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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그렇게 보냈어요. 특별히 친한 사람 몇몇이 집에 놀러 오면 함께 밥을 먹는 정도? 올해는 좀 다르게 보내고 싶어 일부러 오늘 화보 촬영을 잡아달라고 했죠. 일도 하고, 지인들과 모여 생일 파티도 하면서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거든요.
2019년의 화제작은 누가 뭐래도 드라마 〈SKY 캐슬〉이에요. 연말이라 사람들이 잊은 것 같아 아쉽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여전히 ‘김 선생’, ‘김주영’을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제게는 선물 같은 작품이에요. 지금 촬영하고 있는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도 그 여파가 이어진 작품이니깐요. 〈SKY 캐슬〉이 ‘역시 김서형이 잘했다’로 정리됐다면, 다음 작품에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김주영’이라는 캐릭터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차기작을 선택하는 데 부담도 컸을 것 같아요.
예전엔 특별한 고민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작품 몇 개 중 하나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고민이 되더라고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던 제가 신경을 쓰는데, 그게 영 김서형 같지가 않은 거예요. 그걸 내려놓고, 비우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동안 성실하게, 또 열심히 연기했던 시간이 있었으니 어떤 작품을 만나든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내년 방영 예정인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는 어떤 점에 끌렸어요?
일단 ‘차영진’이라는 사람의 직업이 마음에 들었어요. 형사인데 흔히 생각하는 센 캐릭터는 아니거든요. 전형적인 지점에서 벗어나 감성적인 부분이 있는 인물이죠. 또 근래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인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에요. ‘차영진’이 형사로서 어떤 사건을 맞닥뜨리고 복수를 하는데, 점차 성숙해져요. 어른이지만 성장하는 인물이라는 점도 끌렸어요.
드라마로 첫 단독 주연이에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SKY 캐슬〉 시놉시스에서 ‘김주영’은 아홉 번째 인물로 소개됐어요. 결과적으로 제가 몇 번째 주인공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됐지만, 현실적으로 작품 속에서 인물의 중요도는 분명 존재하죠. 작품 속에서 기승전결이 드러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을 늘 했어요. 보통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다 담아내곤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주연이 됐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악역을 많이 맡았지만 인물들에게 늘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어요.
태어날 때부터 악한 면이 정해져 있진 않잖아요. 최대한 제가 연기하는 인물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 해요. 누구에게나 연약한 부분은 있고, 그 밑바닥에는 순수함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죠. 항상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요. 순진보다는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하죠.
실패하더라도 뭐든 겪어보며 스스로를 깨닫고 싶다고 했어요. 겁 없이 도전하기엔 지금의 김서형은 이룬 게 꽤 많은, 잃을 게 많은 배우 아닌가요?
내일 일도 모르는 게 인생이잖아요. 저는 ‘오늘을 잘 살자’라는 마음으로 살아요. 한 작품이 끝나는 데 6개월 정도 걸리니, 그 정도는 내다보며 살지만 5년, 10년을 내다보진 않죠. 제가 잃을 게 뭘까요? 명예? 돈? 나 자신만 잃지 않는다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거 겁내지 않고 일단 부딪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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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늘 그래온 걸요. 다행히 주연까지 하게 됐지만 저라는 사람은 바뀐 게 없어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주연이 됐지만 스케줄이 많아지고 내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아졌을 뿐 똑같아요. 그동안 그래왔듯이 열심히 하면 될 걸 괜스레 남의 눈치를 보며 고민했던 게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다르게 볼 수 있겠지만 저는 달라진 게 없거든요.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연기자 중 본인 연기에 만족해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어요. 배우들이 스스로 만족하는 연기는 어느 수준인 건가요?
연기를 하다 김서형이라는 인간의 생활 패턴이 들킬 때가 있어요. 만족스러운 연기를 한다는 건, 그걸 최대한 들키지 않을 때인 것 같아요. 물론 전체적인 스토리나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잘 맞고,최선을 다했다면 또 만족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매번 ‘다음 작품에선 어떤 연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은 늘 하는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 그 숙제는 계속 남겨두고 싶어요.
연기 변신에 대한 욕망을 자주 드러냈어요. 그런데 꼭 변신할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그런 건 아니에요. 아무리 같은 악역이어도 그 사람의 배경, 직업 등은 다르기 마련이죠. 하지만 작품의 내용,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다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늘 극적 상황에 놓인 극적인 인물을 많이 연기했던 터라 김서형의 생활 연기를 보고 싶기도 해요.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에서 보여준 모습이 저의 생활 연기인걸요? 콘셉트를 전혀 잡지 않고, 제 생활의 일부를 보여줬으니깐요. 준비한 거라고는 필라테스 기구 정도였어요. 사실 생활 연기도 결국엔 연기잖아요. 아무리 자연스럽게 한다고 해도, 결국엔 어떤 스토리 안에 김서형이라는 사람이 연기를 하는 거니깐요. 〈아는 형님〉에서의 모습이 진짜 김서형이에요. 하하.
인생 캐릭터로 영화 〈봄〉의 ‘정숙’을 꼽았어요. 시대극인 데다 조각가인 남편을 내조하는 역할이라 조금 의아하더라고요.
얼핏 보면 약해 보이지만, 신여성으로서 내면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 같은 인물이었어요. 나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캐릭터라 생각했죠. 〈아는 형님〉에서 나의 생활적인 부분을 보여줬다면, ‘정숙’이라는 캐릭터는 저의 깊은 내면을 보여주는 역할이라 편했어요. 저는 밝지만 정적이고, 또 조용한 편이거든요.
결혼관이나 연기관에 대해 소신 있는 얘기를 여러 번 했어요. 페미니즘 이슈 전부터 줄곧 했던 말인데, 최근에 이슈가 됐죠.
저는 십몇 년 전에도 퀴어 영화를 얘기했어요. 하하. 사실 젊은 친구들이 SNS를 통해 많은 메시지를 보내요. 저를 통해 힘을 얻었다는 친구들이 많죠. 그런데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저 역시 똑같다는 거예요. 배우가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인 건 맞지만, 배우라는 직업을 택한 것 말고 저는 특별하지 않거든요. 만약 사람들이 저에게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저 역시 불안하고 불완전한 존재라고 말하고 싶어요.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자, 잘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롤모델 정도는 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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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정하고, 캐릭터를 만나 몇 개월을 연기하고 고민할 때 저는 아티스트예요. 그 작업이 끝나면 보통 사람이죠. 그 경계를 정확하게 구분 지어요. 그렇지 않으면 일 년 내내 피곤하거든요. 쉴 때는 우리 꼬맹이(김서형의 반려견) 똥, 오줌 치우는 엄마고,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생활인이죠. 얼굴에 뭐가 나면 피부과에 가고요. 대신 다음 작품을 더 잘하기 위해 평소에 몸을 잘 가꾸고 건강관리에 신경 써요. 직장인들은 날마다 출퇴근을 하지만 저희는 한 번에 몰아서 하기 때문에 체력 관리가 중요하니깐요.
14살 된 노견 ‘꼬맹이’와 살고 있어요. 어떤 이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며 죽음을 미리 겪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아버지를 보내봐서 죽음에 대해 느낀 건 있어요. 슬프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잘 살고 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게 됐죠. 서울 와서 주로 생활하다 보니 아버지를 자주 못 뵀거든요.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의 삶은 어땠을까란 생각도 했고요. 동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24시간 내내 같이 생활하는 이 친구와 헤어지는 게 더 슬플까, 아빠를 보냈을 때가 더 슬플까?’ 이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효처럼 느껴지는데 저에겐 둘 다 너무 슬픈 일이에요. 사실 꼬맹이보다 제가 먼저 가게 될지도 몰라요. 앞날은 모르는 거니깐요. 그래서 하루하루를 잘 살고 싶어요. 그냥 이 아이가 내 옆에 있는 동안 잘 살다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예쁘다는 말보다는 멋있다는 말을 더 많이 듣는 여배우예요.
참 고마운 말이에요. ‘인간 김서형은 그렇게 멋있는 사람인가?’ 스스로 물어봐요. 그 말에 부응하며 살고 싶어요. 외모만 멋진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가 멋있으면 좋겠어요. 나의 무엇을 보고 멋있다고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한 일이죠. 팬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곤 해요. 팬들이 인스타그램 DM으로 그동안 제가 인터뷰했던 내용을 발췌해 보내주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순수해져요.
그동안 인터뷰에서 했던 말 중에 스스로 생각해도 멋있다고 여기는 말이 있어요?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잡지가 나오고 팬들이 보내주면 ‘아, 내가 이런 말을 했구나’라고 깨닫죠. 1년 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르겠지만 순수하다는 지점에서는 아마 같을 거예요.
어떤 사람이 멋있는 사람 같아요?
꿈꾸는 사람들이오. 제 눈엔 보여요. 오늘 같은 화보 촬영장에서든, 드라마·영화 촬영장에서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꿈을 꾸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거니깐요.
2019년 한 해를 산 김서형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행복하면서도 우울한 한 해였어요. 감사한 일이 생기다 보니 많이 바빴는데, 원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내가 아닌 타인의 기준에 맞춰 해야 하는 일도 있었고요. 한마디로 김서형스럽지 않아 부대꼈죠. 그래서 〈SKY 캐슬〉이 끝나고 나서 좀 힘들었어요. 김서형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지 고민한 끝에 ‘김서형은 똥이라도 밟아보고, 핥아봐야 아는 사람이지. 도대체 왜 겁내는 거지?’라는 결론에 도달했죠. 타인의 시선과 말에 귀 기울이며 겁냈죠. 그래서 저 자신에게, 또 코스모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조금 더 부딪혀보자! 그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