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온라인 잡지 〈더 컷〉에 따르면 터틀넥 스웨터가 가장 큰 사기 행각의 아이템으로 활용됐다. 과연 누구 때문일까? 한때는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실리콘밸리의 사기꾼이 된 엘리자베스 홈스(그녀는 블랙 터틀넥 스웨터를 150피스 이상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가 바로 그 주인공. 엘리자베스 홈스는 혈액 검사로 260여 가지 질병을 알 수 있다는 진단 키트를 발명했고, 이 때문에 그녀의 회사였던 테라노스는 한때 90억 달러(약 10조 1340억원)의 기업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진단 키트가 거짓으로 판명난 후 엘리자베스 홈스는 생명공학계 최고의 사기꾼으로 추락했다. 안타깝게도 블랙 터틀넥 스웨터를 착용한 사기꾼은 엘리자베스 홈스뿐만이 아니다. 독일에서 온 상속녀라고 주장하며 뉴욕 사교계를 누볐던 러시아 출신 사기꾼 안나 소로킨 역시 법정에서 터틀넥 드레스를 입었다(심지어 그녀는 법정에 설 때마다 런웨이라도 되는 양 다양한 룩을 선보여 논란을 부추겼다). 세금 사기와 허위 진술로 유죄 판결을 받은 트럼프의 전직 변호사 마이클 코언 역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블랙 터틀넥을 선택했다. 영국 패션 심리학자인 케이트 나이팅게일은 검은 터틀넥에 대해 “양방향에 모두 작용하는 속임수가 있는 전투복같이 보인다”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이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사람을 보면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느끼게 되지만,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보호받고, 때로는 보다 강렬하고 침착한 기분을 느낀다”고. 몇몇 전문가들은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턱까지 옷으로 감싸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1800년경에 발명된 터틀넥은 원래 노동자들이 보온을 위해 입는 기능적인 의상이었다. 그러니 이러한 인물들 때문에 블랙 터틀넥 스웨터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거나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블랙 터틀넥 스웨터를 입는 사람들이 모두 나쁘거나 잘못을 저지른 것만은 아니니까. 사실 블랙 터틀넥 스웨터는 절제된 표현 방식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순수한 색이며, 디자인이 심플할 뿐 아니라 패턴도 없기 때문에 유행도 없다. 그렇기에 지금도 앞으로도 검은 터틀넥 스웨터는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다채로운 이미지로 대변될 것이다. 마치 유니폼처럼 말이다.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1950년대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터틀넥을 입어 섹시함을 드러냈다. 보디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타이트한 터틀넥은 시선을 가슴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작가로 유명한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같은 페미니스트들이 스트레이트 커트 헤어에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주먹을 불끈 쥐며 연설을 한 뒤로 보헤미안들의 아이템이 됐고, 많은 철학자·예술가·지식인이 터틀넥 스웨터를 입었다. 덕분에 터틀넥 스웨터는 1970년대에 ‘많은 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상징’이 됐다. 또한 오드리 헵번이 영화 〈화니 페이스〉에서 자기만의 터틀넥 스타일(블랙 사브리나 팬츠와 로퍼를 매치했다)을 선보이며 “나는 다르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터틀넥 스웨터는 점점 클래식 아이템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 터틀넥 스웨터는 겨울이면 당연하게 떠오르는 베이식한 아이템이다. 터틀넥 스웨터는 우리 몸의 실루엣을 부드럽게 드러내면서 따뜻하고 편안할 뿐 아니라 모든 아이템과 잘 어우러진다. 무엇을 입어야 할지 모르고, 그냥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블랙 터틀넥 스웨터만 입으면 시크함을 장착할 수 있다. 몇십 년 동안 블랙 터틀넥 스웨터만 입었던 스티브 잡스처럼 말이다(그는 본인을 꾸미는 데 드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터틀넥 스웨터를 선택했지만 이는 그의 상징이 됐다). 터틀넥 스웨터에 대한 많은 서치가 없어도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일할 때 옷깃을 턱 위로 한껏 끌어 올리면 이상하게 일이 더 잘되고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른다는 사실을 말이다(스티브 잡스처럼!). 또한 터틀넥 스웨터를 입으면 마치 얇은 갑옷을 입은 듯 더욱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도 다양하게 스타일링된 터틀넥 스웨터가 목격됐다. 막스마라는 비즈니스 룩으로 손색없는 터틀넥 룩을 선보였고, 알렉산더 왕은 터틀넥에 쇼츠와 레오파드 코트를 매치해 힙스터 스타일을 연출했다. 셀린느는 스팽클 터틀넥을 슈트에 매치했고, 빅토리아 베컴은 컬러 매치가 돋보이는 터틀넥 룩을 선보였다. 터틀넥을 오피스 룩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끌로에나 리차드 퀸 컬렉션처럼 드레스에 레이어드해 스타일링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하나만으로도 빛나지만 레이어드하면 더욱 감각적인 스타일링이 되는 터틀넥 스웨터. 이만하면 당신이 이번 시즌 터틀넥 스웨터를 눈여겨볼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