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동안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이 실현되던 2000년에는 국내외 모두 바삐 돌아갔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남북 정세. 한반도 전체에 평화로운 기운이 꽉 차고, ‘통일’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던 감격적인 순간도 많았다. | 세상,국내외,2000년대 한국,2000년대,통일

남북한 화해 모드 조성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던 순간, 가장 많이 오버랩된 순간이 바로 2000년 6월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48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52년 만에 이뤄진 이 만남은 그해 세계 10대 뉴스로 발표될 만큼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함께 탄 차에서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등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기사화될 만큼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이를 계기로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등 민간 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 뜨거운 장면은 18년이 지난 후에나 재현될 수 있었다. ▶ Q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잡던 장면을 보면서 어떤 기분이었어? 경이로웠다. ‘언젠가는 영화 같은 이 장면을 교과서에서 보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역사적인 순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유영우(23세, 대학생)   1차 이산가족 상봉 1983년 KBS에서 이산가족 상봉 캠페인이 진행된 이후 정식으로 정부에서 추진한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도가 최초였다. 이를 시작으로 2014년까지 18회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3박 4일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이들에게는 너무나 귀한 시간이었고, 두 번째 이산가족 상봉은 11개월 만에 다시 이뤄졌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산가족 상봉은 2007년까지 해마다 이어지다가 2008년, 2013년에는 끊겼다. 2008년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후 강경한 대북 정책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남북 관계가 삐거덕거렸고, 2013년에는 북한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돌연 무기한 연기하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   평화의 상징이 된 소 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생전에 현대그룹에서는 3차례 소 떼 방북을 했다. 그중 세 번째 소 떼 방북이 이뤄진 해가 2000년. 사실 앞선 소 떼 방북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주춧돌이 됐다는 평이 많다. 세 번째 소 떼 방북에서는 정주영 명예회장 대신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등이 소 500마리와 함께 방북했다. 이 방북에는 소 떼 외에 콘크리트 믹서 트럭 2대와 합판, 철근 등도 지원됐다. 결국 현대그룹이 방북할 때 동행한 소 떼 1000마리가 남북 평화의 상징이 됐다. 이후 현대그룹은 남북 민간교류 물꼬를 튼 기업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소 떼 방북 20주년을 맞아 현대그룹은 남북 경협 사업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 Q 통일되면 어떨 것 같아? 지리적으로 섬인 우리나라도 차 타고 중국, 러시아를 다닐 수 있게 되니 미국처럼 다문화. 다민족 사회가 되지 않을까? 습관적으로 ‘짱깨’라는 말을 했다가 골목에서 칼 맞을지도. 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되면 민족성은 약해지고 개방적인 개인주의 사회가 될 듯하다. -이예성(27세, 영상디자이너)   교통 카드 결제 시대 본격적으로 버스 회수권, 토큰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계기가 된 시기도 2000년도다. 공식적으로 시내버스에서 버스 카드가 사용된 건 1996년부터였지만 교통 카드 시스템이 바로 구축되지 않았다. 서울은 시내버스에 한해 충전식 교통 카드 시스템이 도입됐고, 지하철은 후불식 교통 카드 시스템이 도입됐기 때문에 하나의 교통 카드로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수도권 지하철까지 호환되는 버스 카드가 개시되면서 본격적으로 통합 교통 카드 시대가 열렸다. 안타까운 건 이때부터 교통비 명목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받고, 그 핑계로 비상금을 마련했던 학생들의 꼼수가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는 것. 어쨌거나 이때 이후로 한국 대중교통의 편리함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 포용 정책인 일명 햇볕정책을 펼쳐 정상회담까지 이뤄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키고, 일생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며 인권을 향상시킨 점 등이 공로로 인정돼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수상이었다. ‘행동하는 양심’의 삶을 실천한 인권 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또한 한국 정치사적으로도 김대중 대통령은 건국 50년 만의 첫 여야 정권 교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모로 남북 문제, 민주주의 등 한국사회의 이슈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전무후무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 Q 2019년 한국에서 두 번째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면 누가 좋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북미 사이에서 뛰어난 외교 전략으로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줬기 때문에 회담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박찬균(24세, 대학생)   연쇄 살인마 체포 역대 최악의 연쇄 살인마로 꼽히는 사람이 체포됐다. 말 그대로 전국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정두영. 그가 체포된 것은 2000년 4월. 그는 1년 동안 무고한 시민 9명을 살해하고 8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는 이후에 등장한 연쇄 살인범 유영철의 롤모델이기도 했는데, 극악무도한 살해 수법을 따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두영은 사형 선고를 받고 현재까지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중간에 오싹한 일도 있었다. 그가 탈옥을 하기 위해 교도소 담 3곳 중 2곳을 뛰어넘고, 마지막 담을 넘다가 붙잡혔던 것. 만약 그때 탈옥에 성공했다면 우리는 ‘제2의 신창원’인 정두영 때문에 당분간 공포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 페미니즘의 시작? 김대중 정권의 공적 중 하나는 바로 여성가족부의 전신인 여성부를 신설한 것. 한국 1세대 여성 인권 운동가였던 이희호 여사가 생전에 양성평등법 제정, 여성부 신설 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신년사에서는 여성특별위원회를 여성부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했던 “여성부 신설은 역사의 흐름이다”라는 말을 지킨 셈이다. 여성부가 실질적으로 신설된 건 다음해 1월이었다. 초대 장관은 한명숙으로 내정됐다. ▶ Q 지금 한국의 여권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보편적인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여권 향상이 많이 됐고 양성 평등이 자리 잡힌 것 같다. 부족한 부분은 기성세대가 은퇴해야 개선되지 않을까?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여성의 인권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최원준(27세, 미술 강사)   윈도우 2000 출시 지금은 맥북이 있어 컴퓨터 운영체제의 선택권이 생겼지만 2000년도에는 윈도우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윈도우 98, 윈도우 XP 등으로 업그레이드됐던 윈도우가 마침내 윈도우 2000으로 안정화됐다. 더군다나 윈도우 2000은 지금까지도 은행 ATM 기기에 사용되는 운영체제다. 전작인 윈도우 98보다 안정성은 42배, 성능은 30% 향상됐으며 전원 관리 효율성이 높아졌다. 2000년도는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보급하는 데 힘썼다. 하나로통신에서 무료로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개시했고, 초중고등학교에 컴퓨터를 전면 보급하며 정보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학원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인 듯?   미국 부시 대통령, 러시아 푸틴 대통령 2000년도에는 세계 양대 강국인 미국과 러시아에서 대선이 실시됐다. 한반도 남북 정세에 영향을 주는 국가라 더욱 그 결과에 관심이 쏠렸다. 특히 미국은 남북 관계에 영향을 미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뒤를 누가 이을지 촉각을 세우고 지켜봐야 했다. 조지 W. 부시는 빌 클린턴 정부의 부통령을 지낸 엘 고어와의 각축전 끝에 미국의 43번째 대통령이 됐다. 우려와 달리 정권 초반에는 안정적이었지만 2002년 반테러 전쟁의 일환으로 이라크, 이란과 더불어 북한을 ‘악의 축’이라 지목하며 강경 자세를 취해 한반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현재도 러시아 대통령을 역임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절대 권력이 시작된 해도 2000년도다. 4차례 연임에 성공하며 19년 동안 장기 집권했지만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역대 최다 득표율을 기록하며 인기가 계속되고 있다. 다만 현재 러시아가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상태라 그의 정치력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27회 시드니 올림픽 20세기 마지막 올림픽이자 새 천년 들어 처음으로 열린 올림픽은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됐다. 한국은 총 28개의 메달을 따 종합 순위 12위를 기록했다. 이 올림픽에서 한국 고유 경기인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으며, 남한과 북한이 하계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에 입장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 경기 중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건 야구 경기. 올림픽 야구 경기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야구계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냈지만, 프로야구계는 꽤나 시끄러운 한 해를 보냈다. KBO 리그 현역 선수들이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를 결성해 한국야구위원회와 마찰을 빚었던 것. 다행히도 이 파동은 야구 시즌 전후로 사그라들었지만 후폭풍이 어마어마했다. 선수 협회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선수들이 각 구단에 의해 대부분 트레이드되는 불이익을 당했다. 동시에 희소식도 있었다. 인천을 연고지로 한 sk 와이번스가 창단한 것. 야구 창단팀이 대부분 그러하듯 sk 와이번스 역시 첫 시즌에서는 9개 팀 중 7위를 기록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다.   <코스모폴리탄> 한국판 창간 1886년 미국에서 창간한 <코스모폴리탄>은 2000년도 8월에 마침내 한국판을 창간했다. 이는 전 세계 41번째 창간이었다. <코스모폴리탄>은 ‘Fun Fearless Female’을 꿈꾸는 2535 여성을 위한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등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담아내는 인생의 지침서 같은 잡지를 지향하며 시작됐다. 실제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싱글 여성들의 당당하고 솔직한 모습을 담아내는 연애·커리어 칼럼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코스모폴리탄>은 창간 19주년을 맞이 했다.   ▶ Q <코스모폴리탄>은 어떤 잡지? 여성을 위한 야한 잡지의 대명사죠. 고등학교 1학년 때 언니가 정기 구독한 <코스모폴리탄> 잡지가 올 때마다 엄마 몰래 펼쳐 보던 그 짜릿함을 잊을 수 없어요. <코스모폴리탄>을 통해 섹스를 글로 배웠죠. -권태연(24세, 대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