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치매 위험군 판정을 받자, 손녀는 할머니와 둘이 여행을 떠나겠다며 다니던 직장에 휴가를 낸다. 그러나 휴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손녀는 직장을 때려 치우고 나선다. 손녀는 여행 내내 ‘추억 소장용’으로 영상을 찍었다. 할머니의 리얼한 반응과 걸쭉한 입담이 손녀의 손끝에서 배꼽 빠지는 영상으로 태어났다. 가족끼리 깔깔대며 돌려보던 것이 어느새 1만회, 10만회, 100만회 쭉쭉 올라갔다. 그렇게 박막례 제 2의 삶, 유튜버 인생이 시작됐다.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첫 자서전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박막례 할머니의 인터뷰는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그럼에도 굳이 만나야 했다. 서점 가판대에 ‘일흔’이 넘은 ‘여성’의 에세이가 베스트셀러에 꽂혀 있는 이 낯설고도 경이로운 순간을 코스모는 길이길이 기리고 싶었다. 코스모의 모토가 무엇이던가. Fun Fearless Female! 지금 대한민국 70대 중 가장 웃기고 두려움 없이 스스로 삶을 개척해온 여자. 그것은 고스란히 박막례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니까.
인터뷰 당일, 설렘과 긴장이 온 정신을 휘감았다. 간절히 만나고 싶고, 또 피하고 싶은 마음이 5대5로 공존했다. (원래 사랑이 깊으면 상대 앞에서 작아지는 법이다.) 혼자 속으로 밀당을 하는 와중 저 멀리서 박막례 할머니가 걸어 들어왔다. 150이 될까 말까한 작은 키에 ‘이거시박막례클라쓰다~’라고 말하는 듯 화려한 자수 프린트 원피스, 화사하게 말아 올리고 앙증맞게 꼬아 내린 헤어 스타일, 원조 뷰티 유튜버의 위엄이 느껴지는 메이크업까지. 코리아 그랜마가 화면 밖으로 총총 튀어 나왔다. 나는 첫 질문으로 “막례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라는 말을 준비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가 않았다.
할머니는 손녀가 든 카메라가 아닌 다른 카메라 앞에서는 많이 수줍어했다. 그러다 서서히 박막례식 말투가 튀어 나왔다. 그 유명한 “염병하네”는 끝내 실제로 듣지 못했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 스태프들은 유튜브 영상 보듯 박수 치며 깔깔 웃었다. 그 타이밍이 하필 인터뷰가 끝날 때쯤 찾아와서 그렇지.
인터뷰를 마치고 할머니를 배웅하러 나간 길. 강남 한복판 큰길가 저 멀리에서 20대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거의 울먹이며 다가왔다. “어? 어머? 어머머머머! 할머니 맞죠? 으아아아앙!” 과장 좀 보태서 거의 BTS 실물 영접의 순간만큼이나 감격스러워 보였다. 할머니는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반가워~ 고마워~” 하며 연신 등을 쓰다듬어줬다. 옆에 있던 우리가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당부해본다. ‘할머니, 우리 오래오래 사십시다. 알통 자랑하면서!’
코스모 유튜브 시리즈 <여자, 여자를 만나다> 박막례&김유라 인터뷰 다음편도 코스모 유튜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