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초 회사에 다닌 덕분에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여초 회사에 다녀서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보통 여성 직장인들의 괴로움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미안하다. 모쪼록 부조리한 현실을 날마다 맞닥뜨리고 있을 당신을 응원한다. ::여초회사, 비즈니스, 커리어, 직장인,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여초회사,비즈니스,커리어,직장인,코스모폴리탄

“김 과장은 왜 아직도 결혼을 안 했어? 할 때가 한참 지난 거 같은데.” 에디터 생활을 하다 광고 회사 AE로 이직한 후배가 새 직장 남자 상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잡지사 동료였던 40대 싱글 여자들 몇이 모인 자리였다. 그 무례한 질문에 대해 같이 분개하며 새삼 우리가 몸담아온 잡지사의 조직 문화가 퍽 달랐음을 깨달았다. 결혼 안 한 여자들이 다수며, 50대 편집장이 싱글이기도 한 곳이니 딱히 누구도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성비가 비슷하거나 남성 비율이 더 높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에게서 전해 듣는 스트레스는 다채로웠다. 회식 때 젊은 여자 직원만 골라 옆자리에 앉히는 사람, 여성 직원들에게 한여름에도 스타킹을 신으라는 사람, 집에 가면 애 봐야 한다며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게임하는 사람…. 나이 든 남자들이 상사라는 권력까지 쥐게 됐을 때의 사례다. 20년의 직장 생활 동안 대부분 패션 매거진 편집부에서 일한 나는 남성 상사 대신 여성 선배들과 일한 적이 많았다. 자기 분야에 욕심과 열정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며, 세계를 누비면서 매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다. 에디터 업무의 특성은 낮은 연차 때부터 주도권을 가지고 일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서 기사를 기획해 촬영 스태프들을 꾸리고, 비주얼과 글을 완성해 자기 이름이 적힌 콘텐츠를 세상에 내보낸다. 강도 높은 마감의 사이클 속에서 여자라는 점은 특별히 유리할 것도 불리할 일도 없는 조건이었다. 젊은 여성이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드문 환경 속에, 자기 일만 독립적으로 열심히 하는 여자들 틈에서 일해온 세월은 나를 단단하게 성장시켰다. 동시에 둔감하거나 무지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속한 회사에서는 여성들이 중심에 있지만 한 발 밖으로 나가면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끊임없이 가장자리로 밀려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이직을 준비하던 친구는 헤드헌터에게 불쾌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왜 이렇게 연봉이 높으세요? 이러면 이직하기 힘들어요. 눈을 낮추세요.” 똑같이 부장급인 40대 남자 직장인이라면 그 헤드헌터는 그렇게 말하진 못할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팀원 누구나 인정할 성과를 냈지만 인사고과에서 남성 동료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 동료의 퍼포먼스가 더 나빴다는 걸 팀장 또한 인정하면서도, 도와주자는 논리였다. 아이와 아내가 있는 가정의 가장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바로 자신이 1인 가구의 가장이라는 점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쓴 후 20~30대 독자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자주 생긴다. 결혼하지 않은 40대 여성도 고립되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책의 메시지와 더불어 이런 이야기를 강조한다. “겸손하지 마세요.” “눈 낮추지 마세요.” 누구든 평화로운 여초 직장에만 머무를 수 없으며, 밖으로 나오면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평가절하되고 배제당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가능하면 남자들의 방식을 관찰하고 시도해보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성실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와 존재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여자들끼리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네트워크를 만들라고. 상냥해서 좋은 평판을 받기보다는 함부로 대하지 못할 캐릭터를 구축하라고. 더 큰 야망을 품고 더 많이 쟁취하라고. 여전히 여초 직장에서 묵묵히 일만 하고 있을 내 후배들에게 못다 한 이야기다.  About 황선우 작가이자 에디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 20년 동안 잡지를 만들었고 그중 대부분의 기간을 패션 매거진 <W>에서 일했다. 에디터 시절 배우고 익힌 콘텐츠 제작과 큐레이션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