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조리돌림,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 코스모 리포트1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진짜 성격이 보인다고 했던가? 이제 인성의 리트머스지는 운전대가 아니라 키보드 자판일지도 모른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 온라인 신상 털기와 조리돌림까지 인터넷상에서의 인권침해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넷 실명제가 해답일까? 코스모가 문제의 핵심을 짚어봤다. | 구하라,설리,댓글,악성댓글,인터넷

「 댓글 달기 전에 생각했나요? 」 도를 넘은 현대판 조리돌림 설리의 죽음 이후 인터넷상의 인권침해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거졌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이후, 악성 댓글과 조리돌림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연예인 등 공인의 발언이나 행동에 꼬투리 잡고 ‘고나리질’을 일삼는 태도가 문제였는데, 연예인의 경우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존재라는 약점 때문이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네 주머니에 돈 꽂아주는 건 나인데’ 하는 식의 태도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훈수를 두고 싶어 한다. 연예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길 바라는 신종 ‘갑질’이기도 하다. 대중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연예인들의 경우 피해가 한층 심각한 것은 맞지만, 사실 악성 댓글이나 허위 사실 유포, 신상 털기와 조리돌림 같은 사이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늘 사냥감에 목말라 있다. 그들은 군중 속에서 조금이라도 튀는 사람을 색출해내려 한다. 서민아(가명, 24세) 씨는 대학교를 다니던 지난 4년 동안 줄곧 악성 게시글과 댓글에 시달려왔다. 플랫폼도 가지가지였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나무숲, 디시인사이드 내 대학교별 갤러리, 학교 내 온라인 익명 게시판 등에서 두더지 게임하듯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루머가 고개를 내밀곤 했다. “교내 학보사 편집국장을 할 때 일이에요. 페이스북 커뮤니티 ‘대나무숲’에 어느 학생이 저와 같은 학보사 출신이라면서 제가 성적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함에도 학보사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공로 장학금을 받았다는 허위 글을 올렸어요.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도, 자신이 기자로 활동할 때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면서 저도 같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거죠.” 해당 글이 페이스북 내에서 일파만파로 퍼지자, 학교 당국은 서민아 씨의 성적과 장학금 지급 자격 심사 결과 등을 재조사한 뒤 공문을 통해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사생활에 대한 루머는 훨씬 많았어요.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같은 학생회 소속이었던 남학생 둘과 늘 붙어 다녔거든요. 그랬더니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 저와 그 친구 둘의 실명을 언급하며 ‘셋이 스리섬을 즐긴다’는 내용이 올라온 거예요.” 평소 활달하고 학교의 대소사에 많이 참여했던 서민아 씨는 이와 같은 일을 일 년에도 수차례 겪었다. 서민아 씨가 개인 SNS 계정에 올린 글은 자극적인 부분만 캡처된 채 대나무숲에 ‘고발’돼 조리돌림당하기 일쑤였고, 불과 3개월 전에도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 피드 내용이 ‘역겹다’는 내용의 원색적인 비난 게시글이 올라오곤 했다.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애들 장난인데 왜 예민하게 반응하느냐”였다.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걸 깨닫자 절망스러웠다. “첫 1~2년간은 자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학교에 가면 주변 사람들이 다 저를 보며 수군거리는 것 같았거든요.” 페이스북 기반의 커뮤니티인 대나무숲의 경우 관리자가 있어 원색적인 비방과 사생활 침해 등의 게시물을 거르지만, 서민아 씨는 대나무숲에서 벌써 비슷한 일을 다섯 차례나 경험했다.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 계정에 항의해도 해당 제보 글을 포스팅한 관리자가 사과하고 교체되는 정도였다. 실명을 기반으로 하는 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운영되기 때문에 해당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되레 비수로 꽂히기도 했다. “같은 과 동기들이 ‘좋아요’를 누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제 앞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던 친구들인데 말이에요. 그들과는 당연히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죠.” 대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했던가? 학교 밖을 벗어나면 이런 일은 훨씬 더 큰 규모로 되풀이된다. 얼마 전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지하철 컵라면녀’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지하철 문 옆에 서서 컵라면과 샌드위치를 먹는 여성의 사진이 두 장 포함돼 있었다. 지하철 신분당선 안에서 어느 여성이 컵라면과 샌드위치로 ‘풀 코스 식사를 즐겼다’라는 내용이었다. 작년 서울 시내버스 음식물 반입 금지 조례 이슈와 맞물려 커뮤니티에서 단숨에 유명해진 이 사건은 인터넷 뉴스로도 수차례 보도됐다. 물론 기사 내용은 천편일률적이고, 그 누구도 이 사건의 내막을 취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보도 목적 자체가 비난에 그친다는 증거다. 일부 인터넷 언론과 블로거들은 해당 사례를 두고 ‘지하철 내 음식물 섭취에 대한 논란’이라며 화두를 던지는 척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댓글로 “뻔뻔하다”, “개념 없다” 등의 원색적 비난과 욕설을 달 뿐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지하철 컵라면녀’라고 검색하면 뉴스부터 블로그, 카페, 동영상 등 온갖 종류의 플랫폼에 판박이 같은 사진과 내용이 뜬다. 몇은 현장에 있지 않았던 자신의 불쾌감을 표현하며 일면식도 없는 해당 여성을 점잖은 척 훈계하는 내용이고, 욕설이 담긴 댓글도 많다. 일부 언론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처럼 여성의 행동은 ‘도마 위에 올라’ 무차별적으로 난도질당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공공장소 민폐녀’라는 제목을 단 비슷한 유형의 게시물로 인터넷상에서 조리돌림을 유도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최악의 경우에는 일부 인터넷 유저가 해당 인물들의 신상까지 뒷조사해 사진과 이름, 직장 등을 낱낱이 공개하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컵라면을 먹은 것은 민폐 끼치는 행동이 분명하지만,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겪은 불편함과 당사자가 온라인 조리돌림 및 악성 댓글로 인해 받는 고통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다.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진짜 성격이 보인다고 했던가? 이제 인성의 리트머스지는 운전대가 아니라 키보드 자판일지도 모른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 온라인 신상 털기와 조리돌림까지 인터넷상에서의 인권침해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넷 실명제가 해답일까? 코스모가 문제의 핵심을 짚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