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만수르와 존버 사이에서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모두가 회사를 다니면서 퇴사를 꿈꾼다. 야근을 하지만 주 52시간제를 기대하며 칼퇴를 염원한다. 그럼에도 ‘일잘러’가 되고 싶다. 자꾸만 경쟁을 시키는 세상과는 무관하게 열정을 불사르는 ‘유노윤호’처럼 열심히 그리고 잘하고 싶은 마음, 어떻게 지켜야 할까? | 비즈니스,커리어,커리어팁,열정만수르,유노윤호

나와는 족히 10년 이상 연차 차이가 나는 선배를 만났다. “선배도 존버하세요!” 회사에 대한 푸념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내뱉은 말에 선배는 그 의미를 물었다. “아유! 선배는 그것도 모르세요? 존나 버티는 거, 그게 존버잖아요.” 함께 있던 다른 선배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슬픈 말이다.” 맞다. 사실은 나 역시 ‘존버’라는 말을 쓰면서도 입안의 모래를 뱉은 것처럼 기분이 텁텁했다. 결국 ‘존버’는 버티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니 말이다. 어쩌다 나는 존버를 지향하게 됐나? 나에게도 분명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신입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얼마 전 포털 사이트에서 느닷없이 화제가 된 이름이 있다. 다름 아닌 유노윤호. 데뷔한 지 15년째가 된, 이제는 아이돌이라고 말하기에도 머쓱한 동방신기의 리더 유노윤호가 왜 갑자기? 이유는  SNS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나는 유노윤호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열정적으로 안무 연습을 하고,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이다”라고 말한 유노윤호의 언행이 다시금 회자되면서, 유노윤호식 열정 세뇌법이 퍼진 것이다. 월요병이 도지기 시작하는 일요일 저녁, 야근에 지쳐 터덜터덜 퇴근하는 길, 무기력해지는 날 등 스스로를 북돋기 위해 사람들은 유노윤호를 빌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욱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집에 있지만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말에 공감할수록 사람들은 더 힘차게 “나는 유노윤호다”를 외쳤다. 동시에 ‘○○처럼 대충 살자’ 시리즈도 인기를 끈다. 베토벤이 아무렇게나 그린 높은음자리표와 다른 유명 작곡가들이 그린 높은음자리표를 비교한 사진에 “대충 살자… 베토벤 높은음자리표처럼”이라고 말하거나, 연예인의 웃긴 짤에 “대충 살자… 숫자 풍선 들기 귀찮아서 머리에 낀 황정민처럼” 같은 댓글을 덧붙이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열정 만수르 당사자인 유노윤호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공항 패션 사진으로 찍혔다. 어쩌면 그게 ‘열심히 살자’와 ‘대충 살자’ 사이에서 엉거주춤하는 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삶의 태도였던 ‘노력’이 지금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헛된 행동으로, 혹은 부담스러운 열정으로 비춰져 ‘노오력’이라는 말로 변질됐다. 그럼에도 난 제대로 잘 살고 싶다. 내일 당장 퇴사를 하는 한이 있어도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이왕이면 ‘존버’ 중에서도 ‘존나 잘해서 잘 버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꽤 오랫동안 ‘워라밸’이라는 말이 직장인의 화두가 되는 것처럼, 열정적인 삶과 적당히 타협하는 삶 사이의 균형이, 지금 나에겐 절실하다. 적절한 온도로 일 잘하는 법너무 부족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게 일에 대한 평정심과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방법. Rule  1  회사가 아닌 ‘나’에 집중한다일도 결국엔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고, 대충 적당히 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다. 일을 할 때 ‘나’라는 중심이 빠지면 ‘워커홀릭’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자존감이 필요한 순간이다.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어떤지를 구체적으로 그릴 필요가 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좋은데, 이 역시 회사가 아닌 내 기준에 맞는 우선순위를 정해 거기에 따라 선택하고,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시간과 목표에 따라 적당히만 하면 오히려 그게 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남과 비교하고, 남을 의식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Rule  2  오래 한다고 모두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한 가지 일을 오래 했다고 해서 모두가 일인자가 되진 않는다. 1년에 무수하게 쏟아지는 아이돌들 대부분은 나름대로 오랜 연습 시간을 거쳐 데뷔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방탄소년단이 되고, 블랙핑크가 되지는 않는다. 제2의 방탄소년단을 꿈꾸지만 결과는 모두 제각각이다. <일하는 마음>의 저자 제현주는 “중요한 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돈 받고 일하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하는 게 아니라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계속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다. 계속하다 보면 (언제나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가 있다. 당장의 ‘잘함’으로 환산되지 않더라도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라고 말한다. 지금 하는 일이 겉보기엔 무의미해 보이고, 날마다 무기력하게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고 반복되는 문서 작업을 하는 게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분명 당신에게 쌓이는 것이 있다. 보이지 않게 내공이 쌓이는 셈이다.  Rule  3  자신만의 업무 시스템을 구축한다업무 습관과도 직결되는 얘기다. 어떤 사람은 야근해도 그날 할당된 일을 끝내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칼퇴해도 할당된 일 그 이상을 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가장 큰 차이는 시스템이다. 자신만의 업무 시스템을 구축하면, 일의 과정과 결과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게 된다. <열정은 쓰레기다>의 저자 스콧 애덤스 역시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당장의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시스템을 만들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10kg 감량하기는 목표지만, 올바른 식습관 갖기는 시스템이 되는 셈이다. 시스템을 만들면 힘을 덜 들이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지구력이 길러진다. 반면에 목표를 따라가면 사람들은 그것을 이루기 전까지는 매번 성공하지 못한 실패 상태가 된다.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영원한 실패자가 되는 셈이다. 시스템을 활용하는 사람은 그것을 적용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 목표처럼 데드라인도 없고, 그 자체가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Rule  4  멍 때리기 시간을 갖는다전 세계 인구의 15%는 뇌의 구조적 차이로 보통 사람보다 비정상적으로 사고를 많이 하는 정신적 과잉 활동 증후군(PESM)에 시달린다고 한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끊임없이 아이콘이 생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보통 사람은 사용 가능한 정보를 취사 선택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삭제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들은 그게 어렵다. 직장인 중에서도 스트레스 때문에 “쉬고 있지만 쉬고 싶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뇌를 혹사시키는 경우가 많다. 번아웃 증후군의 원인도 그와 비슷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멍 때리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 것.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 않다면 물리적인 방법을 취하는 게 좋다. 가사가 없는 경음악이나 멜로디가 간단한 음악을 듣거나 쉬운 책을 읽는 것이다. 대신 무조건 종이책을 읽어야 한다. 내용을 쉽게 습득할 수 있고, 다른 행동을 병행하지 않아 뇌의 휴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Rule  5  “못 해요”가 아니라 “안 해요”로 거절한다직장인들에게 ‘예스맨’이 되지 말고 적절히 거절하라고 조언하는 경우는 많다. 그 거절마저도 때론 관계를 고려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하라고 첨언한다. 그러나 거절을 어떤 식으로 하느냐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를테면 거절할 때 “저는 못 합니다”가 아니라 “안 합니다”로 말할 경우, 그러니까 거절을 수동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할 경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기 결정이 높아지게 된다고 한다. <하우투 워라밸>의 저자 안성민은 누군가의 권유나 부탁을 거절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능하면 “할 수 없어요”가 아니라 “하지 않아요”라고 말해 좀 더 적극적이고, 의지가 중심이 되는 단어를 활용하라고 권한다. 스스로 더 단호해질 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일말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