때 화가 많았나 봐요. 하하.
그동안 출연한 작품 대사 중에 살면서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요?
〈로맨스가 필요해〉는 워낙 명대사가 많으니까 생각나요. 헷갈리니까 좀 찾아볼게요. “누군가를 오해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얼마큼의 거리가 존재하는 걸까?”, “질투는 유치하다고 생각 안 해! 질투는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고백이야”, “인생에도 신호등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멈춰, 위험해, 안전해, 조심해. 누군가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가 있네요.
〈82년생 김지영〉 개봉 이후 잡지 인터뷰는 처음이죠? 어떤 영화에 출연하거나 본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규정되는 경우가 있어요. 지난해 〈82년생 김지영〉은 그런 영화 중 하나였고요.
지금 시기에 보여줄 수 있고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세상엔 다양한 영화가 있지만 어떤 배우가 선택을 해야만 볼 수 있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공유라는 배우가 〈82년생 김지영〉을 선택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은 게 사실이고,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보면 배우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많은 나라에서 번역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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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쩌겠어요. 제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누가 맞다 틀리다 할 수도 없고, 많은 사람이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인 양 말을 만들어내 답답하지만 제 생활이 달라진 건 없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그걸 잘 해내는 거잖아요. 저도 사람들이 할퀴면 아파요. 그래서 혼자 울기도 하지만, 잘 견디는 편이긴 해요.
〈안은영〉은 어떤 작품이에요?
촬영하면서도 ‘도대체 이 작품이 어떻게 나오고, 시청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어요. 6부작인데 한 회 한 회 어떤 그림과 이야기가 나올지 설레기도 하고요. CG가 워낙 많아 지금 마무리 작업 중인데 기대돼요. 흥행 결과보다는 시청자로서 기대되는 거죠. 이제 막 데뷔한 신인 배우도 많이 출연하는데, 그 친구들이랑 작업하면서 정말 좋았거든요. 그들이 어떻게 보여질지도 궁금해요.
함께 출연한 배우 남주혁을 비롯해 어린 후배들과 호흡을 맞췄네요.
촬영장에서 어린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서 물으면 제가 아는 한 많이 얘기해줬어요. 사실 처음엔 (남)주혁이랑 제가 나이차가 좀 나는데 같은 선생님 역이라는 이유로 동질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초반엔 촬영장 가면 주혁이부터 찾곤 했죠. 하지만 나중에 다들 친해지면서 편해졌어요. 요즘은 음악 스타일도 많이 변했잖아요. 그런 것처럼 배우들의 연기도 이전과 많이 달라져 신인 배우들을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새로운 연기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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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저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저 자신을 지켜야 하는 건 맞지만 시간에 따라 평가가 다양해지고,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잖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연기할 때 뭐가 부족하고, 무엇을 못하는진 알아요. 그 간극을 좁히는 게 제 몫인 것 같아요.
외부 자극에도 최소한의 영향을 받으며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뭐예요?
그럴 때마다 ‘내 주변의 뭐가 달라졌을까?’란 생각을 해요. 그런데 달라진 게 없어요. 사실 엄청 멀리에서 오는 파도 같은 거예요. 내 주변에서 요동치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공격하는 건 의식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거든요. 여기에 너무 영향을 받으면 억울할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아요. 다른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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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어떻게 시간을 보내요?
보기와 달리 운동을 안 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는 편이에요. 하하. 언제부턴가 쉬는 날에도 계획을 세워 움직이고 있어요. 연기를 잘하고 싶은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고갈되고, 가지고 있는 무기도 많이 써먹은 것 같아요. 총을 장전하려면 평소에 총알을 많이 모아놔야 하잖아요. 그래서 개인적인 시간에 다양하게 부딪히는 것도 중요하고,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20년이 된 지 며칠 안 됐어요. 새해나 나이를 먹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하는 편이에요?
솔직히 나이 드는 게 참 싫은데, 왠지 2020이라는 숫자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2019, 2018은 싫었는데, 2020은 귀엽고 동글동글한 느낌이 들어요.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 설레요.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겠지만 주저하지 않으려고요.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때 하려고 해요. 설레요, 2020!
*지면 화보컷의 의상 가격에 오류가 있어 수정했습니다. 지면에 표기된 가격과 달라진 부분 참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