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고 로봇 난 건 맞지, 맞는데...#2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치열한 접전 끝에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겼을 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그렇지.’ 인간에 대한 믿음은 아직 굳건했고 되도록 AI 같은 건 멀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얼마 전 5G가 개통됐다. 사람과 사물, 가상과 현실이 전에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될 것이라 한다.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기술적 진보가 가속화하는 이 시점에, 인류의 이상향이 어쩐지 세기말적 악몽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로봇, 알파고, 커리어, 비즈니스, 커리어팁, 직장, 회사,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로봇,알파고,커리어,비즈니스,커리어팁

너무도 인간적이라 죄송합니다우리는 인간이 다른 생물종에 비해 탁월한 부분이 ‘지능’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인간은 기술에 능했다. 그런데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는 건 언제부턴가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됐다. 우리는 ‘스위치 오프’ 휴가를 떠나지만, 여행지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구글 맵에 연결된 채 보낸다. 이제 인류가 기술에 ‘종속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한때 기계는 우리의 충직한 집사였는데, 이제 우리는 그놈의 ‘인간성(=불완전함)’ 때문에 기계와의 싸움에서 패할 위기에 놓였다. 우리는 우리가 일군 디지털 세계 속에서 스스로 이방인이 돼버렸다. 나는 넷플릭스 시리즈 <러시아 인형처럼>을 좋아한다. 근래 본 드라마 중 손에 꼽는, 재미있고 잘 만든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다음 에피소드를 재생해주는 넷플릭스 화면에 흐릿한 시선을 고정한 채로 주말을 보내고 나면, 이게 내가 원했던 휴식인지 아니면 넷플릭스가 종용한 현대인의 휴식인지 헷갈리는 지경이 된다.지독한 숙취 때문에 밖으로 나가거나 요리를 할 수 없으니 패스트푸드로 대충 때우겠다는 핑계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침대에 누운 채로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샐러드를 시켜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샐러드를 시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화면에 샐러드가 지나가는 순간 ‘샐러드를 먹어도 좋겠군!’ 생각하곤 계속 스크롤할 거라는 얘기다. 그러나 분명히 나는 아주 쉽고 간편하게 샐러드를 먹을 수 있다.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죄책감이 들게 한다. 샐러드는 어느 때보다 나와 가까이에 있지만, 지금보다 샐러드가 멀게 느껴졌던 적이 없다. 고백하건대 나는 오디오 조작법도 잘 모른다며 엄마를 비웃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귀갓길 내내 매치스닷컴과 육스, 네타포르테에 잘못된 비밀번호를 입력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남자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그가 원하는 노래 제목을 기가지니가 제대로 알아들을 때까지 나는 잠시 투명인간이 된다. 2옥타브에 걸친 온갖 어조의 ‘지니야’ 버전을 들어보라.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건 알지만, 정말 묘하게도 질투심까지 생긴다. AI 시대 인간의 마지막 보루?스마트 테크놀로지에 대한 불안감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인류가 로봇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건 자동 농기계인 콤바인이 발명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줄곧 기계에 점령당할 그날을 두려워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한층 더 심각해졌다. 마치 기계들이 인간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거다.몇 달 전 결혼한 내 친구는 얼마 전부터 포털에 접속할 때마다 유아용품과 관련한 광고가 너무 많이 뜬다고 생각했다. ‘요새는 유아용품이 트렌드인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며칠 후 그녀는 문득 두 달 넘게 생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벤더 회사에서 일하는 그녀는 트렌드를 따라가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임신 사실을 파악하는 데는 게으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때로는 인스타그램이 절친이나 연인보다도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것 같아 섬뜩하게 느껴지는 건 나뿐인가?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내가 호러물 소재로 자주 언급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도넛 무료 나눔을 하기에 냉큼 받아 먹었는데, 조금 이따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더니 바로 그 도넛 광고가 뜨는 거야!” 그리고 나는 턱 밑에 횃불을 든 시늉을 하면서 덧붙인다. “혹시나 해서 스마트폰 마이크 설정을 확인했는데… 내내 꺼져 있었단 말이지!”(feat. 비명)인간이 기술을 따라잡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로봇들은 인간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맥도날드에서 주문을 받는 일이나, 마트에서 산 물건을 계산해주는 일은 더 이상 인간의 몫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로봇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건 단순노동직뿐이라고? AI가 180만 개의 일자리를 대체한다고 했을 때 당신은 해당되지 않을 거라 믿었다면, 알아야 할 사실이 더 있다. 최근 미국 비영리 AI 연구 기관인 오픈AI는 글짓기 AI를 개발해 800만 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15억 개의 단어를 학습시켰다. GPT-2라는 이름의 이 AI는 문장을 하나 던져주면 바로 개연성 있는 문장을 이어 붙여 기사든 소설이든 후루룩 써낸다. 책 한 권을 집필할 수 있는 정도다. 개발사인 오픈AI는 GPT-2가 너무 똑똑한 나머지 가짜 뉴스에 악용되는 등 ‘위험할’ 것이라 판단해 해당 모델의 풀버전은 상용화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편리함의 함정나는 밀레니얼 세대다. 인터넷이나 로봇이 내 생각과 행동, 욕구를 정확히 캐치하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다는 뜻이다. 내가 구글 검색창에 ‘rhkfehspspaEls’이라고 입력하면 구글은 알아서 ‘괄도네넴띤’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 “혹시 네가 찾던 게 이거 아니니?”라는 친절한 메시지와 함께. 어제의 폭풍 인터넷 아이쇼핑 후, 마지막까지 어른거리던 스니커즈 브랜드를 기억하려고 머리를 쥐어뜯을 필요도 없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곧 표시될 테니까. 작년에 지메일은 연체 메일 알림 기능을 도입했고, 마치 수행 비서처럼 우리가 답변해야 하는 이메일을 끊임없이 우리 얼굴에 들이민다.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지메일이 제안하는 대로 “그래, 좋은 생각이야!” 혹은 “멋지군. 제안 고마워” 같은 답장을 보낸다. 생각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행동하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던가? 이제 우리는 AI가 제안하는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술자리에 갈 때마다 나는 아이폰의 ‘즐겨찾기’처럼 내가 대화하고 싶은 사람의 머리 위에만 하트를 띄우고 있다. 책을 보다가 책장을 넘기는 대신 무심코 엄지와 검지를 붙였다가 떼며 ‘줌인’하듯 움직이곤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다. 내 직업은 작가이지만, 요즘 문장 하나를 완성하기가 점점 힘이 든다. 나도 모르게 화면의 공백을 메워줄 자동 완성 텍스트의 구현을 기다리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노화 때문이 아니다. 이게 다 로봇 때문이다.잔뜩 겁을 줬으니 이제 해결책을 달라고? 글쎄, 담배나 패스트푸드 끊듯이 디지털 단식을 할 수도 있겠지.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쨌든 하나의 선택지다. 혹시 아나? 아주 먼 미래에는 스마트폰이나 로봇 따위 다 불태워버리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나무 피리 같은 걸 불며 “그동안 스마트 테크놀로지 때문에 삶이 얼마나 복잡하고도 불만족스러웠던지”라고 소회하게 될지. 그동안 우리가 서서히 끓여지는 시험관 속의 개구리처럼 지능 말살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될지. 그러나 로봇은 분명 우리 삶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아마 우리가 내다볼 수 있는 미래에 로봇과의 동거는 계속될 테다. 그러니 좀 더 빠르고 현실적인 계획은 우리가 로봇보다 더 빨리 진화하는 것이다. 어떻게? 조금만 기다려보라. 이런 우리의 마음을 귀신같이 읽어낸 앱이 곧 출시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