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급 공무원 세대: 너희가 진짜 원하는 직업이 뭐야?
」물론 공무원이 장래 희망으로 첫손 꼽힌다고 해서 공무원이 최상의 직업인 건 아니다. 요즘 유튜브에선 전직 공무원의 퇴사 후기 영상이 인기다. 3년째 9급 행정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92년생 김민지 씨는 “공무원도 밤 10시까지 야근할 때 많아요. 민원 처리할 때 다짜고짜 반말하고 소리지르는 아저씨도 많고, 종종 주말 출근도 하게 돼요”라고 공무원의 ‘진실’을 고발했다. 꼭 공무원이 아니라도 90년대생이 원하는 건 ‘안정성’ 혹은 ‘전문성’ 있는 직업인 경우가 많다. 공공 미술관에서 일하는 93년생 한효진 씨는 “전공을 살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질 생각도 있었지만,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월급이 나오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어요”라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1년째 구직에 실패한 92년생 공예슬 씨는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지만, 최근 세무사 자격 시험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한 96년생 양지희 씨는 이번 학기가 끝나면 외항사 승무원 면접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외항사의 경우 국내 항공사보다 다양한 나이대의 지원자를 뽑더라고요. 저는 결혼해서도 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외항사 승무원이 좋을 것 같았어요. 초봉도 다른 기업에 비해 높은 편이고요.”
〈90년생이 온다〉는 한편으로 90년대생들이 한 직장에서 근속하는 기간이 상당히 짧다고 얘기한다. 힘들게 입사한 직장에서 1~2년 만에 퇴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90년대생들에게 ‘안정성’은 다른 의미를 갖는 게 아닐까? 직장 내 상사의 괴롭힘으로 입사 1년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는 한효진 씨는 “제가 일하는 곳은 비영리단체라 고용 안정성은 보장된 편이에요. 업무량도 적당하고, 거의 정시 퇴근하죠. 그렇지만 저는 원래부터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길어야 3~4년 다닐 거라 생각하고 입사했어요”라고 말했다. 9급 공무원을 ‘꿈꾸는’ 세대는 공무원이 된 뒤에 다른 꿈을 꾼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9급 공무원 혹은 안정된 직장이 최종 목표인 건 절대 아니다. 공예슬 씨는 공무원을 ‘사무 보조 알바’에 비유한다. “활동적이고 패션과 운동을 좋아하는 제게 세무사가 적성에 맞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2년 동안 죽어라 공부해서 붙어보려고요. 어느 정도 돈을 모아 마흔 살 되기 전에는 스쿠버다이빙 강사를 하며 살고 싶어요. 세무사가 좋은 건 자격증만 따놓으면 언제든 다시 돈이 궁할 때 이 직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거죠”라며 큰 그림을 밝혔다. 공무원이나 전문직을 평생직장이 아니라 다음 스텝을 위해 돈을 버는 수단, 혹은 셀프 안전망 정도로 여긴다는 거다. 홍보 회사 입사 1년 차인 이주혜 씨 역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지만, 평생 한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회사 다니면서도 이 다음에는 뭘 할지 계속 생각해요. 물론 어디에서든 홍보업계에 발을 담가봤다고 얘기할 수 있는 정도로는 해야겠죠. 그래봤자 5년은 넘기지 않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시험과 경쟁의 연속에서 자라왔으며,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90년대생에게는 직장 역시 하나의 ‘스펙’이다.
워라밸: 이상향일 뿐 현실은…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브랜드의 집중 프로모션이 있을 때마다 야근을 밥 먹듯 하기 때문이다. “저도 원래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일이 많을 땐 빨라도 오후 8시에 퇴근하고, 늦으면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일하죠. 사실 홍보를 직업으로 택한 만큼 감내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가끔은 ‘받은 만큼만 일해’라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기분도 느끼죠. 제가 꼰대가 돼가는 건 아닌가 하면서요”라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한예지 씨 역시 “저는 퇴근하기 전에 야근하는 다른 선배가 보이면 빈말로라도 ‘도와드릴 것은 없냐’고 물어보는 편이에요. ‘너보다 연봉 많이 받으니 야근해도 걱정해줄 것 없다’라는 친구들을 보면 왜 굳이 그렇게 말을 못되게 하나 싶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공무원을 꿈꿨던 양지희 씨는 워라밸을 중시하지만 기대가 크진 않다. 사무직 공무원에 비해서는 업무량이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워라밸을 중시하지만, 애초에 모두가 워라밸을 쟁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96년생 이민영 씨는 “좀 힘들고 개인 시간이 줄어들더라도 제가 좋아하고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책 〈일하는 마음〉은 ‘당장 퇴사하고 싶지만 일은 잘하고 싶은 직장인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90년대생 중에는 업무에 평생을 바칠 생각은 아니어도 지금 하는 일에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사람도 많다. 어려서부터 ‘1등하는 법’을 교육받아온 탓일 수도, 진짜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다른 일이 없어서일 수도, 아니면 정말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