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시 대중문화의 르네상스다!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1999년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가 되면 세상이 종말할 거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보기 좋게 어긋나고 2000년 새해를 맞았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휘황찬란했다. | 대중문화,르네상스,인생 드라마,커밍아웃 연예인,청춘 스타들

역대 최고 시청률 드라마 <허준>, <태조왕건> 밀레니엄버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등 심란한 말들로 점철된 1999년. 2000년은 앞자리 수가 바뀌는 해인 만큼 세상도 크게 바뀔 거라는 우려 혹은 기대와 달리 새해는 평온하게 시작됐다. 사이보그 패션, 인터넷 문화 등이 발달했던 분위기와는 또 다르게 사극이 시청률 강세를 보였다. 1999년부터 2000년 6월까지 방영한 드라마 <허준>은 최고 시청률 63.7%라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 드라마는 전광렬이라는 연기파 배우를 낳았고, 황수정이라는 스타를 배출했다. “줄을 서시오!”라는 유행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가 인생 드라마라고 꼽았던 <태조왕건>도 이때 방영됐다. 최수종·김영철 주연으로 후삼국시대부터 삼별초, 공민왕 시대까지 고려사를 다룬 대하 드라마로 총 200부작이었다. 김영철이 연기한 ‘궁예’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만큼 독보적인 캐릭터로 남아 있다.   청춘 스타들의 향연 “너의 죄를 사하노라”, “사랑? 까짓거, 돈으로 사겠어. 얼마면 돼?” 들으면 살짝 오그라드는 대사로 시청자를 울렸던 드라마 <가을동화>는 아역부터 성인 연기자들까지 모두 스타로 만들었다. 스타 등용문이라고 해도 무방한 드라마 <학교>는 2000년에 두 번째 시리즈를 방영했다. 김래원, 김민희, 이요원, 하지원. 지금은 묵직한 주연 자리를 꿰차고 있는 배우지만, 그때 그들은 교복을 입고 풋풋한 연기를 선보였다. 가장 트렌디한 드라마는 주중에 방영되는 미니 시리즈였는데, <이브의 모든 것>과 <진실>이 대표적이다. 이 와중에도 30~40대를 겨냥한 드라마 <아줌마>는 남편의 불륜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전업주부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이 드라마는 <풍문으로 들었소>의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감독  콤비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 Q <가을동화>를 2019년에 리메이크해 캐스팅한다면?   송승헌 역에는 눈빛이 깊은 유승호, 송혜교 역은 단아하고 선해 보이는 박혜수, 원빈 역에 수려한 외모의 서강준, 한채영 역에 도도한 매력을 가진 김지원을 꼽고 싶다. -김민(26세, 회사원)   최초의 커밍아웃 연예인 탄생 톱 게이 홍석천이 세상에 스스로 게이라고 고백했던 해가 바로 2000년도였다. 지금보다도 더 보수적이던 사회 분위기 때문에 그의 이 고백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이름을 알린 이후 활발히 연예계 활동을 했던 그지만, 이 커밍아웃 때문에 한동안 TV에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었건만 대중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2000년 후반부터 활동을 재개한 홍석천은 그때를 회상하며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를 위해 커밍아웃을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쨌거나 지금 그는 누가 뭐래도 톱 게이. 안타까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 Q 지금 유명 인사 중 누군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솔직한 사람이라 여길 것 같다. 모든 사람의 인식을 바꾸긴 어렵겠지만, 나는 그들의 사랑을 응원할 것이다. -주한솔(23세, 휴학생)   11월의 저주 유독 11월이면 좋지 않은 소식 때문에 연예계가 뒤숭숭했다. 2000년도가 더 가혹하게 느껴졌는데, 우선 개그맨 주병진이 한 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주병진은 신사적인 이미지에 재치 있는 입담으로 당대 최고의 개그맨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결과적으로 그는 2~3년간 재판을 거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오랫동안 TV에서 볼 수 없었다. 살사 댄스 열풍을 일으킨 가수 백지영은 당시 프로듀서였던 남자 친구와의 성관계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됐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인 유명 인사에게 관심이 쏠리면서 백지영은 동영상 주인공이 자신임을 시인하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어야만 했다. 그녀 역시 이 사건 이후로 한동안 TV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클론의 강원래가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것도 이때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불법 유턴을 하는 차에 치여 죽을 뻔한 위기를 맞았지만 극적으로 깨어나 재활까지 성공했다. 모두 2000년 11월에 연예계에 닥친 일들이었다.   토크쇼와 리얼 예능의 전신 등장 연예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재미있는 입담으로 풀어내는 토크쇼가 꽃을 피우던 시기다. <서세원 쇼>의 ‘토크박스’ 코너가 대표적. 유재석은 이 토크쇼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며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 당시 예능이 강세였던 방송사는 MBC였다.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는 2000년도 당시 참신한 예능을 선보이곤 했다. 특히 ‘게릴라 콘서트’는 당시 인기 있는 가수라면 반드시 출연하는 코너였다. 말 그대로 가수들이 콘서트 당일 게릴라성으로 공연 장소·시간 등을 정해 모객하는 콘셉트의 공연 예능이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어른이 웃음을 선사했던 <전파견문록>, 매주 연예인들이 합숙하며 한 명씩 탈락하는 서바이벌 방식의 <목표달성! 토요일-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등이 인기리에 방영됐던 예능이다. ▶ Q 지금 방영해도 통할 것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위험한 초대>. 지금도 유튜브로 검색해 찾아볼 정도다. -김효정(25세, 뷰티 어시스턴트) 잡다한 유튜버들의 콘텐츠 집합체 같은 <스펀지>. 요즘 유행하는 먹방 프로그램보다 검증된 꿀팁도 많아 실용적이고 유익했다.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었는데…. 지금 다시 방영한다면 웬만한 유튜브, 예능 다 씹어 먹을 듯! -강민하(22세, 휴학생)   그때 음악 방송 MC 기억나니? 김민희, 송혜교, 이나영, 김민정, 김효진. 이들의 공통점은? 방송사마다 하나씩 있는 음악 프로그램의 MC였다는 것. 청춘 스타들이 ‘뜰’ 수 있는 무대는 시트콤, 청춘 드라마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가수들의 무대를 소개하는 MC 자리는 당시 10대들이 가장 주목하는 스타들의 몫이었다. 보통 여자 MC들이 자주 바뀌었는데, SBS <인기가요>는 안재모·김민희, MBC <음악캠프>는 박광현·김효진·홍수현, KBS <뮤직뱅크>는 이휘재·송혜교·이나영·김규리·김민정 등이 MC를 맡았다.   관객 584만 명이 선택한 영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초라 말할 수 있는 영화 <쉬리>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영화가 관객들의 사랑을 받던 시기다. 기대에 부응하듯 2000년도에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영화가 줄줄이 개봉했다. 그해 최고의 흥행작은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이전 해에 ‘대박’이 났던 <쉬리>가 남북 관계의 대립을 극적으로 그려냈다면 <공동경비구역 JSA>는 안타까운 분단의 현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자주 비교가 됐다. 특히 당시 남북 관계가 순풍으로 화해 무드가 조성된 터라 더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송강호, 이병헌, 신하균, 이영애 등이 출연했으며, 당시 파격적으로 일본에 200만 달러에 팔리며 한국 영화 최고 수출액을 기록했다. 소시민들의 삶을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웃음으로 담아낸 영화 <반칙왕>,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명대사와 명장면을 남기며, 1980년대 광주의 상처를 담은 영화 <박하사탕>,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등 한국 영화는 그야말로 ‘빵빵’했다.   본격 멀티플렉스의 시작 1958년 개관한 이후 42년간 한 자리를 지켰던 대한극장이 복합 상영관 형태로 변신하기 위해 1년간 폐관했다. 한국 영화의 본거지로 통한 충무로를 대표하는 극장이 철거되는 것이라 의미가 컸다. 1970~80년대 당시 유일하게 대형 스크린을 갖추고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상영한 한국 대표 극장이었다. 이후로 소규모 극장은 조금씩 멀티플렉스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상영관뿐 아니라 각종 쇼핑몰, 음식점 등이 한 건물에 모여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이와 같은 형태의 극장이 매우 자연스럽지만 예전에는 한두 개의 상영관만 갖춰져 있는, 개인이 운영하는 극장이 대다수였다. 현재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기업이 극장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음원, 아니 앨범 최고 판매자 H.O.T.와 젝스키스 양강 체제 속에서 god와 조성모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이때는 음원보다는 CD, 테이프의 형태로 음악을 듣는 것이 보편적인  시기라 앨범 판매량이 인기의 척도였다. 특히 조성모는 ‘아시나요’가 수록된 3집 앨범과 리메이크 곡을 담은 클래식 앨범 모두 통틀어 350만 장을 팔아치웠다. god는 기존 아이돌과 다른 행보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 Q 밀레니얼에게 음반을 소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 덕질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발매된 앨범에 들어 있는 멤버별 랜덤 포토 카드와 각종 MD를 모아야 하기 때문. 더욱이 이 앨범이 없다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공방(음악 방송)에서 인원 체크 전, CD가 들어 있는 앨범과 음원 구매 내역은 꼭 필요한 준비물이다. 음반 소장은 단순히 팬심의 표현,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필수 아이템이다. -김지현(24세, 피처 어시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