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결보다 산성도라고?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자궁은 여성의 제2의 심장이라고도 불린다. 여성 건강의 근원이란 의미에서일 거다. 그렇다면 ‘질’은? 여성만이 타고난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신체 부위인 ‘질’의 건강을 해친다면 그건 곧 일상생활의 질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질 건강을 사수하려면 질의 생태계를 알아야 한다. | 보디,헬스,건강,자궁건강,질

피부의 pH 밸런스보다 더 중요한 것 대부분의 성인 여성이라면 질염, 성병, 요로 감염증과 같은 질병 이름이 낯선 단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질병에 쉽게 노출되는 진짜 원인은 대부분 모르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곳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복잡하지만 단순한 요인, 바로 질 내 ‘산성도’에 대해서 말이다. 산성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pH’는 수소이온 지수, 즉 ‘수소의 힘’을 의미한다. 수소이온이 많을수록 더 산성을 띠게 되는 원리로 특정 물질의 산성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다소, 아니 많이 헷갈리지만(과학의 법칙은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니까 나를 탓하진 말길…) pH 척도에서 0은 산이 가장 많다는 것을, 14는 산이 가장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정도는 기억나든 안 나든 우리 모두 학교에서 배운 사실이다. 이게 인체의 신비와 접목되는 지점은 바로 건강한 ‘질’이 자연적으로 산성을 띤다는 것이다. 그것도 pH 척도에서 가장 안정된 지점인 약 3.8~4.5 즈음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수치는 우리 여자들에게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노스웨스턴 성의학 및 폐경 의료 센터의 원장인 로렌 슈트라이허 박사는 질 내부의 pH가 4.5를 넘어서면 성병(HIV 포함)과 세균성 질염(BV)에 더 쉽게 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질병들은 산성도가 약해질 때 급격하게 증식하기 때문이다.  질의 pH를 사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증거는 또 있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질 내 pH 수치가 높아지는 것과 자궁경부암 발생 위험률이 증가하는 현상의 관련성을 밝혀냈다. 아마 질 내부에 산이 부족할수록, 우리 몸이 때때로 암을 유발하기도 하는 HPV 바이러스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최적의 산성도를 유지하는 것이 모든 여성 질환에 맞서는 첫 번째 방어막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pH 수호대, 락토바실리 최상의 산성 환경을 조성하는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는 바로 ‘락토바실리’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겐 ‘유산균’으로 친숙한 이 호기성 세균총은 질 내 세균총(마이크로바이옴)에도 존재한다. 이 이로운 박테리아가 대량생산하는 젖산은 자궁경부암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진 HPV와 같은 해로운 박테리아가 질 내부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질 내 pH 환경은 무수한 요인으로 언제든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젖산들은 주 7일 내내 24시간이 모자라도록 쉬지 않고 열일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자면 정액조차도 pH 7~8로 질 내부보다 훨씬 낮은 산성도를 지닌다. 질을 세척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엇으로든 질 내부를 씻는 행동은 모두 위험하다고 보면 된다. 단순한 물조차도 pH 7 정도며 보디 클렌저는 pH 9~11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생리혈도 pH 수치에 영향을 미치니 젖산이 쉴래야 쉴 수가 없게 되는 식이다.  사실 우리의 질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돌아가는 기계나 다름없다. 마치 질 내부에 자정 정화 장치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섹스 후나 생리가 끝난 뒤와 같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pH 수치는 저절로 평소 상태로 돌아온다. 문제는 지나친 청결 관리 혹은 방심이다. 주기적으로 질 세척을 하거나 무방비한 섹스(콘돔이나 성병 관련 대비책이 없는 섹스)를 일삼을 경우 당신의 락토바실리는 면역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크고 작은 질병에게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Leave It Alone! 그렇다고 그곳의 pH 수치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 또한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의 산부인과 교수인 폴라 힐러드 박사는 말한다. 매일같이 리트머스 용지를 그곳에 들이대보는 식으로 pH 지수를 체크하는 건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또 시간적으로도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저 질 냄새, 가려움, 분비물의 변화 등 신체에 일어나는 증상을 잘 살펴보고 이상 신호가 나타날 때마다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적정선이다. 그러면 의사가 전문적으로 그곳의 pH를 검사해줄 테니까. 참고로 이때 pH 수치가 정상이라면 당신이 겪은 증상은 pH와 관련 없는 다른 질병을 암시할 수도 있다. 만약 수치가 4.5 이상이라면 산성도가 깨져 세균성 질염 혹은 성병에 걸렸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pH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고 슈트라이허 박사는 말한다. 그저 질 세척을 멀리하고 섹스할 때 콘돔을 꼭 사용하면 된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여성 성의학 프로그램 디렉터인 레아 밀하이저 박사는 적정한 pH 수치를 유지해준다는 문구로 현혹하는 드러그스토어의 신상 질 세정제와 외음부 전용 세척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대신 일부 보충제를 따로 섭취하는 건 질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수의 논문에서는 ‘람노서스 GR-1’과 ‘루테리 RC-14’와 같은 락토바실러스 균종을 갖춘 프로바이오틱스가 젖산 수치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러한 주장에 대한 의학적 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으로서의 최선은? 질의 pH에 혼란을 야기하는 일상적인 행동을 멀리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