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이 결혼하면 어떻게 될까? #2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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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의한 결합은 결혼이라는 관습에 얽힌 풍속과 관련이 있다.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봤을 때 이전 세대의 결혼은 양가 사이의 계약을 담보로 한 현실적인 제도였다. 책 <진화하는 결혼>의 저자 스테파니 쿤츠는 “과거에 결혼은 서로 가진 자원을 교환하며 협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어요. 가족 농장 또는 사업을 도울 배우자를 얻거나, 정치적으로 가치 있는, 사회적 지위를 높여줄 수 있는 인간관계를 획득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법적 제도였죠”라고 말한다. 책에선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반, 시장이 떠오르고 돈을 받는 직업이 생기고, 많은 이들이 돈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이 성사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유명한 로맨스는 1800년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왕자의 결혼. 둘은 서로 사랑했으며 사랑이 있는 결혼 문화를 생성하고 급성장시키는 데 일조했다. 20세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할 때 조건을 따졌다. “비교적 최근인 1967년, 대졸 여성 중 3분의 2가 사랑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기준에 따라 결혼했어요. 그 대부분이 경제적인 안정과 관련이 있지요.” 쿤츠의 말이다. 이후 여성이 스스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남성과 동등한 경제적 입지를 갖게 되면서 ‘필요성’보다는 ‘선택’에 따른 결혼 관계가 맺어지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만드는 요즘의 ‘결혼’은 또 다른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취향을 공유하고 감정적·성적 교류가 오래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사랑으로 맺어지는 결혼에 대한 ‘꿈’이 깨지기 시작한 건 인류가 ‘남녀평등’과 ‘자아 실현’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즉 사랑에 빠져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결혼을 둘러싼 문화가 변화하면서 결혼의 의미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뉴욕에서 활동하는 관계 코칭 전문가 질리언 투레키는 말했다. “젊은 세대에게 결혼의 무게는 부모 세대와 많이 달라요. 그들은 로맨스에 대해 우호적이지만은 않죠.” 이러한 태도를 지닌 밀레니얼 세대를 ‘냉소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그들의 국적이 어디든 밀레니얼은 과거에 비해 2배 이상 더 높은 이혼율을 기록한 시대에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저성장’ 경제를 몸으로 체득하면서 돈을 벌기도 전에 빚을 짊어진 채 사회로 내몰린 세대이기도 하다. 최악의 취업난으로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사회는 ‘욜로’와 ‘소확행’이라는 단어로 미래를 잊은 소비를 부추긴다.경제적인 문제는 밀레니얼 세대의 결혼 시기를 늦추고 비혼율을 증가시킨 결정적 원인이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결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디자이너 남나혜(가명, 34세) 씨는 ‘효율성’이 결혼 결심의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얼마 전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오빠에게 난데없는 청혼을 받았어요. 그가 ‘그동안 너를 쭉 지켜봐왔어. 널 좋아해’라고 했을까요? 물론 아니죠. 그의 변은 이래요. ‘집세를 따로 낼 필요가 없다. 부모님에게 더 이상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상대를 파악하고 상대에 맞추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없어요.” “‘사랑’은 확실히 아니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 “전혀요. 일종의 계약이죠. 결혼한 주위 사람들이 다 저한테 그래요. ‘야, 결혼한 부부는 다 그냥 너랑 그 오빠처럼 살아. 낮에 각자의 삶을 살다가 저녁에 만나서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주말에 가끔 같이 놀고, 그게 다야.’ 여하튼, 이대로 그냥 그 사람과 살림을 합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익명을 요구한 어떤 여성은 결혼이 경제활동의 의무를 대체하는 수단이었다고 인정한다. “20대 후반쯤,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고 일하기가 진짜 싫었어요. 들어오는 소개팅을 마다 않고 열심히 하다가, 대기업에 다니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일을 그만뒀죠. 연애할 때도 지금도 딱히 ‘좋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싫지 않아서 했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 같아요. 남편은 친구들 만나 술 마시는 걸 좋아하고 자기 취미 활동에 시간을 많이 쏟는 편이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진 않아요. 주변에선 ‘속상하지 않냐’고 묻는데 전 그가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없는 게 더 편해요. 딸아이랑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 관계를 왜 지속하냐는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스스로 떳떳하지 않아요. 저도 이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경력이 수년 동안 단절돼 회사에 취직하기도 힘들고, 경제력이 없는 제가 양육권을 갖기란 더 어려워요. 딸과 떨어지는 건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해요. 궂은일이라도 해서 이혼하고 자립하라는 충고도 듣죠. 페미니즘의 새로운 흐름이 불고 있지만 전 엄마로 살고 싶고, 아이를 하루 종일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요. 물론 세상이 변화하고 있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엔 아직 힘들어 보여요. 그러느니 그냥 남편을 ‘한집에 사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참으면 당장은 힘들지 않게 살 수 있으니까. 그냥 하루하루를 이렇게 흘려 보내는 거죠.”미국 브루클린에 사는 프리랜스 작가 애나벨(28세)은 ‘진짜 신데렐라’가 되고자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제 또래 여자들은 결혼으로 부자가 되는 것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예요.” 그녀의 친구 중 한 명은 최근 26세 신부의 호화로운 결혼식에 참석했다. “남편이 돈은 많은데 약혼 전에 바람을 피웠대요. 그런데 신부가 그 남자를 만나기 전 자신의 삶(3명의 룸메이트와 비좁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살았었죠 아마?)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까 상상도 하기 싫더래요. 그래서 그가 용서를 구하길래(구하는 척하길래) 그냥 눈 딱 감고 결혼한 거죠.”물론 돈이 전부는 아니다. 누군가는 아이 때문에 결혼을 원하기도 한다. 난자의 개수는 줄어들고 있고, 냉동하는 데 수백만원 이상이 든다는 사실은 어떤 여성들로 하여금 조급한 마음이 들게 한다. “제가 결혼을, 그러니까 합법적인 제도 안에서 ‘남자’를 원하는 이유는 아이 때문이에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의류 무역업을 하는 이진영(가명, 33세) 씨는 말한다. “좋은 배우자와 삶을 꾸리고 싶어 결혼한 친구들 중 꽤 다수가 대체로 후회하더라고요. 특히 풀 타임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주로 그렇죠. 제가 결혼하고 싶은 건 남편이 아니라 아이를 원해서예요. 미국에선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출산하는 문화가 비교적 자연스럽지만 우리나라에선 좀 어렵잖아요. 가족이 받을 충격도 그렇고, 사회적 시선도 그렇고.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남자가 어딘가 좀 부족해도 눈감고 넘어갈 수 있어요.”‘제도 안에 안전하게 편입할 목적’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선 꽤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결혼의 이유다. 자신의 결혼을 “관혼상제의 망령 탓”이라고 표현한 영어 강사 이은경(가명, 31세) 씨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나이까지 혼자면 안 될 것 같다는 사회적인 압박감, 부모님의 지칠 줄 모르는 성화… 뭐 이런 거죠. 저는 사랑을 딱히 믿지 않지만 결혼은 30대 초반에 했어요. 어차피 하게 될 거, 내키진 않아도 하자는 사람 있을 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기꺼이 할 정도의 감정을 가진 적은 없지만, 그냥 성실하고 무난한 성격이라 같이 사는 데 별다른 불편함이 없어요. 남들이 이 정도면 ‘성공한 결혼’이라는데요? 적어도 남편이 내 속을 썩이진 않으니까.”  관계 전문가이자 심리학 박사 김민정 씨는 디지털 세대 사이에서 달라진 결혼의 의미를 짚는다. “어떤 젊은 세대에겐 결혼은 그저 인스타그램 피드에 내 상태를 올리는 것과 별 다를 것 없는 비중을 가진 이벤트예요. 근사한 휴양지로 여행 가서 #여행스타그램을 올리고 연말에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아 #ootd를 자랑하는 것처럼, 결혼도 완벽해 보이는 삶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니까요.”일부 전문가들은 결혼이 거래처럼 ‘교환’되고 있으며 ‘감정’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자기 자신을 판매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그렇게 하는 결혼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아무런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오프라 윈프리 매거진, 허프포스트 등에 글을 쓰는 관계 전문가 론다 리처드 스미스의 의견이다.뉴욕에서 섹스 및 관계 치료사로 활동하는 메건 플레밍 박사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둘러싼 문화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들 역시 현실적인 문제에 눈뜨기 시작했어요. 도파민이 분출돼 하는 결혼이 오래오래 행복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 결혼에 다른 요인으로 인한 장점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해요. 사랑의 이면에 정말 많은 현실적인 조건이 있거든요. 밀레니얼 세대의 결혼은 한마디로 정리하기엔 변동 요소가 너무 많아요.”그래서 많은 밀레니얼이(특히 여성의 권리를 높이자고 외치는 이들은) 결혼을 구식, 혹은 ‘안티페미니스트의 전유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기사를 위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취재원들에게 결혼은 쉽게 살기 위한 타협이 아닌 자신의 문제, 커리어, 인생의 중요한 목표를 향한 성취 욕구를 채워줄 자기 방어적 수단이었다. 결론은,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상적인 결혼 생활에 대한 정의가 지금보다 더 다양해져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