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감독은 다 계획이 있구나~
봉준호의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는 입봉작. 아파트 단지 안에서 벌어지는 강아지 연쇄 실종 사건과 이를 추적하는 동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슬슬 입소문을 타며 봉준호 감독의 팬층이 형성되기 시작한 작품. 평범한 아파트 동네가 이렇게 스릴 있게 그려질 줄이야. 이제는 봉준호만의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씁쓸한 블랙 코미디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배두나와 늘 감칠맛 나는 연기를 펼치는 변희봉, 김뢰하 등의 20년 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볼 이유는 충분하다.

플란다스의 개
2. 봉테일의 시작 〈살인의 추억〉(2003)
봉테일 전설의 시작을 알린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말했다. 한국 영화계가 2003년을 자꾸 되돌아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영화 때문이라고. (당시에는 미제였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스릴러 물이다. 별 생각 없이 봐도 단숨에 빠져드는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의 묘미는 한 컷 한 컷 숨겨진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에 있다. 단 1초의 장면이라도 대사, 인물, 소품을 허투루 쓰지 않고, 그것들이 다시 영화의 테마와 기가 막히게 연결되는 대가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영화. 특히 첫 장면인 롱테이크 씬은 시대 배경과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아주 날카로운 컷이다. 참고로 에디터는 이 장면을 같은 자리에서 20번도 넘게 돌려봤다. 결론은? 이 사람 천재.

살인의 추억
3. 진짜 괴물은 우리 현실이야 〈괴물〉(2006)
천만 관객 흥행으로 전 국민에게 봉준호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 한강에서 나타난 돌연변이 괴물에게 납치된 딸을 구하려 고군분투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칫하면 뻔한 괴수 영화가 될 수 있는 플롯이지만, 스토리 전개와 그에 담긴 메시지가 봉테일답게 기발하다. 킬링타임용 괴수 영화라 생각한 이들, 모두 반성하세요. 거듭해 볼수록 괴물이라는 존재 자체보다는 괴물의 출현에 빗댄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과 차가운 현실이 더욱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다. 감독 전공이 괜히 사회학인 게 아니었어.

괴물
4. 마더와 머더(murder)는 한 끗 차이 〈마더〉(2009)
봉준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살인자로 지목된 모자란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모습을 그렸다. 흔히 헌신과 따뜻함으로 규정되는 엄마의 모습을 탈피한 기괴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이때까지 ‘국민 엄마’로 불렸던 배우 김혜자가 그 역할을 연기했기 때문일까. 그간 우리가 가졌던 모성애에 대한 편견, 나아가 환상을 와장창 깨며 충격을 안겨준 작품. 아들 역 원빈의 연기도 실로 역대급이다. 영화 업계에서는 〈기생충〉이 나온 지금까지도 봉준호 최고의 작품으로 여전히 〈마더〉를 꼽는 이들이 많을 만큼 여러모로 놀라운 영화다.

마더
이미 명작으로 잘 알려진 〈설국열차〉, 〈옥자〉도 감상 필수 작품이지만, 진짜 봉준호의 색깔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단편 영화 〈지리멸렬〉과 〈인플루엔자〉 그리고 〈도쿄!〉를 추천한다. 보고 나면 마냥 즐겁거나 개운한 게 아니라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찝찝해지는 걸 보니, 봉준호의 세계란 참 일관성 있고 한결 같다. 감독님, 인류 교양 발전을 위해서 부디 오래오래 영화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