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 빌딩'의 이면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근육이 진짜 건강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식습관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절대 건강한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없다. 피트니스 대회에 나간 적 있는 한 참가자의 실제 경험담을 들어보자. ::보디빌딩, 바디, 헬스, 운동, 피트니스, 식습관장애, 근육,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보디빌딩,바디,헬스,운동,피트니스

나는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머리 위 뜨거운 조명이 내 몸 구석구석을 밝혔다. 두껍게 바른 태닝 로션은 물론 수분까지 쪽 빠진 덕분에 움푹 파인 근육과 혈관, 그리고 신중하게 다듬은 복근이 훤히 드러났다. 내 앞에 있는 심사위원들에게 지난 몇 달간의 고된 노력을 여실히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관객석은 어두운 밤바다 같았지만  내 피부에 닿는 그들의 예리한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며 팬케이크처럼 납작해진 배를 더욱더 끌어모았다. 나는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매일 침실 거울 앞에서 연습했으니 말이다. 대회 끝에 찾아올 환희를 기대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벼락처럼 내리꽂는 힘과 자신감을 기대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해진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지만 백스테이지에 홀로 앉아 있는 나는 실패감만 느꼈을 뿐이다. 그 순간, 지난 4년간 음식 때문에 겪은 문제들이 떠올랐다.   처음 보디빌딩 커뮤니티를 발견했을 때, 나는 이것이 나를 구제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18살이었고, 거식증과의 오랜 싸움 끝에 ‘프라이오리 클리닉’의 외래 진료를 마친 상태였다. 내 BMI 지수는 다시 ‘건강한’ 범위로 돌아왔고, 모든 사람이 내가 건강을 회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 내 몸이 건강하지 않다고 말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만약 벌크업을 한다면, 친구들과 가족이 날 삐쩍 마른 아이가 아닌 강한 사람으로 봐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검색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나와 같은 여자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운동으로 섭식 장애를 이겨냈다고 말하는 여성 보디빌더들의 인스타그램도 팔로했다. “5개월 만에 섭식 장애를 극복하고 비키니 대회 참가자로!”라는 문구가 적힌 그녀들의 프로필은 내 눈길을 더욱 사로잡았다. 건강하게 태닝된 그들의 몸매는 가히 부러움을 살 만했다. 조각처럼 다듬어진 팔과 다리는 내가 꿈꾸는 새로운 이상적 몸매가 됐다. 나는 생각했다. 그들의 영역에 들어선다면 내가 그토록 원했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얻게 될 것이며, 마침내 내 몸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고 말이다. 대회 준비의 첫 단계는 벌크업이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최대한 무거운 웨이트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그 근육들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다시 몸의 부피를 줄여야 한다. 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명 코치인 루시(가명)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한 달에 100파운드를 받고 이메일과 페이스타임을 통해 나를 훈련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루시에게 내 과거 병력에 대해 사실대로 말했고, 그녀는 나를 위한 플랜을 짜주었다. 내가 참가하고자 하는 대회까지는 네 달이 남았고, 나는 그녀의 플랜을 충실하게 따라야 했다. 기본적으로 아침에 한 시간 유산소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한 시간 동안 근력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또 내가 섭취하는 지방량을 제한해야 했다. 식단은 아주 엄격했고, 나는 화려한 보석이 박힌 내 비키니 의상을 보며 동기부여를 하곤했다. 그러는 사이 생리는 멈췄고 체온은 떨어져 옷을 두툼하게 입어야만 버틸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모든 사교 활동은 중단했다. 저녁 식사를 하려고 외출한다는 자체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내게 경고하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혼자 되새겼다. 그리고 대회 한 달 전, 내 무대의상이 도착했다. 나는 그 옷을 입고 그야말로 절망했다. 내가 동경했던 인스타그램 속 여자들과 똑같아 보일 줄 알았건만, 무대의상을 입은 내 모습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였다. 결국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소량의 물 외에는 어떤 것도 섭취하지 못했다. 대회를 며칠 앞둔 상태에서는 체내를 ‘비워내기’ 위해 물을 몇 리터씩 마셔야 했다. 마지막 24시간을 남겨둔 상태에서는 다시 극소량의 물 몇 모금만 허락됐다. 마침내 나는 런던으로 향했고, 대회 전날 밤엔 호텔에서 묵었다(헬스장에서 함께 운동하던 친구는 이불을 가져가라고 조언했다. 내가 바르게 될 태닝 로션의 양 때문이었다). 대회 당일 새벽에 일어난 나는 내 몸을 사진으로 찍어 루시에게 보냈고, 곧장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으러 나섰다. 그곳에는 나와 함께 아마추어 부문에 나가게 될 다른 여자 참가자들도 있었다.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누가 톱 순위까지 올라갈지 가늠해봤다. 그러다 대다수의 참가자가 온라인상에서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근육량이 적어 보인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다행히 나는 지난 몇 달간 앵글이나 필터 조작 없이 힘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내 몸을 온전히 평가해왔다. 그런가 하면 가슴 수술을 받은 참가자도 많았다. 갈비뼈가 드러나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몸을 여성스럽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참가자들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주제는 음식으로 흘렀다. 몇몇 참가자들은 레스토랑에 체중계를 들고 간 적이 있다며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테이블 위엔 도넛이 접시에 수북이 쌓여 있었지만, 쇼가 끝날 때까지 거기에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회 결과가 발표됐다. 내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완전히 지쳐 풀이 죽은 상태로 호텔에 돌아왔다. 내 향후 계획은 지금까지 따랐던 엄격한 식단을 계속 유지하고, 올 하반기에 한 번 더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름이 됐을 때 내 정신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하드코어한 트레이닝을 중단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먹는 것에 대한 강박감으로 나 자신을 억제하곤 했다. 이비사섬으로 가족 휴가를 떠났을 땐 비키니를 입는 것조차 거부했다. 다시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 내 신체 이미지를 우선시하던 그 시절로 말이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걱정하셨다. 나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학교 점심 식사를 거르던 어린 딸이 된 것 같았다.이러한 상태에서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엄마의 암 선고였다. 갑자기 인생이 짧고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일생을 이렇게 피곤한 상태로 내가 먹는 모든 걸 감시하면서 보내길 원하는 걸까? 대다수의 사람이 절대 얻을 수 없는 완벽한 몸매를 얻고자 고군분투하면서? 결국 나는 결심했다. 체중을 조금 늘리기로 말이다. 이와 함께 내 마음은 다시 균형감을 찾았다. 나는 내가 강박적 사고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처음 섭식 장애를 겪었을 때도 이러한 강박증이 과도한 운동과 금식에 대한 강박적 욕구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증상이 다시 악화됐을 땐 대회 출전이 그저 내 행동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보디빌딩은 건강의 연장선처럼 보이며, 종종 “고문이라고 묘사되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 표현되곤 한다. 또 새벽 4시에 일어나 운동하면 보상을 받는다고 여겨진다. 그야말로 건강하지 못한 내 습관을 감추는 완벽한 가리개였던 것이다. 내 친구들과 가족은 대회를 앞둔 나에게 응원을 해줬고, 헬스장 사람들은 내가 더 많은 무게를 들어 올릴 때마다 하이 파이브를 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나는 10대에 시달렸던 병을 똑같이 앓고 있었던 것이다.현재 아마추어 피트니스 대회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섭식 장애를 겪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좀 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코트니 프루스와 같은 유명 피트니스 인플루언서들도 이와 같이 주장한다. 그녀는 거식증이나 폭식증을 앓는 사람들은 대회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종류의 대회가 중독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는 내 코치가 나를 받아주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몇몇 논문에서는 이러한 대회를 위한 고강도 훈련과 섭식 장애의 연관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섭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교묘하게 이를 숨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아름다움’과 ‘성공’이라는 외적인 덫에 신경 쓰는 만큼 정신 건강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