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를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요 <메기> 이옥섭 감독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의 이야기로 스크린을 장악한 여성들이 있다. <벌새>의 김보라, <아워 바디>의 한가람, <메기>의 이옥섭 감독을 만나 그들이 우리의 삶에 던지는 질문, 유쾌한 파문을 들었다. | 이옥섭,감독,여성 영화인들,여성 감독,이옥섭 감독

「 &lt;메기&gt;, 이옥섭&nbsp; 」 재킷, 팬츠 모두 대중소. 귀고리 앤아더스토리즈. 터틀넥,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About 영화 &lt;메기&gt;는 여성이 단지 여자라서 겪는 문제와 부조리를 엉뚱하고 기발하며 발칙한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lt;플라이 투 더 스카이&gt; &lt;걸스온탑&gt; 등 개성 넘치는 아이디어와 유머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이옥섭 감독의 첫 장편. 독보적인 연기로 사랑받는 문소리, 천우희와 독립 영화계의 슈퍼스타 이주영, 구교환이 열연을 펼친 이 영화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nbsp; &nbsp; &lt;메기&gt;의 메기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동물 메기였어요. 왜 메기예요? 주인공 ‘윤영’이라는 인물이 계속 가혹한 일을 많이 겪어요. 그게 다 사람 때문에 겪는 어떤 혼란이라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위로를 해주면서 쭉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메기라는 존재는 ‘윤영’이 딱히 의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존재가 아니니까. “왜 굳이 메기냐?”라고 묻는다면 메기는 앞날을 알아요. 지진을 감지하거든요. 뭔가를 미리 알아챈다는 것이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nbsp; 영화가 직시하는 사회적인 문제는 뭐예요? 누군가는 재개발 문제나 청년 실업 문제 등을 짚기도 하는데, 저는 ‘윤영’이, 그러니까 여성이 느끼는 혼돈과 불안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나를 지키기 위해 항상 의심해야 하고, 노심초사하는 습관이 체화된 여성의 삶. 여성들은 종종 내가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마주해요.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도. 결국 우리가 삶을 살면서 느끼는 공포, 불합리, 불안, 의심 같은 것들로 영화를 채워나간 것 같아요. &nbsp; 영화의 메시지에 대해 “믿음이 쌓이고 깨지고 다시 조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솔직히 믿기 어려운 것이 너무 많아져서 뭘 믿는 게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됐어요. 믿는다는 것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어요? 저는 믿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요. 믿지 않아서, 내가 이 사람을 못 믿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죠. 사실 그건 꼭 내 탓이 아니라 사회가 우릴 그렇게 만든 것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은 게 저의 결론이에요. 그리고 들어보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과정 속에서 어떻게 믿기로 선택하는지. &nbsp;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거네요. 사람이 어떻게 세계를, 인간을, 자신의 믿음을 믿는지. 네. 만약 답을 알고 있었으면 아마 이 시나리오를 안 썼을 것 같아요. 사실 ‘나는 왜 이렇게 사람을 못 믿지?’가 오래전부터 제 안의 화두였어요. 믿으려면 오래 걸리고, 믿어도 다시 또 의심하고. 제가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네가 뒤가 구리니까 사람을 못 믿는 거다”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나만 유독 그런 성향인가?’ 했는데 겪어보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가 위험에 쉽게 노출돼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뭔가를 믿고 안 믿는 건 그냥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야. 너는 괜찮아.’ &nbsp; 감독님은 “불안하고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오랫동안 얘기해왔어요. 주인공 ‘윤영’이 겪는 문제(특히 여성이 겪는 폭력)와 유머는 접붙이기 너무 어려운 문제예요. 유쾌하면서도 진지함은 잃지 않도록 어떻게 균형을 맞췄어요? 영화에서 직접 다룬 문제는 유머로 풀지 않았어요. 영화를 보는 사람 중에 ‘윤영’이 당한 문제를 겪어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이들이 불편한 마음이 들거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를 바랐죠. 그래서 직접적인 몰카 사진 대신 ‘엑스레이’라는 간접적인 이미지를 쓴 거죠.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 유머를 느꼈다면, 그건 제 오랜 버릇 때문이에요. 저는 말도 안 되는 슬픈 상황에서도 한편으로 웃으려고 하는데, 그건 아마 제가 그 상황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방법인 것 같아요. 어떤 관객이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나는 웃을 수 없었는데 옆에 앉은 사람은 웃더라.” 그런 기분 있잖아요. 나는 심각한데 친구는 내 얘길 듣고 웃을 때. 그럼 ‘아, 이거 별일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조금 풀리는 거. 그런 정서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nbsp; &lt;메기&gt;를 향한 관객의 반응 중 감독님을 건드린 것은 뭐예요? 영화를 만들기 전엔 제 상태가 ‘질문’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데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아픈 경험, 기억을 지나온 이들이 “벗어날 수 있어”라고 말해줬어요. 그런 이야기들 덕분에 주저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단단해진 느낌이에요. ‘그냥 마음을 굳게 먹으면 되겠구나. 나를 괴롭히는 이 문제를 잘 지나가자’ 하고. &nbsp; ‘여성 감독의 약진’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진부하게 들릴 정도로 매우 뚜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당연한 결과예요. 하하.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성비가 반반이었고, 여자 선배들의 작품이 너무 훌륭했어요. ‘그런데 왜 찾아보기 힘들지?’ 하는 생각에 선생님한테 한번 여쭤본 적이 있어요. 그때 선생님이 “네가 30대쯤 되면 쏟아져 나올 거야”라고 하셨죠. 여성 영화인들은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계속 좋은 영화를 쓰고, 만들고 있어요.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 더 큰 기로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요. &nbsp;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이 주인공인, 여성의 이야기를 쓴 영화들을 보며 많은 여성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부조리함을 알아차리고 있어요. 그걸 자각하기 시작한 이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nbsp; 처음으로 혼자 살기로 하고 이사한 날이었어요. 늦은 밤까지 짐 정리하느라 배가 고팠는데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에 못 가겠는 거예요. 무서워서. 이사 날이라 마침 망치가 옆에 있어서 그걸 들고 편의점에 갔어요. 이 얘기를 과제로 써 갔는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피해의식이 있구나.” 너무 창피했어요. ‘내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예민한가?’ 싶었죠. 그런데 몇 년 전 강남에서 일어난 ‘그 일’을 기점으로 저는 제 태도를 바꿨어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 공포, 예민함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겪는 문제가 맞구나.’ 그걸 인지한 순간 불편하게 바라봐야 할 일, 바뀌어야 할 문제에 눈을 뜨고,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고, 이런 영화도 만들 수 있었어요. 우리가 이런 상황을 개인의 문제로 외면하지 않고, 함께 인지하고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