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고약한 농담이 하나 있다고 한다. “질외사정법으로 피임하는 커플을 뭐라고 부를까?” 자연 피임주의자 혹은 노콘족 같은 신박한 단어가 머릿속에 맴도는가? 마냥 웃을 수 없는 정답은 바로 ‘부모’다. 미국의 가족계획 시민단체 ‘플랜드 페어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에 따르면 질외사정법을 하다가 임신하게 되는 여성이 매년 22%에 달한다고 한다. 5명 중 1명은 피임에 실패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현재 미국에선 이 ‘피임 도구 없이 섹스하는 것’이 콘돔과 피임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피임법이란다. 이 말장난 같은 피임법의 사용(?) 인구는 지난 2002년부터 2015년 사이 거의 2배 뛰어올랐다. 18~24세 여성 가운데 대략 41%가 이 방법으로 피임을 시도해봤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박주현 서울보라매병원 비뇨기과 교수팀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50대 한국 여성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피임법이 질외사정법(61.2%)이라고 한다. 그 결과 35%가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경험했단다. 더 충격적인 건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여차하면’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거다.
모두가 기대하는 질외사정법의 원리는 간단하다. 남자가 사정하기 직전 성교를 멈추면 정액이 여자의 질에 들어가지 않으니 정자가 열심히 헤엄쳐 갈 일도, 포동포동한 난자와 조우할 일도 없다는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다. 남자가 그 어떠한 액도 분출하기 전에 빼낸다면 말이다. 문제는 인간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항상 의도한 대로만 되진 않는다는 거지만. 들어는 봤나, ‘쿠퍼액’이라고? 쿠퍼액은 남자가 오르가슴을 느끼기 몇 초 전 페니스 머리 부분에서 분출되는 몇 방울의 액이다(만약 지금까지 이 정도도 모른 채 섹스를 해왔다면 진짜 큰일이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시급하다). “이 액체로 인해 임신할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확실히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라고 뉴욕의 산부인과 전문의 알리사 드웩 박사는 말한다. 그의 쿠퍼액에 아주 작은, 하필이면 펠프스급으로 수영을 잘하는 정자가 하나 들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그가 0.001초의 타이밍을 놓쳐 당신 안쪽에 아주아주 약간 사정을 할 수도 있다. 1억 마리의 정자 중 일부가 진입을 허락받은 순간이다. 간발의 차로 그가 당신의 외음부에 사정할 경우, 당신 몸에서 분비된 자연 윤활액이 그의 정자가 당신의 질 안으로, 그리고 자궁경관을 지나 자궁으로, 나팔관을 지나 난소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아, 심지어 성병에도 무방비로 노출된다. 저주하려는 건 아니다. 이걸 ‘피임법’으로 택한다는 건 어쨌거나 지금 당장 임신을 피하기 위해서일 테니, 하게 되더라도 확실하게 알고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을 뿐.
한 편의 섹스 부조리극 같은 질외사정법이 왜 피임약과 콘돔 같은 검증되고 확실한 피임법을 제치고 커플 사이에서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건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언제 어디서든 항상 사용 가능하고 무엇보다 공짜죠. 그조차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드웩 박사는 자신의 환자 중 다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한다. 보다 자연 친화적인 다른 이유도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성 건강 프로그램 디렉터인 산부인과 전문의 타미 로웬 박사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피임약과 같은 호르몬 피임법을 사용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호르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꺼림칙하고 부작용도 두렵고 또 자신의 몸 안에 합성 물질을 주입한다는 걸 꺼리는 거죠. 질외사정법이 가장 ‘자연적인’ 피임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거고요”라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