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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연이어 하는 드라마 촬영으로 힘들지 않냐고 말하는데요, 오히려 저는 작품을 안 하는 시간이 더 힘든 것 같아요. 연기자가 연기를 안 하고, 예술 활동을 하지 않으면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별로 없을 거예요. 저는 연기 외에 잘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만약 열정 없이 연기를 한다면 그건 생계를 위한 거니까 내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여전히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 집에 가면 또 연구하고 고민하거든요.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나을 거라는 믿음으로 도전해요. 그래서 아직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촬영하고 있죠.
작품 다수가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니 ‘믿보배’예요. 그래서 차기작을 고르는 데 더 고심했을 것 같아요.
최근 5년 동안 작업하면서 시청률 10% 이하인 작품이 하나 있는데요, 한 작품이 안 되니 드라마를 보는 눈이 디테일해지고 깊어졌어요. 그렇게 실패한 후에 선택한 드라마가 〈닥터 프리즈너〉고 〈스토브리그〉는 그다음 작품이에요. 〈스토브리그〉는 1~4부까지 대본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작가님을 만났을 때 작품 구상이 이미 잘 짜여 있어 초반 이후에도 이야기가 짜임새 있게 진행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배우들은 초반 이후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모른 채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촬영하면서 서로 힘들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죠. 〈스토브리그〉 작가님을 만난 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스토브리그〉 속 ‘백승수’는 팀의 단장이면서도 본인의 가치관과 어긋나는 것에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대쪽 같은 인물이에요.
과거에 이런 인물이 드라마에 나온다면 한결같이 착하기만 했을 거예요. ‘백승수’는 그렇지 않아요. 문제가 굉장히 많죠.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자기 삶도 잘 챙기지 못하는 인물이에요. 그런 사람이 다른 이의 삶을 바꾸려 행동하는 게 모순적이면서도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복합적인 인물을 드라마로 보여주는 게 매우 세련됐다고 생각했죠.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 이후 남궁민은 선악을 모두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봐요. 배우로서 양면성을 지녔다는 건 대단한 무기가 있는 거니까 든든할 것 같아요.
〈닥터 프리즈너〉를 할 때도 ‘이 작품을 끝내고 연기를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가 너무 힘들고 괴로웠어요. 근데 그런 고통이 없이 연기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연기라는 게 괴롭지만 항상 내 옆에 있어야 하는, 함께 숨 쉬는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쉬워졌죠. 사실 이런 얘기를 하면 공부 잘하는 애가 계속 100점 못 맞는다고 짜증 내는 것처럼 들린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심각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요. 스스로 부족한 점을 인지하게 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완벽한 연기가 아니라 발전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니까 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들더라고요. 이 과정이 쌓이면 10년 후 더 좋은 배우가 되겠죠.
악역을 맡은 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도 했어요.
꼭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요. 하하. 악역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은 악역 연기를 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 않냐고 해요. 물론 초반에는 그렇기도 하지만 계속 화를 내는 연기를 하니 오히려 화가 더 쌓이더군요. 그래서 느꼈죠. ‘뭐든 사람은 정도껏 해야 하는구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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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이나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겨요. 피땀 흘려 노력하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툭 던지는 평가나 안 좋은 말이 그리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거든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식으면 멘탈이 무너질 수밖에 없고, 그 열정이 계속해서 끓어오르면 좋은 멘탈이 유지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죠. 마음에 남는 대사나 장면이 있나요?
〈스토브리그〉에서 회식하는 장면인데, ‘백승수’가 팀원들에게 했던 말이에요. “조금이라도 팀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저는 할 겁니다. 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도려내겠습니다. 해왔던 것들을 하면서 안 했던 것을 할 겁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 대사를 하면서 긴장감도 느껴졌고, 촬영할 때 몸은 안 좋았지만 기분이 좋았거든요.
치열하게 연기를 한 작품이 끝나면 허무함도 클 것 같아요.
인간 남궁민에게도 여유를 좀 줘야 하는 게 맞죠. 그런데 이 직업 자체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요. 어딜 가든 사람들이 알아보니 여유 시간을 마냥 만끽할 수는 없거든요. 인간 남궁민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저녁 먹으면서 수다 떠는 거예요.
드라마는 몇 달 동안 많은 배우, 스태프와 함께 하는 작업인 만큼 현장 분위기도 중요할 것 같아요. 주연배우로서 분위기를 이끌기도 하나요?
그래야 하는데 누구를 주도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연기할 때는 저도 기가 센 편인데, 그때 빼고는 현장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나 사회생활을 할 때 대장이 되려고 하진 않죠. 처음엔 낯을 가리다 작품이 끝날 때쯤 사람들이랑 친해져서 아쉬운 건 있죠. 금세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니깐요.
출연한 예능과 인스타그램을 보면, 취향이나 생활 규칙이 확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집은 대본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하기 때문에 물건이 밖에 나와 있는 걸 못 봐요. 정리가 잘돼 있어야 하죠. 처음 집을 꾸밀 때 디자이너와 상의해 수납공간을 많이 만들어 그 안에 모두 넣어놨어요. 비워놓는 거 좋아하고, 예쁜 거 좋아해요. 설치 기사분이 집에 왔다가 “진짜 집에서 이렇게 계시네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설정인 줄 아셨던 모양이에요.
차가운 분위기인 집의 인테리어가 마음에 든다고도 했죠.
촬영이 끝나고 피곤한 상태로 집에 왔을 때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 여행하다 집에 와도 ‘호텔보다 우리 집이 더 좋아!’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침실에 햇살이 들어오는 것도 좋고요. 공간이 주는 느낌이나 시각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집에 그림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월셋집을 전전하다 이번에 처음 집을 샀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도 구입하게 됐죠. 집 복도가 너무 휑해 걸었는데 무척 마음에 들어요. 와인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림이나 와인을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사실 뭐든 어렵다고 생각하면 더 어려운 거잖아요? 그냥 맛있어서 와인을 좋아하는 거지 그 와인이 몇 년산인지, 생산지가 어디인지, 이런 건 잘 몰라요. 그림도 그냥 봤을 때 느낌이 좋으면 그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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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보고 괜찮다, 저거 좋다 싶으면 사는 편이에요. 시각적인 것에 민감하다 보니, 그 즐거움이 남들보다 더 크고 또 분명한 주관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우들은 종종 좋은 사람이자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해요. 그 둘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사람도 많고요.
어떤 선배가 연기 잘하는 배우 중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연기 잘하려면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하나? 난 그런 성격이 못 되는데 어쩌지?’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저도 잘 모르지만, 일단 좋은 배우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체크하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확신하고 고집만 피우면 어쩔 수 없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20년 꽉 차게 연기를 한 셈인데,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알았나요?
아뇨. 제가 주연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돌이켜보면 내가 하는 노력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영화 한 편이라도 더 보고, 대사 한 줄이라도 더 해보고, 앞으로 더 잘될 거라는 자신감은 있었죠.
사람들은 남궁민이라는 배우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남궁민이 나오는 작품은 무조건 봐야 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궁민, 뭐 걔 나오는 작품 이상하진 않지? 괜찮은 작품 많이 했어’ 딱 그 정도 수준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다 바꿔놓고 싶어요. 사람들은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걸 더 잘 기억하잖아요. 더 좋은 작품을 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더 나쁜 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시점에 다다르지 않을까요?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한 사람들은 일을 즐기면서, 재미있게 했다고들 말해요. 이제 막 시작한 초짜들에겐 크게 와닿지 않는 말이기도 하죠. 남궁민 씨는 어때요?
저 역시 그 수준에 도달하진 못한 것 같아요. 다만 예전에는 어떻게 해야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 미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어떤 길로 가면 되겠다는 게 그려져요. 그러다 보면 내일 촬영이 기다려지죠. 내일도 분명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어떤 식으로 극복해야 더 좋은 내일의 내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더 기대되고 기다려져요. 예상대로 되는 건 없겠지만 그 안에서 깨닫는 게 있을 테니 그 과정이 괴롭지만은 않아요. 이게 일을 즐긴다는 의미일까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