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사랑이라고? 댓츠 노노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나의 옷차림부터 말투, 대인관계 등을 일일이 지적하는 남자 친구. 분명 날 사랑해서 하는 말이고, 다 날 위한 거라고 하는데 왠지 마음 한편이 찜찜하다. 그의 지적을 들으며 점점 ‘듣자 듣자 하니까 열 받네?’가 아니라, ‘듣자 듣자 하니까 맞는 것 같네?’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관계를 한번 돌아봐야 할 때다. ::사랑, 연애, 남녀, 애정, 가스라이팅, 관계,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사랑,연애,남녀,애정,가스라이팅

한때는 상대를 구속하는 것이야말로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하는 지적이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연예인들이 “악플도 관심이다”라며 자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악플은 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말은 연극 <가스등>에서 비롯됐다. 극 중 주인공인 남편이 집 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해놓고는, 부인이 어둡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 인지 능력과 판단력 등이 흐려진 아내는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하게 된다. 심리치료사이자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의 저자 로빈 스턴 박사는  상대방을 조정하는 특정한 형태의 정서적 학대를 ‘가스라이팅 효과’라고 말한다. 스턴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자신이 항상 옳다고 여기며 자존심을 세우고 힘을 과시하는 가해자인 ‘가스라이터’와 상대방이 자신의 현실감을 좌우하도록 허용하는 피해자 ‘가스라이티’의 합작품이다. 사실 가스라이팅은 아주 친밀한 사이에서 일어날뿐더러, 그 방법이 워낙 교묘하고 은밀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묵히거나 간과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데이트 폭력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무력에 의한 폭력이 아닌 정서적 폭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스라이팅이 반복되면 피해자는 혼란, 불안, 고립, 우울을 느낄 수 있다. 남자 친구가 SNS에서 낯선 여자의 반나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 것을 보고 당신이 불쾌감을 표현했는데 그가 적반하장으로 “뭐 그런 것까지 보고 그래? 너무 내 뒤를 캐는 거 아냐? 그거 집착이야”라고 반응했고, 당신 스스로 ‘내가 정말 집착하는 성격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가스라이팅 효과를 이제 막 맛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스라이터와 가스라이티, 당신은 누구?그렇다면 가스라이팅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임상 심리학자 스테파니 보브는 가스라이팅은 순전히 사람을 학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스라이팅은 대개 자기애가 강한 성격의 사람들이 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들은 상대의 불안감을 먹이로 삼거든요.” 실제로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동료들의 의견에 쉽게 휘둘린다. 자신보다는 상대한테 더 많은 힘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평가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권한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스라이터는 더욱 돋보인다. 스테파니 보브는 “가스라이터는 지배와 통제에 대한 욕구가 커요. 그래서 자신에게 복종할 만한 사람을 찾죠. 그들은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규칙과 경계를 마음대로 침범해요”라고 설명한다.  가스라이팅의 단계  ▼1단계 갸우뚱 모드 “잘 모르겠지만 그런 걸까?”가스라이팅의 첫 단계에서는 단순히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상대방의 이해가 부족하거나 잠시 평정을 잃었다고 치부하며 넘어가기 쉽다. 그저 대수롭지 않은 연애 초기의 해프닝쯤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어떤 관계든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불편하기 마련이고,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스스로 생각할 때 상식적이지 않고, 불안감이 엄습한다면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는 있다. 그 느낌이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인지, 단순히 넘겨도 될지 확인할 수 있는 시그널은 몇 가지 있다. 누가 옳고 그른지 가리기 위해 자주 다툰다, 상대가 빈번하게 당신을 평가하려고 한다, 상대가 실제로 일어났던 것과 매우 다르게 기억하거나 이야기하는 등 현실을 왜곡한다고 자주 느낀다, 그와의 관계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사건이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친구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고 외면한다, 소유욕이 강하거나 우울해하거나 혹은 선입견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문제를 의식하지만 그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등과 같은 상황이다. 이 상태라면 당신은 가스라이팅의 첫 번째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2단계 자기 불신 모드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상대방의 평가나 지적에 대해 가볍게 듣고 넘겼던 1단계와 달리, 2단계에서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지점에 다다른다. 1단계에서는 가스라이터가 비난하거나 조종하려고 하면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돼!’라는 식으로 생각하지만 2단계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피해자는 좋은 사람이라 인정받으려 오랫동안 노력했고, 가해자 또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크게 고함을 지르거나 모욕을 주고 차갑게 대하는 등 감정 표출을 과감하게 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쓴다. 상대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를 달래고 자신을 방어하게 되는 것이다. 3단계 자책 모드 “내가 잘못한 거야.”가스라이팅 최종 단계가 되면 더 다양한 방식으로 학대를 받는다. 가스라이터가 소리 지르는 것을 반복적으로 감내하던 피해자는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져 자신은 장점이 없다고 여긴다. 연애하기 전에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독립적이었던 이들도 이 상황이 되면 자책을 피할 수 없다. 가장 심각한 것은 좌절하고, 절망하고, 삶 전체가 무미건조해진다는 점이다. 이 단계에서도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거두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히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패배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버림받고 홀로 남겨진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또한 3단계로 들어서면 이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긴다. 상대에 대한 환상도 관계를 마무리 짓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깊은 관계일수록 스스로 상대를 나의 영원한 반려자,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기며 이상적인 연인이란 환상을 심어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을 끄는 법  ▼내 편 돼주기누구든 날마다 비난과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면 상처받는다. 자존감이 낮아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그럴 만했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관계가 자꾸 어긋나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자신에게 책임은 없는지 되묻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형편없는 대우를 받을 만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물론 관계가 틀어진 경우 자신의 잘못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해야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지고 비난을 받는 게 마땅하다는 말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 이 상황에서 불쌍하고, 안타까운 건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며 위로를 먼저 하는 게 필요하다. 스스로를 북돋울 수 있는 방법으로, 친한 친구들에게 당신의 장점을 알려달라고 부탁해보자. 잠시 잊었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다. 진짜 대화를 하기가스라이터(가해자)는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고, 가스라이티(피해자)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 하는 대화는 그냥 힘 겨루기밖에 되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만 할퀼 뿐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언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당신이 나를 이렇게 모욕한다면, 나는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지금 너무 화가 났어. 이 상태로 말할 수 없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자”라는 식으로 대화를 끊는 것이 좋다. 물론 이에 대한 상대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적어도 상대에게 자신을 판단하게 만들기보다는 당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대화의 주도권을 갖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아무리 당신이 옳더라도 타인의 생각은 결코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헤어질 각오하기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상대와 헤어질 각오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스스로의 영혼을 훼손시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화되는 것은 전혀 없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다른 식으로 행동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상대와 헤어질 수 있다는 각오까지도 해야 한다. 다시는 가스라이팅으로 점철된 관계를 지속하고 싶지 않다면 자신의 감정을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최근에 느꼈던 감정 등을 메모하며 환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잊은 채 살아간다. 무감각하고 활기도 없으며 매사에 무관심한 것이다. 그러나 감정 연습을 하다 보면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우둔하게 살았는지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