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혹시 '영츠하이머'?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이런 말을 하거나 혹은 들은 적이 있는가? “나 치매인가 봐.” 물론 젊은 우리는, ‘우스개로 과장하는 자조’라고 치부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런 증상이 반복된다면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당신의 그 연쇄 ‘깜빡’ 증상은 개그 소재가 아니라 뇌의 문제일 수도 있다. ::보디, 헬스, 건강, 치매, 건망증, 뇌건강, 영츠하이머,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보디,헬스,건강,치매,건망증

이유 있는 깜빡, 영츠하이머지난여름, 한 달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 앞에 섰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려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캄캄했다. 고작 8자리에 불과한 비밀번호가 마치 뇌를 리셋한 것처럼 생각이 안 났다. 일곱 번의 오류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진 후 결국 열쇠공을 불렀다. 건망증은 십수만원의 불필요한 소비라는 대가를 치른 후에야  끝났다. 열쇠공 사건은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한 해프닝 정도로 포장할 수 있지만 마냥 웃고 넘길 수만도 없었다. 독일의 정신의학 박사 만프레트 슈피처가 말한 치매의 넓은 의미 ‘신경세포의 사멸로 인한 정신적 능력의 감소’를 떠올린다면, 이 황당한 건망증이 치매와 전혀 무관한 증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화할 때마다 마땅히 튀어나와야 할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그… 뭐지?”를 연발하거나 자주 찾는 웹사이트 아이디와 비밀번호, 카드 결제 번호가 생각나지 않고, otp 카드와 공인 인증서를 저장한 usb를 어디에 둔지 몰라 찾아 헤매는 일도 부지기수였으니까. 남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잠시 이 페이지에 주의력을 발휘해보자. 20~30대가 젊은 나이에 벌써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사실 우리 모두 이미 잘 알고 있다. 손안에 쥔 디지털 기기,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는 환경,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인터넷이 이 때 이른 퇴보의 원흉이라는 것. 구로 연세 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박종석 원장 역시 디지털 미디어가 기억력 감퇴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말한다.“과거 세대와 달리 디지털 네이티브는 일상, 학습, 업무의 상당 부분을 인터넷과 디지털 정보에 의존해 처리합니다. 이 과정에서 뇌는 자율적으로 활성화되는 대신 수동적인 역할에 익숙해집니다. 즉 뇌가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대신 넘치는 정보를 쫓기면서 받아들이기에 급급하다는 뜻이죠. 이 과정이 만성적으로 지속될 경우 주의력과 집중력이 점진적으로 저하되는 것은 물론, 일시적으로 가벼운 인지 장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미국의 IT 미래학자 니컬러스 카도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터넷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장기 기억은 우리가 아는 것을 모두 저장하지만, 단기 기억은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한정된 정보만을 저장합니다. 웹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단기 기억을 넘치게 할 뿐이죠. 지성의 깊이는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정보를 얼마나 옮길 수 있느냐에 달렸는데, 이것이 없다면 ‘학습 능력’은 피해를 보고, 이해도는 얕은 수준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전문가들의 의견은 한마디로 가장 활발해야 할 20~30대의 뇌 활동이 후퇴하고 있다는 뜻. ‘디지털 치매’라는 용어를 만든 슈피처 박사는 저서 <디지털 치매: 머리를 쓰지 않는 똑똑한 바보들>에서 “우리의 뇌는 주요한 측면에서 볼 때 마치 근육과 같이 기능한다. 근육은 사용하면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한다. (중략) 우리는 뇌가 인체에서 가장 복잡한 기관일 뿐만 아니라 가장 역동적인 기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뇌는 사용과 함께 변화한다. 사용하지 않으면 이 신경학적 하드웨어는 축소된다”라고 경고한다. 자, 지금도 손에 꼭 쥐고 있는 스마트폰이 당신을 어떤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지 와닿는가?디지털 치매가 부르는 또 다른 병  불러야 할 이름, 해야 할 말, 알아야 할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사소한 실수일 뿐이라고? 물론 증상이 단순 기억력 저하에서 그친다면 비교적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검색 기능이 지원되는 메모 앱을 켜거나(이 역시 뇌 활동 저하를 부르는 행동이다), 진짜 수첩에 펜으로 직접 적거나. 문제는 이 부작용(?)이 ‘기억력 감퇴’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호주 모나시 대학교의 중독 전문가 댄 루브먼 교수는 디지털 치매가 단순한 기억력 감퇴뿐 아니라 우리 뇌가 스트레스, 불안, 갈등을 유발하는 장치를 끄는 것을 방해한다고 말한다.박종석 원장 역시 디지털 기기 과의존 습관이 야기하는 위험성을 우려한다. “디지털 기기로 인터넷과 SNS 등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우 집중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위축되고 기능이 저하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20대 혹은 그보다 더 어릴 경우 기능 저하가 더 뚜렷하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실제로 과도한 디지털 기기 사용은 대뇌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기능 이상을 불러옵니다. 도파민은 우리 몸의 활력을 담당하는 에너지원으로 집중력과 주의력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죠. 따라서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경우 주의 산만, 기억력 저하뿐 아니라 예민하고 짜증을 쉽게 내게 되며 나아가 불안감이나 우울감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과의존뿐 아니라, 디지털 기기를 통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도 당신의 정신적 능력을 떨어뜨린다.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팀이 대학생 262명 중 ‘헤비 멀티태스커’와 ‘라이트 멀티태스커’를 선별해 비교한 실험에 따르면, 자주 동시에 다수의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을 통제하는 데 문제를 보였다. 실제로 헤비 멀티태스커들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중요하지 않은 주변 자극을 차단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사소한 자극도 무시하지 못하고 하찮은 과제를 처리하는 데도 비효율적이었다고.감정 조절 문제, 주의력 결핍에 빠진 ‘영츠하이머’가 겪는 또 다른 문제는 불면증. 스웨덴의 한 연구팀이 20~25세 실험 참가자 416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밤에 이루어지는 디지털 미디어의 사용이 불면증 발생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슈피처 박사는 “디지털 미디어로 자신의 잠을 빼앗는 사람은 스스로의 몸에 결코 경미하지 않은 중대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말로 심각성을 경고한다. 장기적인 수면 부족은 면역력을 저하시키고 감염 질환과 암, 심혈관계 질환과 비만, 당뇨병 등의 발병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뇌를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가장 먼저 할 일은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다. 흡연이 당신의 폐에 즉각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처럼 일상의 대부분을 온라인에서 보내는 것이 우리의 뇌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루브먼 교수는 “디지털 기술 도입 초기엔 아무런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날엔 디지털 기기 사용에 관한 규칙과 전략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라고 말한다.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앞다퉈 제시하는 솔루션은 결국 하나의 문구로 향한다. 연결 끊기, 즉 디지털 기기의 전원을 끄는 일이다. 이 단순한 행위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수많은 뇌 과학자, 의사, 인지 행동 연구자들이 세세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디지털 치매뿐 아니라 뇌의 노화로 인한 알츠하이머를 연구하는 슈피처 박사는 “두뇌 조깅 대신 그냥 조깅을 하라” 라고 조언한다. 무슨 말이냐고? 뇌를 사용하기 위해 스도쿠나 낱말 맞추기를  하는 것보다 그냥 밖으로 나가서 달리는(혹은 걷는) 일이 정신 건강에 더 좋다는 뜻이다. “모든 생명체 가운데 가장 사회적인 존재인 사람은 비교적 커다란 뇌를 가지고 있고, 이 뇌를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위해 많이 사용한다. (중략) 따라서 사람에게 최상의 환경은 바로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자연의 체험은 사람들의 결속을 다져주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30분씩 하는 운동이 우리가 자신의 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것”이라고 덧붙인다.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디지털 디톡스>의 저자 프랜시스 부스는 디지털 치매를 야기하는 ‘디지털 산만’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선 자신이 강력하게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디지털 기기로부터 자신을 완벽하게 격리하는 일이 어렵다면 그냥 누워서 숨 쉬기, 색칠하기, 향초가 타는 것 바라보기 등 찰나의 순간이라도 몰입할 수 있는 행동 목록을 3가지 이상 적어볼 것. 그 후 소셜 미디어와 이메일, 인터넷을 켜고 싶은 충동을 가장 잘 참을 수 있는 시간을 파악하고 매일 5분, 10분, 15분 등 차츰 시간을 늘려가며 연습하면 된다. 부스는 ‘실패해도 멈추지 않고 다시 시도하는 것’이 이 집중력 훈련의 핵심이라고 귀띔한다. 스마트폰과 PC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면, 적어도 밤과 아침만이라도 디지털 기기를 멀리해보자. 박종석 원장은 “잠들기 직전에 스마트폰을 보게 되면 블루라이트가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생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불면증과 기억력 저하를 유발합니다. 블루라이트 차단 필터를 쓴다고 해도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또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보는 것도 각성과 인지 기능에 악영향을 주고 주의 산만, 안구건조증, 기분 저하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라고 경고한다. 명상은 모든 전문가가 ‘최종 보스’로 꼽는 솔루션이다. 뇌를 쓰지 않는 것이 뇌 건강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얘기. <콰이어트 더 마인드>의 작가 매슈 존스턴은 우리의 뇌는 24시간 동안 7만 가지 생각을 처리하기 때문에(심장이 한 번 뛸 때 뇌는 2가지 생각을 하는 셈이다) 뇌의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명상’의 세계는 수행과 수도만큼이나 넓고 깊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조차 지금 당장 시도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그저 숨을 크게 마시고, 마신 만큼 천천히 뱉으면 된다. 일본의 뇌 과학자이자 마인드풀니스 전문가 구기라 아키야 박사는 깊은 호흡만으로도 뇌의 피로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단, 자신이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과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 필수. 너무 쉽다고? 당장 이 기사를 덮고, 단 1분만 호흡에 집중해보자. 장담하건대,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잡념이 ‘현재, 여기’에 머무르려는 당신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공격할 것이다. 그러니 정신을 가다듬고 뇌에게 진짜 휴식을 선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