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모든 여성들이 저의 뮤즈죠"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여성 디자이너에겐 특별한 뮤즈가 필요치 않아요.” 뮤즈를 묻는 질문에 레지나 표의 디자이너 표지영이 대답했다. “저와 제 주변의 여성이 원하는 걸 만들면 되니까요. 뮤즈라는 다분히 환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매일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위해 디자인해요.” ::패션, 표지영, 레지나표, 패션디자이너, 뮤즈,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패션,표지영,레지나표,패션디자이너,뮤즈

“노란색 옷은 안 된다. 더 비싸게 팔아야 한다. 수익이 맞지 않는 구조다. 재능이 있으니 사업을 접고 큰 회사에 들어가라.” 잘나가는 런던의 세일즈 에이전트가 표지영에게 조언한 내용이다. 그가 막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블 레지나 표를 들고 나왔던 무렵이다. 그리고 그는 딱 정반대로 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2018년 12월을 기준으로, 표지영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 지 햇수로 5년째. 그는 삼성이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계 디자이너에게 주는 상인 SFDF상을 2017년에 이어 2018년에 두 번째로 수상했고, 마리옹 코티아르 같은 배우는 물론 네타포르테의 리사 에이컨, 맨 르펠러의 린드라 메딘, 패션 컨설턴트 케이트 폴리 등 유수의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가 됐다. 백인의 금발과 피부 톤에는 맞지 않으니 만들지 말라던 노란색 제이미 드레스는 출시하자마자 레지나 표의 베스트셀러인걸.1 케이트 폴리가 입은 레지나 표의 제이미 드레스. 레지나 표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드레스다.2 영국의 바이어 야스민 스웰도 레지나 표의 고객이다.3 그레타 오픈 넥 드레스를 입은 맨 르펠러의 린드라 메딘. 전날 런던에서 날아온 그를 청담동의 편집 매장 비이커에서 만났다. 그 공간에서 활짝 웃는 표지영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우리는 인터뷰를 위해 근처 찻집으로 갔다. 그는 하늘색 가죽 블레이저와 네이비색 스커트, 색이 이국적인 부츠 차림이었다. 모두 자신이 디자인한 것.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 또 그 옷을 직접 입어보고 다시 디자인에 반영하는 게 그의 철칙이다. 표지영의 표현을 빌리면 ‘순진했던’ 그가 용감하게 자신의 브랜드와 디자인을 밀고나갈 수 있던 데엔 본인과 친구들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들어보자는 열망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자리에 앉아 길고 긴 차 리스트를 한참이고 읽더니 표지영은 마침내 달지 않은 생강차를 주문했다. “그만두더라도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자고 생각했죠. 명품 옷은 비싼 데다 포멀하기만 했어요. 누가 아침에 한 시간씩 드레스 업하고, 책상에 앉아 종일 불편한 옷을 입고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반대로 친구들이 입는 중저가 브랜드의 옷은 너무 캐주얼한 데다 품질은 나빴고요. 나오는 거라곤 죄다 스웨트셔츠뿐이었죠. 그 중간, 즉 컨템퍼러리 브랜드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작 여성의 섬세하고 우아한 면을 돋보이게 하는 옷은 전무했어요.” 허스키하면서도 묵직하지만 한편으론 유쾌한 기운이 깃든 목소리였다. 과연 표지영이 만든 옷은 처음부터 전에 없던 색과 형태로 시선을 끌었다. 곡선이 유려한 드레스와 블라우스, 그 자체로도 오브제처럼 아름다운 구두와 가방은 지금은 하나의 미술 사조처럼 어떤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선이 부드러운 옷가지는 페미닌하되 자유롭고 편안해 수동적인 느낌이 없고, 맑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도시의 칙칙함을 닮지 않고도 충분히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이는 레지나 표를 표현하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영어를 써도 될까요?” 그가 쑥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 “‘effortlessly elegant(신경 쓰지 않은 우아함)’와 ‘joyful twist(재미있는 변형)’. 억지로 꾸민 듯하면 멋이 없으니까 자연스러워야 해요. 페미니즘 얘기가 자주 나오죠. 저 역시 남성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이 아닌 여성이 편안하고 즐길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해요. 평등해지기 위해 남자처럼 입는 게 답은 아니죠. 여자의 몸이 다 곡선이잖아요. 그걸 살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위트를 좀 더하는 거죠. 너무 진지하면 지루하잖아요.”레지나 표 제품의 모델명은 그가 우리 사회의 여성을 위해 디자인한다는 깜찍한 방증과도 같다. “르네가 컬렉션에서 가장 좋아했던 셔츠나 르네에게 꼭 어울릴 것 같은 드레스에 ‘르네 셔츠’나 ‘르네 드레스’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내보내요.” 작은 찻잔에 생강차를 졸졸 따르며 표지영이 덧붙였다. “르네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디자인 스쿨에서 만난 십년지기 친구인데요, 얼마 전 레지나 표에 매니징 디렉터로 입사해 이제는 친구이자 동료가 됐어요.” 르네를 떠올리는 그의 목소리에 애정이 묻어났다. “디자인과 주변인의 캐릭터를 떠올리고, 이름을 지어줘요. 주로 친구들 혹은 직원과 인턴의 이름을 빌리죠.” 1 귀고리 2피스와 브레이슬릿 1피스로 이번 시즌에 첫선을 보인 주얼리 라인 중 스월 이어링.2 그 자체로 오브제처럼 미학적인 야스민 뮬. 르네를 알지 못한다면 레지나 표의 옷과 신발, 가방을 보고 대신 예술 작품을 떠올릴 것이다. 구조적인 실루엣의 원피스는 조각상 같기도 하고, 가방은 종이를 접어놓은 듯 보이며, 신발은 또 작은 장식품처럼 아름다우니까 말이다. 실제로 표지영은 순수 미술에 관심이 많다. “농담 삼아 은퇴하면 조각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정도인걸요. 한가로울 땐 런던의 테이트 모던을 찾아요. 파리에 있는 브란쿠시의 아틀리에도 좋아하는 장소죠. 나무를 재료로 삼아 작업하는 아티스트 이사무 노구치의 작품에서도 영감을 받아요. 이런 절 위해 얼마 전엔 남편이 생일 선물로 도자기 강좌 수강권을 주더군요. 일정이 바빠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서울에서의 스케줄이 끝나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다음 주에 드디어 그 수업을 듣기로 했답니다!” 표지영이 만든 도자기를 잠시 상상했다. 그가 만든 다른 모든 것처럼 풍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옷으로 시작해 신발과 가방 순으로 라인을 확장하고, 프로젝트 프로덕트라는 아이웨어와의 협업으로 선글라스까지 꾸준히 선보이는 레지나 표의 세계는 과연 어디까지 넓어질까? “최근에 주얼리 라인을 론칭했어요. 내년엔 협업을 통해 향수를 준비하고 있고요. 손을 대지 않은 영역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네요. 언젠간 나이키와 함께 최첨단 기술을 담은 운동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요즘 집을 레노베이션하는데, 그 때문인지 인테리어에 흥미가 생겨 세라믹 라인을 론칭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요. 아이가 있는데 입히고 싶은 옷이 없어 아이 옷도 디자인하고 싶고…. 남성복에 대한 요청이 정말 많은데 지금도 벌여놓은 일이 많아 회사 사람들이 모두 말려요.”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지만 에디터와 PR은 벌써부터 흥분과 기대가 일었다. 아이돌을 덕질하는 마음처럼 표지영이 소처럼 일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불끈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