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고 로봇 난 건 맞지, 맞는데...#1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치열한 접전 끝에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겼을 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그렇지.’ 인간에 대한 믿음은 아직 굳건했고 되도록 AI 같은 건 멀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얼마 전 5G가 개통됐다. 사람과 사물, 가상과 현실이 전에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될 것이라 한다.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기술적 진보가 가속화하는 이 시점에, 인류의 이상향이 어쩐지 세기말적 악몽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로봇, 알파고, 커리어, 비즈니스, 커리어팁, 직장, 회사,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로봇,알파고,커리어,비즈니스,커리어팁

지난 몇 주간 매일 아침,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채 일어났다. 침대 옆 라디에이터가 방 안을 마치 핫 요가 스튜디오처럼 만들어놓은 탓이다. 앱에서 온도를 재설정하면 될 텐데, 똥손에 기계치인 나는 혹여 뭘 잘못 만질까 봐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내가 앱의 심기를 건드리면 어떡하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9000처럼 앱이 내게 등을 돌린다면? 자, 시간을 조금만 미래로 돌려보자. 아주 조금, 그러니까 한 1~2년 정도면 된다. 몇 주 전에 구입했다가 동기화 매뉴얼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 내동댕이친 피트니스 트래커가 침대 밑으로 쓸려 들어갔다는 걸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다(아마 이사할 때까지 모를 것이다). 직장에서는 복도 바닥에 앉아 미팅을 한다. 팀원 중 아무도 최첨단 회의실 도어락을 해제할 줄 몰라서 말이다.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굳이 애플 워치로 결제한답시고 10명 넘는 사람을 기다리게 만든다. 무심한 티켓 부스 알바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냥 콜센터에 전화해보는 게 어때요?” 바보 같은 짓이다. 콜센터 역시 자동화돼 있다. 인증 번호를 이메일로 받아야 하는데 로그인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잘못된 비밀번호입니다”라는 붉은 메시지 상자를 다섯 번째 마주하고 있노라면, 가끔 지구 종말의 예고는 메뚜기 떼나 쓰나미가 아니라 이런 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