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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이 정말 그러냐고?

90년대생들이 직장에서, 혹은 고시원에서 속속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서점가에서는 ‘90년대생’을 키워드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매대를 꿰차기 시작했다. 그런데, ‘9급 공무원 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애들’은 정말로 ‘요즘 책’에 쓰여 있는 것처럼 암울하기만 한 미래를 그릴까? ‘디지털 세대’라고 불리는 90년대생들은 정말로 더 이상 책 한 줄 읽지 않을까? 90년대생들을 만나 직접 물었다.

BYCOSMOPOLITAN2020.01.04

9급 공무원 세대: 너희가 진짜 원하는 직업이 뭐야?

90년대생에 관한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는 ‘9급 공무원 세대’라는 개념으로 시작한다. 이 책에서는 취직을 준비하는 젊은이 10명 중 4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지금의 90년대생들이 청소년이었을 때 실시됐던 장래 희망 조사에서 ‘1위’로 공무원이 꼽혔다는 자료 등을 제시한다. 물론 저자는 단순히 90년대생이 꿈이 작고 열정이 없다며 ‘꼰대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취직 혹은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무원을 꿈꾸는 이유는 다른 기업보다 직업의 안정성과 복지가 좋고 적정한 급여와 정시 퇴근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라는 것이다. 95년생 이주혜 씨는 “주변에 공무원 준비하겠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긴 해요. 제 친구도 이번에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잡지 기자를 꿈꿨던 친구 역시 부모님의 조언을 따라 공무원 시험을 봐서 검찰공무원이 됐죠. 회사 잘 다니는 줄만 알았던 선배도, 액세서리 판매 개인사업자로 순수익이 3백만~4백만원이었던 지인도 오랜만에 소식을 들으니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어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라며 쉴 새 없이 ‘공무원으로 전향한’ 사람들의 목록을 읊었다. 한편 〈90년생이 온다〉의 저자는 일 년에 단 두 번 열리는 공채 시즌으로 기회는 한정돼 있음에도 이력서에 넣을 스펙 한 줄 쌓기 힘든 실정과, 기업의 채용 기준에 대한 불신이 90년대생 사이에 만연해 있음을 지적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96년생 양지희 씨는 “서류 광탈에 지쳐 공무원 준비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아요. 서류에서부터 스펙 경쟁이잖아요. 스펙 없는 사람도 공정하게 준비해서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 끌리는 것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물론 공무원이 장래 희망으로 첫손 꼽힌다고 해서 공무원이 최상의 직업인 건 아니다. 요즘 유튜브에선 전직 공무원의 퇴사 후기 영상이 인기다. 3년째 9급 행정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92년생 김민지 씨는 “공무원도 밤 10시까지 야근할 때 많아요. 민원 처리할 때 다짜고짜 반말하고 소리지르는 아저씨도 많고, 종종 주말 출근도 하게 돼요”라고 공무원의 ‘진실’을 고발했다. 꼭 공무원이 아니라도 90년대생이 원하는 건 ‘안정성’ 혹은 ‘전문성’ 있는 직업인 경우가 많다. 공공 미술관에서 일하는 93년생 한효진 씨는 “전공을 살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질 생각도 있었지만,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월급이 나오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어요”라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1년째 구직에 실패한 92년생 공예슬 씨는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지만, 최근 세무사 자격 시험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한 96년생 양지희 씨는 이번 학기가 끝나면 외항사 승무원 면접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외항사의 경우 국내 항공사보다 다양한 나이대의 지원자를 뽑더라고요. 저는 결혼해서도 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외항사 승무원이 좋을 것 같았어요. 초봉도 다른 기업에 비해 높은 편이고요.”
〈90년생이 온다〉는 한편으로 90년대생들이 한 직장에서 근속하는 기간이 상당히 짧다고 얘기한다. 힘들게 입사한 직장에서 1~2년 만에 퇴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90년대생들에게 ‘안정성’은 다른 의미를 갖는 게 아닐까? 직장 내 상사의 괴롭힘으로 입사 1년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는 한효진 씨는  “제가 일하는 곳은 비영리단체라 고용 안정성은 보장된 편이에요. 업무량도 적당하고, 거의 정시 퇴근하죠. 그렇지만 저는 원래부터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길어야 3~4년 다닐 거라 생각하고 입사했어요”라고 말했다. 9급 공무원을 ‘꿈꾸는’ 세대는 공무원이 된 뒤에 다른 꿈을 꾼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9급 공무원 혹은 안정된 직장이 최종 목표인 건 절대 아니다. 공예슬 씨는 공무원을 ‘사무 보조 알바’에 비유한다. “활동적이고 패션과 운동을 좋아하는 제게 세무사가 적성에 맞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2년 동안 죽어라 공부해서 붙어보려고요. 어느 정도 돈을 모아 마흔 살 되기 전에는 스쿠버다이빙 강사를 하며 살고 싶어요. 세무사가 좋은 건 자격증만 따놓으면 언제든 다시 돈이 궁할 때 이 직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거죠”라며 큰 그림을 밝혔다. 공무원이나 전문직을 평생직장이 아니라 다음 스텝을 위해 돈을 버는 수단, 혹은 셀프 안전망 정도로 여긴다는 거다. 홍보 회사 입사 1년 차인 이주혜 씨 역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지만, 평생 한 직장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회사 다니면서도 이 다음에는 뭘 할지 계속 생각해요. 물론 어디에서든 홍보업계에 발을 담가봤다고 얘기할 수 있는 정도로는 해야겠죠. 그래봤자 5년은 넘기지 않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시험과 경쟁의 연속에서 자라왔으며,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90년대생에게는 직장 역시 하나의 ‘스펙’이다.
 

워라밸: 이상향일 뿐 현실은…

지금 다니는 직장이 삶의 전부라 생각하지 않는 90년대생에겐 당연히 일과 분리된 자신만의 일상이 중요하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일명 ‘워라밸’을 중시하지 않는 90년대생은 없다. 〈90년생이 온다〉와 〈90년생과 일하는 방법〉 등의 책에서는 기성세대가 90년대생들과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당황하는 순간을 다룬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나오는 것을 당연시하거나 정시 퇴근을 ‘미안한 것’으로 여겨야 하는 기성세대와 ‘저녁 있는 삶’을 원하는 90년대생의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90년생과 일하는 방법〉에서 기성세대 눈에 비친 90년대생은 “동기부여하기 어렵고”, “설명해준 만큼만 일하며”, “다들 바쁜데 먼저 퇴근하는” 후배다. 저자 윤영철은 “이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기에 일 때문에 개인 생활은 물론, 가정을 희생시키는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아무리 업무가 바빠도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고, 휴가를 내서 여행 가는 등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즐기면서 산다”라고 관찰한다. 동시에 “후배들에게 회사는 돈 버는 곳”이라며 자기 개인의 성공과 업무의 성과를 동일시하는 것은 과한 이입이지만 반대로 후배들이 그 두 가지를 별개로 구분하는 것도 과한 방해라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93년생 한예지 씨는 ‘워라밸’에 대해 “아무리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봤자 우리 부모 세대만큼 먹고살 수도, 집도 구입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직장에서 받는 만큼 적당히 일하고 싶지, 저를 갈아 넣어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돈을 모으기보다 명품 백을 사는 데 쓰고, 휴가가 생길 때마다 해외여행을 가곤 하는 그녀는 “부장급 선배들의 ‘워라밸’은 우리의 개념과 다른 것 같아요. 주 52시간 근무제도 도입됐겠다, 남는 시간에 직무 관련 자격증을 열심히 따서 승진 기회로 삼으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생각하는 워라밸은 그게 아니잖아요? 일 외에 다른 방향으로 저 자신을 확장하고 싶은 거죠.” 하나의 직업이 전혀 다른 직업으로 이어지고, 늘 이직을 꿈꾸는 90년대생들에겐 당연한 얘기다. 여행과 수공예가 취미인 이주혜 씨 역시 “취미 하나 정도는 있어야 삶이 윤택해지는 느낌이에요”라며 ‘회사-집’을 반복하는 삶에 대해 거부감을 표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브랜드의 집중 프로모션이 있을 때마다 야근을 밥 먹듯 하기 때문이다. “저도 원래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고, 열심히 하고 있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일이 많을 땐 빨라도 오후 8시에 퇴근하고, 늦으면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일하죠. 사실 홍보를 직업으로 택한 만큼 감내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가끔은 ‘받은 만큼만 일해’라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기분도 느끼죠. 제가 꼰대가 돼가는 건 아닌가 하면서요”라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한예지 씨 역시 “저는 퇴근하기 전에 야근하는 다른 선배가 보이면 빈말로라도 ‘도와드릴 것은 없냐’고 물어보는 편이에요. ‘너보다 연봉 많이 받으니 야근해도 걱정해줄 것 없다’라는 친구들을 보면 왜 굳이 그렇게 말을 못되게 하나 싶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공무원을 꿈꿨던 양지희 씨는 워라밸을 중시하지만 기대가 크진 않다. 사무직 공무원에 비해서는 업무량이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워라밸을 중시하지만, 애초에 모두가 워라밸을 쟁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96년생 이민영 씨는 “좀 힘들고 개인 시간이 줄어들더라도 제가 좋아하고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책 〈일하는 마음〉은 ‘당장 퇴사하고 싶지만 일은 잘하고 싶은 직장인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90년대생 중에는 업무에 평생을 바칠 생각은 아니어도 지금 하는 일에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사람도 많다. 어려서부터 ‘1등하는 법’을 교육받아온 탓일 수도, 진짜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다른 일이 없어서일 수도, 아니면 정말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