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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넌 너무 매력적!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에서 끝나는 터키 여행. 남동부 샨르우르파와 아드야만에서 인류 문명의 기원을 만나고, 유럽과 아시아의 길목인 이스탄불에서 역사 속 거대 제국의 터를 거닌다.

BYCOSMOPOLITAN2019.11.20

유라시아의 목구멍, 이스탄불 

레스토랑 미클라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

레스토랑 미클라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

이스탄불 거리에서는 노천카페에서 커피나 홍차와 함께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스탄불 거리에서는 노천카페에서 커피나 홍차와 함께 담소를 즐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다시 하늘길에 올라 아나톨리아 반도의 서쪽으로 향한다. 이스탄불은 동서로 아시아와 유럽, 남북으로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연결한다. 아시아와 유럽 대륙 사이로 보스포루스해협이 펼쳐지는데, 그 이름은 터키어로 ‘보아지치(Bogˇazic¸i)’, 즉 ‘목구멍’이라는 뜻이다. 에미뇌뉘(Emino..nu..) 항구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아시아의 끝’, 위스퀴다르(U..sku..dar) 항구와 등대부터 베이라르베이(Beylerbeyi) 궁전, 비잔틴 시대 요새인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r)를 둘러보면 이스탄불에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갈라타 다리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그중 몇은 졸고, 갈매기들이 쉼 없이 날고, 고등어 케밥을 파는 사람들의 리드미컬한 손놀림이 끊길 줄 모르며, 낚시는 깊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나폴레옹은 “세계가 하나의 나라라면, 수도는 이스탄불이어야 마땅하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이스탄불은 이미 내로라하는 제국의 흥망성쇠를 고루 목도한 유서 깊은 도시다. 그중 로마와 비잔틴, 오스만제국 시대에는 수도 역할을 했다. 특히 로마의 역대 수도에는 언제나 7개의 언덕이 있다는 말을 이스탄불에서도 실감하게 된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크고 작은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오래된 상점과 트렌디한 식당이 숨바꼭질하듯 시야에 들어왔다가 사라진다. 이스탄불 시내에서는 옛 로마 양식부터 바로크 양식, 이슬람 양식까지 다양한 시기에 지어진 주거 건물을 은행이나 시청 등의 관공서로 쓰는 일이 많다. 갈라타 다리에서부터 이어지는 마을 갈라타에는 오스만제국 시대의 은행 건물을 개조해 도서관 겸 미술관으로 만든 ‘살트 갈라타(SALT Galata)’가 있다. 시시하네(s¸is¸hane)역 근처에는 자유분방한 그래피티가 유서 깊은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 거리의 사람들은 도발적인 컬러와 대담한 패턴을 몸에 두르는 데 거리낌없고, 주차된 차의 지붕 한가운데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땅 아래와 위로는 거대 제국의 흔적, 예라바탄 사라이 저수지와 톱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의 전경.

톱카프 궁전의 전경.

이스탄불 시내에는 약 60개에 달하는 로마제국 시대의 저수지가 있다고 알려진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라바탄 사라이(Yerebatan Saray)는 ‘지하에 묻힌 궁전’이라는 뜻으로, 비잔틴제국에서 마을의 식수를 저장하던 곳이었다. 옛 신전과 궁전 건축에서 자재를 끌어왔기 때문에 이곳을 이루는 336개의 기둥은 도리아와 코린트 양식 등이 뒤섞여 있다. 꽤 어두운데도 석회 기둥의 무늬와 마감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저수지에서는 물고기를 길렀는데, 전쟁 때 적군이 저수지에 독을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킬링 포인트는 깊숙한 곳에 위치한 두 기둥의 주춧돌로 메두사 두상 조각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하나는 옆으로 누이고 다른 하나는 거꾸로 괴어 한층 더 기괴하다.
드넓은 유럽식 정원이 있는 톱카프(Topkap) 궁전은 한때 세계의 3분의 1 지역을 제패했던 오스만제국의 산물이다. 황제의 문, 경의의 문, 행복의 문 등 3가지 다른 문을 통과해야 그 심장부로 들어갈 수 있다. 온통 황금으로 치장된 궁전 내부와 소품은 화려함에 대한 허영을 단번에 충족시킨다. 칼 한 자루, 시계 하나에도 이토록 정교한 세공을 명령하려면 대체 한 제국이 어느 정도까지 번창해야 하는 걸까? 궁정 안에는 옛 비잔틴 시기의 저수지로 보이는 터의 윗부분이 발견돼, 비잔틴제국 시기의 궁정 터를 허물고 그 위에 오스만제국의 궁전이 지어졌을 거라 추측된다. 보스포루스해협을 내다볼 수 있는 궁정 안의 레스토랑 코냘리(Konyali)에서는 옛 황제에게 대접하던 식대로 커다란 황금색 플레이트와 돔 안에 음식을 낸다.
 

2가지 색채가 공존하는 곳,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에서는 갤러리에 들러 모자이크 성화를 꼭 봐야 한다.

아야 소피아에서는 갤러리에 들러 모자이크 성화를 꼭 봐야 한다.

아야 소피아에서는 갤러리에 들러 모자이크 성화를 꼭 봐야 한다.

아야 소피아에서는 갤러리에 들러 모자이크 성화를 꼭 봐야 한다.

아야 소피아(Ayasofya)에서는 두 제국의 운명이 엇갈렸다. 영어식으로는 성소피아라 불리는 이곳은 동로마제국 시대였던 360년경에 정교회 성당으로 처음 지어진 뒤, 두 번 소실됐다가 재건축됐다. 세 번째 건립은 5년 11개월 만에 완공됐다. 아야 소피아는 세계 최초의 기둥 없는 아치 건물이며, 지금까지도 그 건축 기술을 인정할 정도다. 내부는 세례를 준비하는 소박한 외랑과 온통 황금으로 장식된 예배당인 내랑으로 나뉜다. 1453년 오스만제국이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이슬람 신자였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성소피아 성당을 모스크로 변모시켰다. 십자가에서 가로축을 떼어내고, 성화를 회칠로 덮은 뒤 이슬람의 상징적인 문양인 아라베스크와 튤립과 장미를 덧칠했다. 이슬람 문화에서 튤립은 알라를, 장미는 마호메트를 상징한다. 사람을 숭배하면 안 된다는 이슬람식 믿음에 따라 돔의 네 귀퉁이에 새겨진 천사 얼굴에는 별을 박아 넣었다. 또 이슬람식 예배당인 미흐랍이 추가됐는데 메카 방향으로 건립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정면에서 봤을 때 묘하게 방향이 틀어져 있다. 1923년 터키공화국이 건립되고 나서 1935년 아야 소피아는 박물관으로 규정됐다. 지금은 회벽을 걷어내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정교회 시절 모자이크 성화와 아라베스크 문양, 알라와 마호메트의 이름과 성모마리아 성화가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Must Try 

미클라(Mikla)
마르마라 페라 호텔의 루프톱에 자리한 레스토랑. 터키산 식재료만을 사용한다. 고등어 케밥을 재해석한 애피타이저, 12시간 동안 와인에 익힌 양고기와 황소 젖 요구르트 등을 일몰과 함께 즐기자.
 
네오로칼(Neolokal)
이스탄불 살트 갈라타 내에 있는 레스토랑. 터키식 파스타 ‘에리스테(eris¸te)’, 6가지 다른 토마토를 이용한 요리, 마리네이드한 숭어 요리인 ‘레브렉 마린(Leverk Marin)’을 꼭 먹어볼 것.
 
예니 로칸타(Yeni Lokanta)
이스탄불 미식가 사이에서 핫한 곳. 터키식 만두인 ‘만티(manti)’에 고기 대신 가지를 넣은 채식 메뉴나, 푸짐한 문어 스테이크 등을 맛보자. 와인 리스트는 터키 로컬로만 짜여 있다. 마무리는 역시 진하게 우린 터키식 홍차 n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