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디즈니 악당이 공주보다 낫다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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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시대를 앞서간 패션과 음악을 선보인 가수 양준일의 영상을 보다가 본의 아니게 추억 여행을 하게 됐다. 1990년대 초반의 트렌드를 지금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홀려 시작된 추억 여행은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방영된 드라마 <청춘의 덫>을 보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인기작이었지만, 지금 다시 보니 소위 말하는 ‘빻은’ 대사와 ‘속 터지는’ 장면의 향연이었다.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건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난 당신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렸소. 웃지 말아요. 웃었다가는 가차없이 후려갈길 테니까. 조심해요.  난 갈긴다면 갈겨요. 웃고 싶으면 집에 가서 웃으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이 드라마에선 낭만적인 편에 속했고, 나를 괴롭히는 장면은 중간중간 계속 나왔다. 거의 지뢰밭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추억은 역시 과거 속에 있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과거 속에 머물러야만 아름다운 콘텐츠는 한두 개가 아니다.  한마디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콘텐츠는 수두룩하다. 그런 의미에서 콘텐츠 강자로 꼽히는 디즈니의 행보는 눈에 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없이 재미있게 봤던 콘텐츠에 시대정신을 입혀 다시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피부색은 물론 스토리 변주도 과감하다. 디즈니의 콘텐츠는 아동부터 성인까지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접근하는 것 같다. 실제로 시대정신을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콘텐츠가 대중의 외면을 받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배우 키라 나이틀리는 자녀에게 <신데렐라>와 <인어공주>를 보지 못하도록 금지했다고 한다. 신데렐라는 부자인 남자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성이고, 인어공주는 남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줄 만큼 지나치게 헌신적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사실 이 지적은 디즈니의 고전 작품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늘 미움만 받았던 디즈니 작품 속 악역(유독 여자가 많다)을 대놓고 옹호하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이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데에는 천성보다 환경의 영향도 있기 때문이다. 단, 이들이 벌인 아동 유괴, 참수, 살인 계획과 같은 행동을 감싸줄 생각은 없다.   하나씩 생각해보자.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말레피센트’가 나쁜 사람으로 변한 것은 공주의 세례식에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해서, 모두 참석한 파티에 나만 초대받지 못했다면 누구든 그녀처럼 불을 내뿜으며 화를 내지 않았을까? 위기의 상황에서 그녀는 적어도 공주처럼 누군가(왕자) 나를 구해주길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행동을 취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왕비도 마법의 거울(그 거울은 남자였다!)이 주인인 자신보다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다고 말했기 때문에 분노한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보다 예쁜 여자에게 독사과를 먹여 죽이겠다고 다짐한 왕비의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사회가 말하는 미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서 수모를 겪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우리는 적어도 그 심정만큼은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요즘 잘나가는 영화나 책, TV 드라마에서 결점투성이지만 애정이 가는 여자 주인공을 내세우는 것을 보며,  그들은 그저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의 여성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순진무구하고 예쁘기만 한 캐릭터보다 적당히 시기와 질투를 품은 복잡다단한 여자가 인간적인 매력으로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눈치 빠른 디즈니는 이런 점을 간파하고 악당 캐릭터로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개봉을 앞둔 <말레피센트 2>가 대표적이다. 캐스팅 단계부터 화제가 된 <인어공주>의 악당 ‘우르술라’ 역은 최종적으로 멜리사 맥카시가 확정됐지만 그 전까지 배우들에게 러브콜을 받은 캐릭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콘텐츠 왕국이자 절대 강자인 디즈니가 전형성에서 벗어나는 인물과 스토리를 보여줄수록 사람들은 더욱 열광한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맞는, 그러니까 시대를 불문하는 완성형 콘텐츠를 ‘다시보기’로 보게 될 것이다. 콘텐츠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에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콘텐츠 생산자들의 머리는 도무지 쉴 새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